떠나는 주말I산귀래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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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주말I산귀래별서
  • 월간원예
  • 승인 2005.10.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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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우리에게도 날개는 있다
‘절정’, 바야흐로 꽃의 계절이다.
지독한 더위는 끝을 보이고 비 내리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만난 오래된 추억들은 툭, 툭 지나간다. 365일의 3/4이 흘러간 지금 혹,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며 당신은 어느덧 가을 속에 머물 것이다.
“시간은 결국 흘러가더군.”
“당신, 어디 즈음에 있나요?”
따위의 물음처럼 상투적인 일상의 편린들은 문득 당신의 존재성에 대해 물을는지도 모른다.
순간 일상이 시시해졌다면, 갑작스레 시간의 흐름 앞에 두려워졌다면, 모든 것 제쳐 두고 오늘 같은 날 시간의 그늘에서 멀어져 보는 건 어떨까.
와르르 무너지는 햇살 아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이곳, 여기에 산귀래별서가 있다.

저, 매우 회고적인 야생화 좀 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양수리)에 자리 잡고 있는 산귀래별서는 말 그대로 꽃 천지다. 총 면적은 2만 4천여 평으로 카페, 갤러리, 식물전시장 등의 시설이 마련된 산귀래식물원은 2만 2천 평이며 도자기공방, 민텔, 사옥 등이 있는 산귀래별서만 1천 8백 평이다.
1982년 이곳에 부지마련을 시작한 별서의 주인 박수주 씨는 본래 축산업에 종사했으며 좋아하는 사슴을 키우는 일에 몰두, 1984년 사슴목장을 개원하게 된다. 여성의 몸으로 혼자 사슴 키우기에 부쩍 힘이 부쳤던 박 씨는 사슴을 떠나보내고 1994년 다시 산귀래식물원을 조성하기 시작, 개원한 지 10년 동안 들꽃들과 함께 지금까지 호흡하고 있다. 자생식물은 500여종으로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는 백일홍, 할미꽃, 연꽃을 비롯하여 털쥐손이, 범부채, 제비동자, 상사화, 벌개미취 등 쉽게 접하지 못하던 야생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사옥 처마 끝, 매달린 능소화는 매혹적이며 아련하기까지 한데 경계 없는 가을 하늘과 처마 사이에 들쭉날쭉 피어난 능소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록새록 기억들이 떠오른다. 퍼머넌트 오렌지 색깔을 띠우며….

겹쳐진 일상의 무늬
‘이방인’에서 ‘이웃’으로.
‘일상의 반복’, 아니 ‘일상의 중복’….
그 압력에 질식할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이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잠시나마 이런 감정의 기폭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곳, 바로 산귀래별서가 지닌 매력이다.
산귀래식물원 속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카페를 마주하게 되는데 탁 트인 창문을 통해 차를 마시면서 주변의 풍경으로 시야를 옮길 수 있다.
우리꽃 사진전, 우리꽃 슬라이드 시사회, 그림전, 목공예전, 들꽃이용 음식전, 시 낭송회 등의 축제가 있었던 갤러리는 들어오는 햇살만으로도 그 분위기가 아늑하다.
산귀래별서에 속해 있는 또 다른 장소, 도자기 공방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원한다면 흙 값만 지불하고서 자신만의 도자기를 맘껏 만들어 갈 수 있다.
그 맞은편으로는 민텔이 마련되어 있는데 능소화가 드리워진 창으로 햇살을 흩뿌리고 통나무로 이루어진 벽면은 마치 무릉도원의 어디쯤에 있는 듯한 기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산귀래별서를 들렀던 사람들은 잊지 않고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이곳을 찾는다.

환절기, 그 길목에 서 있다.
홀로 별서를 꾸려갔던 여주인이자, 수필가인 박수주 그녀는 많이 힘들어 했다. 야생화의 자리까지 넘나드는 잡초, 풀들을 호미로 직접 베는 일부터 병해충 관리 등 손 가는 일이 많았고, 식물원을 보러온 몇몇 사람들의 교양 없는 태도는 더더욱 박 씨를 힘들게 했다. 자라나는 식물을 뽑아가거나, 일부를 훼손시키는 경우도 많았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것이 아닌 무참하고 이기적인 행동들에 실망도 했다.
500여 종을 보살핀다는 것은 500여 명의 쌍둥이를 키우는 일과 사뭇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박씨.
박 씨는 대책을 세웠다.
사람들 손에서 병들었던 식물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그 첫 번째요.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방법,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이 필요함을 전하는 것이 둘째요. 마지막으로 원예치료연구소를 열어 아이들이나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도 정서적 안정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때문에 올해부터 휴식년에 들어간 산귀래별서는 일반관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식물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산귀래별서에 머물거나, 단체손님 등 원하는 방문객에 있어서는 식물원 관람이 가능하다. 박 씨는 “당분간 마구잡이로 사람을 들이지 않고 우리꽃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고 지킬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 모습을 허락하고 있지요. 해충도 자연의 섭리인데 꽃을 꺽거나 그들이 살아갈 환경을 망가트린다는 것은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식물에 대한 단호한 그녀의 사랑을 확인시켰다.

들꽃을 보라
박 씨는 산귀래별서가 생겨난 근본적 이유로 자생식물을 보호하고 육성, 식물개량의 기본이 되는 재래원종 유전자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 답했다. 그보다 더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일반인들에게 식물자원의 중요성과 우리의 것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연분홍의 시절, 마음 졸이던 소풍처럼 싱그러운 호흡을 하며 들꽃을 보라.
그리고 살짝, 미소 지으라.
wonye@hortitimes.com
문의:031-772-6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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