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농사의 성패는 배수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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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농사의 성패는 배수에 달렸다
  • 김수은 기자
  • 승인 2021.06.0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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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를 대비해서 두둑을 높이면 과습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여름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다. 장마철의 폭우가 지속되면 부드러운 겉흙이 사라지고 유기물과 양분이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이번 호에서는 장마를 대비해 빗방울로 인한 침식과 과습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또, 배수가 용이하고 여름 작물이 잘 자라는 토양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겉흙과 양분을 빼앗아가는 장마철 토양관리법


‘6월 장마는 쌀 창고, 7월 장마는 죽 창고’라는 속담처럼 음력 6월의 장맛비는 늦은 모심기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필요하지만 벼 이삭이 피어나는 시기인 7월의 늦은 장마나 지나치게 긴 장마는 벼 농사에 해롭다. 이처럼 장마는 우리에게 쌀밥을 내려주는 고마운 손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달갑지 않은 피해도 준다. 흙의 입장에서 볼 때 장마는 결코 자애로운 엄마의 손길이 아니다. 오히려 성난 적수의 채찍처럼 매섭다. 빗방울로 인한 침식을 일으키고 양분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피부가 있는 것처럼 흙에도 피부, 즉 표토(表土)가 있다. 표토는 그 밑의 어떤 부분보다도 유기물과 양분이 많아서 조직이 잘 발달되어 있다. 표토 10cm까지는 공간이 많아서 뿌리를 뻗기에 좋지만, 밑으로 갈수록 공간이 적고 치밀해서 공기나 물이 머무를 곳이 적다. 


실제로 겉흙을 파보면 뿌리가 별로 없다. 겉흙일수록 자주, 또 쉽게 마르기 때문이다. 비닐이나 짚으로 피복을 해주면 아주 많은 뿌리가 양분이 가장 많은 겉흙으로 몰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폭우가 내리거나 장마철이 되면 채찍 같은 빗방울이 겉흙을 때리면서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첫째는 ‘우적 침식’(빗방울 침식)이다. 우적침식은 흙 알갱이가 깨지면서 사방으로 튀는 현상을 말하는데, 높이는 0.7m까지 수평으로는 무려 사방 2m까지 알갱이들이 튀어나간다. 깨어진 흙 알갱이는 표토의 작은 땅 구멍들을 모두 메워버린다. 표토의 작은 구멍들은 빗물과 신선한 공기가 땅속으로 들어가고 탁한 가스가 밖으로 나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거친 빗방울로 인해 침식이 일어나면 숨 구멍을 막는 것처럼 표토에 난 구멍을 메워 피해를 끼친다. 


두 번째 문제는 ‘유거 침식’이다. 이 침식은 흙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빗물이 표면을 흐르면서 겉흙을 깎는 현상을 일컫는다. 겉에 있는 고운 흙 1mm가 만들어지기까지 100년 이상 걸리는데, 한 해 장마가 지나가면 1cm 이상이 깎여 나간다. 1000년 동안 만들어진 흙이 단 1년 동안에 사라지는 셈이다. 이와 함께 상당한 양의 양분이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이 같은 현상을 ‘비옥도 침식’이라고 한다. 인산과 칼슘의 경우에는 작물이 먹는 양보다 더 많은 손실이 일어난다. 


장마는 밭 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밭에서 자라는 작물 중 고추가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데, 다행히 대부분 비닐 멀칭을 하기 때문에 침식을 억제해준다. 하지만 완벽한 예방책은 아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밖에 콩이나 옥수수, 고구마는 잎이 빗방울 침식을 어느 정도 막는 역할을 하지만 경사지에서는 고랑에서 일어나는 침식을 방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경사지에서는 물의 속도를 줄이고 깎이는 흙이 걸려 유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년생 목초를 중간중간에 심어 관리하는 것이 좋다. 흙과 양분을 빼앗아가는 장마철이 오기 전에 겉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야 한다.

 

2 여름 집중호우와 장마에 의해 토양이 유실된 모습.
여름 집중호우와 장마에 의해 토양이 유실된 모습

 

지역의 토질이 달라지면 농법도 달라진다


충북 제천과 강원 영월은 바로 이웃에 붙어 있다. 그곳에 사는 농민들은 곧잘 “제천에서 농사짓듯이 영월에서 하면 망한다”고 말한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설명한다.


“제천은 바위가 주로 화강함이라 흙이 거친 마사토인데 반해 영월은 석회암 지대라 흙이 매우 곱고 차지다. 제천에서는 비료를 많이 주어야 농사가 되는 반면, 영월에서는 비료를 많이 주면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영월에서 비료를 적게 주던 사람이 제천에 가서도 적게 주면 농사가 되지 않는다.”


이 말에는 토양과 비료에 대한 아주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 우선 제천의 마사토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마사토는 화강암이 그 자리에서 풍화되어 주저앉은 흙이다. 모래 같은 이 흙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거칠고 양분이 별로 없다. 분재를 할 때 이 흙을 쓰는 이유는 물과 양분이 거의 없어서 나무를 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영월의 석회암은 풍화되면 아주 고운 찰흙이 된다. 석회암에는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양분이 많이 들어 있어 비옥하다. 영월의 석회암은 양분을 지닐 수 있는 능력 즉, 양이온 교환 용량(CEC)이 제천의 마사토(5cmolc/kg)보다 4배(20cmolc/kg)나 높다. 


따라서 제천에서는 흙의 양분을 지니는 능력이 작아서 비료가 빗물에 많이 씻겨 내려가고 영월 흙은 양분을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커서 손실이 적다. 즉 양이온 교환 용량이 큰 영월의 토양은 비료를 적게 주어도 농사가 잘 된다. 지척 간에도 농사 방법이 달라지는 것은 이처럼 흙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사토에서는 어떤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좋을까? 일단 유기물을 많이 주고 녹비를 재배해야 한다. 또한 비료를 나눠주고 계속 유기물을 넣어 양분을 지닐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장마에 표토가 깎이면 흙 알갱이와 양분이 씻겨내려가 땅심이 크게 떨어진다.
장마에 의해 토양이 침식된 모습.
장마철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두둑을 높여주는 것이 좋다.

 

과습 피해 예방의 핵심은 배수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1000만원 짜리 나무가 시름시름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살펴보고, 궁리해 보아도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무병원 의사를 초빙했다. 의사는 나무를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땅속을 파헤쳤다. 흙을 파내어 보니, 붉은색 점들이 깨곰보처럼 흩어져 있다. 내려갈수록 회색으로 변색됐고 뿌리도 검게 죽어 있었다. 


“물이 안 빠지는 게 원인이네요!”


나무 병원 의사의 진단은 간단 명료했다. 나무 의사가 나무를 진단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흙을 파보는 것이다. 배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식물의 뿌리는 흙 속에 묻혀 있기만 하면 잘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정말 큰 오해다. 뿌리가 숨을 쉬어야 식물이 살 수 있다. 배수 불량으로 과습해서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하면 양분과 물을 흡수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복토해서 나무를 죽이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흙이 깊을수록 산소가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뿌리가 갑자기 늘어난 흙의 무게에 짓눌려 잘 뻗어나가지 못해 흡수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햇빛으로 물을 분해해서 수소에 산소를 만든다. 수소는 이산화탄소와 결합해서 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는 대부분 밖으로 나간다. 산소 중 일부는 뿌리로 내려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는 에너지를 만든다. 그러나 그 양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뿌리가 계속 산소를 호흡해야 충분한 흡수가 이뤄진다. 


흙이 과습하거나 치밀하면 왜 문제가 생길까? 잎에서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당은 뿌리 끝이나 줄기 끝에서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포도당에서 에너지가 나오려면 산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물이 꽉 차 있거나 치밀하면 산소가 공급되지 못해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편, 뿌리 주변에는 많은 미생물들이 존재한다. 미생물의 밥은 당이다. 분해되지 않은 당이나 가득 차 있는 뿌리는 미생물의 좋은 공격 대상이 된다. 


사람이 목욕탕 속에 들어가 오래 앉아 있으면 숨이 찬 것처럼 뿌리도 물에 잠기면 숨을 헐떡인다. 뿌리를 감싸고 있는 흙도 숨을 쉬어야 한다. 숨을 잘 쉴 수 있는 흙이 좋은 흙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뿌리가 잘 살려면 반드시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이 차서 환원상태가 되면 질소는 질산태(NO3-)에서 암모늄태(NH4+)로 변한다. 암모늄태 질소는 벼에게는 양분이지만 다른 식물에게는 독이다. 암모늄 독 때문에 잎이 노랗게 변하고 심하면 낙엽이 된다. 


산성인 우리나라 흙은 환원상태가 되면 알루미늄과 망간이 녹아 독이 되고 뿌리를 죽인다. 배수가 나쁜 환경을 좋아하는 작물은 벼 등 몇 가지에 작물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나무를 심기 전에나 농사를 짓기 전에 배수 상태를 잘 점검해야 한다. 심토에 붉은 점(철이 산화된 상태)이 생기거나 흙이 회색 내지 검은 색(철이나 망간이 환원된 상태)이 되면 배수가 나쁘다는 증거다. 붉은 점이 있는 부분은 1년 중 여섯 달 이내, 회색 점이나 검은 부분은 여섯 달 이상 물에 잠겨 있었다는 증거이다. 


배수가 나쁜 밭이 점질토이면 9~10m 간격으로, 그 외의 토성에서는 15~20m 간격으로 유공관을 1m 깊이에 묻어두는 것이 좋다. 깊이가 75cm 이내에 유공관을 묻으면 트랙터 무게에 관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농사의 도사는 배수를 첫째로 꼽는 사람이다. 

 

경사지 배추밭 두둑을 일정한 간격으로 V자, 일자, 사선의 골을 만들어 물을 가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만들었다.

 

두둑을 높이는 것이 장마철 재해 방지의 첫걸음


뿌리는 식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다. 어떤 풀이나 나무든 뿌리는 가장 먼저 나오는 기관이며 생존에 필요한 물과 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뿌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우리나라 선조들은 ‘근심엽번’이라고 가르쳤다. ‘뿌리가 깊으면 잎이 무성하다’는 뜻이다. 서양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뿌리부터 자라고, 뿌리부터 죽어간다’는 속담이다. 


지상부가 잘 자라면 굳이 파보지 않아도 뿌리가 잘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작물이 자라는 상태가 나쁘면 분명 뿌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과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뿌리는 식물 전체를 컨트롤한다. 물이 부족하면 호르몬을 잎에 전달해 숨구멍을 닫는다. 키를 자라게 하는 호르몬인 ‘지베렐린’도 뿌리에서 만들어진다. 먼저 뿌리에서 만들어진 다음 줄기를 통해 자라야 할 곳으로 배급되는 것이다. 담배의 니코틴도 잎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에서 만들어져 잎으로 간다. 해충의 공격 포인트가 되는 잎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독을 먹은 해충은 신경 계통에 교란이 일어나 죽거나 비실거린다. 아프리카에서 나는 밥구니아 나뭇잎은 매독과 나병 치료에 쓰이는데,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는 이 잎의 강력한 성분 역시 뿌리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뿌리는 공중이 아닌 오직 땅속에서만 숨을 쉬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땅속에서 숨을 쉬어야만 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있고 중요한 성분을 만들 수 있으며 양분을 저장할 수 있다. 식물의 지상부가 죽어가고 있다면 이미 10~20일 전부터 뿌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뿌리가 죽어가는 가장 흔한 원인은 배수불량에 있다. 산소가 없으면 에너지를 만들 수 없어서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다. 만약 기상청에서 비가 많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한다면 서둘러 배수가 잘 되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 좋다. 두둑을 높여 주는 것도 좋은 예방책이다. 지난 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배추밭 두둑을 높인 농민들은 배추를 제법 잘 키웠다. 배수가 잘 되는 비탈에 있는 배추밭에서는 생산량도 증가하고 품질도 좋아 재미를 보았다. 매년 연초나 장마철을 앞두고 미리 기상을 미리 예감한 농민들은 두둑을 높여 재해를 방지한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이처럼 연초에 그해의 기후를 예감해 미리 대비하는 혜안과 지혜,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정리= 김수은 기자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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