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비 재배하면 토양에 일석사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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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비 재배하면 토양에 일석사조 효과
  • 김민지
  • 승인 2020.09.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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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쟁기바닥이란 경반층(耕盤層)의 순 우리나라 말이다. 이것을 영어로 말한다면 ‘plow pan’이다. 쟁기가 지나간 자리의 흙바닥에 생기는 딱딱한 층을 말하는 것이다. 
경운기가 나오기 전, 소 쟁기로 논밭을 갈 때 비가 오고 나서 며칠이 지나야 만이 소를 끌고 밭을 갈 수 있었다. 그 이유를 할아버지께 여쭤보면 “비가 오고 나서 며칠 안에 물이 채 빠지기도 전에 쟁기로 밭을 갈면 지나간 자리에 쟁기바닥이 생겨 그 자리에는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어린아이가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네덜란드 유학을 가서 ‘plow pan’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토양병원을 열고 농업 현장에서 보니 답전환(畓轉換, 논을 밭으로 만든) 밭은 90%정도가 ‘쟁기바닥’ 때문에 문제가 커지는 것을 목격했다.

 

1번 하우스
1번 하우스

 

어디를 가도 만나는 경반층 


지난달에 충남 보령시 청북면에 있는 충남 마이스터 대학의 수강생인 유 선생의 농장에 다녀왔다. 토양학의 현장 실습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곳에 가기 전에 현지 농업기술센터와 우리 토양병원에서 한 토양분석 자료(표 1과 2 참고)를 가지고 떠났다. 


비닐하우스 5동(이 중 3동의 화학성만 제시)은 바로 집 앞에  있었다. 각 동의 토양분석 자료에 의하면 5동의 토양분석 성적은 별 차이를 못 느꼈다. 그런데 현장을 다 둘러본 나와 학생들 모두가 ‘1번 시설 하우스의 고추가 다른 시설 하우스에서보다 키가 가장 작았다’는 생각이었다. 주인인 유 선생도 생각은 같았다.


분석치로 보아서는 오히려 1번 하우스에서 전기전도도(EC)가 낮아서 좀 더 잘 자랄 것 같았다. 다른 하우스에는 9.8~9.9이었으나, 1번 하우스는 5.6으로 제일 낮았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1번 하우스는 고추그루의 키가 제일 낮았다. 나는 현장에 나갈 때면 지참하는 쇠꼬챙이(검토장)를 찔러 보았다. 다른 하우스에서는 쇠꼬챙이가 45cm나 들어갔지만 1번 하우스에서는 가장 얕은 35cm밖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유 선생님, 이 시설 하우스는 전에는 논이었던 곳이었지요?”
“그랬었지요. 어떻게 아셨지요?” 유 선생은 내가 점을 치고 물어보는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탐침봉을 가리키면 말했다.
“이 쇠꼬챙이로 흙속을 찔러보면 토심을 알 수 있는데요. 이곳이 안 되는 원인은 바로 토

 

심이 얕아서입니다. 이렇게 토심이 얕은 곳은 논을 밭으로 한 곳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에게 가을에 호밀과 헤어리베치를 혼파하여 심거나 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심토 파쇄기를 빌려서 심토를 한번 깨어놓으라고 일렀다. 이렇게 심토를 파쇄해도 4~5년 있으면 다시 반복해서 파쇄를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꽃삽이 전체가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 토양의 높이가 낮다
꽃삽이 전체가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 토양의 높이가 낮다

 

녹비 재배하면 경반층 깨고, 연작장해와 선충·인산 문제 해결
일석사조 이상 효과....


녹비, 특히 호밀을 재배하면 뿌리가 1m까지 뻗어 내려가면서 흙에 실같이 가는 뿌리도 내려간다. 처음 2~3년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호밀 뿌리가 초기에는 당년에 경반층을 다 뚫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을 가꾸다 보면 키도 다른 하우스처럼 크고 고추도 많이 달린다. 이렇게 가는 굴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잘 깨지지도 않고 그곳을 통해서 물도 오르고 내린다.


무엇보다도 하우스에 흔히 연작 때문에 불청객으로 오는 염류장해나, 선충 문제가 언제 그렇게 속을 썩였더냐 싶게 싹 사라진다. 또한, 배수도 좋아진다. 나는 주인에게 작물을 다시 심을 때 두둑을 조금 더 높이고 심으라고 당부했다. 더구나 흙속에서 움직임이 매우 나쁜 인산은 녹비에 흡수되어서 뿌리에 80%이상 저장되어 있다가 다음 작물에 넘기기 때문에 작물이 잘 자라게 된다.  

Eh 측정기로 수분상태를 재고 있다. 토심이 얕은 곳에서는 숫자가 낮아서 환원상태에 있다. 토양 Eh가 216으로, 199(보정계수)를 더하면 417이다. 따라서 480 이하이므로 환원상태이다.
Eh 측정기로 수분상태를 재고 있다. 토심이 얕은 곳에서는 숫자가 낮아서 환원상태에 있다. 토양 Eh가 216으로, 199(보정계수)를 더하면 417이다. 따라서 480 이하이므로 환원상태이다.

 

또 다른 경반층 피해자를 만나다


논에 밭을 만들고 고추를 심은 사람을 만난 것은 유 선생이 처음은 아니었다. 강 선생을 만난지는 벌써 3년이나 흘렀다. 내가 그분을 만난 지는 강 선생은 귀농한 지 4년째인 지난 2017년이었다. 그는 서울의 일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뜻한 바가 있어서 귀농했다.

 

전혀 연고가 없는 창녕으로 귀농하여 두 해 동안은 남의 집에 세를 살고 고추 농사를 짓는 집에서 일을 해주면서 농사일을 배워나갔다. 그는 고추 농사를 가르쳐주는 주인집의 권고에 따라 그의 고추밭을 샀다. 그 밭은 원래 논이었는데, 객토로 밭을 만든 곳이었다. 그는 주인이 가르쳐 주는 대로 농사를 지었다.

 

고추 농사 첫해는 그럭저럭 먼저 주인만큼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잘 지었다. 그러나 다음 해부터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추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동네 농약 방에서 자문을 듣고 농사를 시작하였으나 역시 잘 안 되었다. 농약방은 새로운 농약을 권했지만 잘 듣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인터넷에서 토양병원을 알아냈고 나를 초청하게 되었다. 

 

검침봉과 산화환원전위를 재는 전극.
검침봉과 산화환원전위를 재는 전극.

 

우선 급한 대로 흙을 떠다 분석해 보았다. 그의 고추밭 흙에는 너무 많은 노숙자(넘치는 양분)가 있었다. 전기전도도가 고추가 잘된 곳은 11.2인데 비해 안 된 곳은 15.5로 대단히 높았다. 한편 질산태 질소는 최대 200이면 충분하지만 461이나 되었다. 그래서 비료를 더 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렇게 처방을 해줬지만 계속 고추가 죽어간다고 호소를 했다. 강 선생의 고추밭은 죽어가는 부분과 산 부분이 확실한 구분을 보였다. 검토장으로 유효토심을 재보았다.

 

죽어가는 부분의 흙은 토심이 30~35cm에 불과했고, 잘 사는 부분의 토심은 45cm 이상으로 깊었다. 흙을 파보았더니 죽어가는 부분의 흙에는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서 벌써 환원 상태의 토양특성을 보였으나, 잘 크는 부분에서는 과습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결국은 유효토심이 고추를 죽이든지 살리든지를 결정하고 있었다.


토심이 고추의 생사를 결정한다고? 그 이야기는 흙 깊이가 주인의 생사를 손에 들켜 쥐고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 설명에 사실을 파악한 강 선생은 물이 많음을 인정하고 단수를 했다. 그는 단수를 무려 25일간 했다. 그리고 내 조언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물을 밤에만, 그것도 미스트(안개)로만 주었다.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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