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체로가 간직한 잉카의 직조공예와 천연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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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체로가 간직한 잉카의 직조공예와 천연염색
  • 김민지
  • 승인 2021.07.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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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체로(Chinchero)는 페루 쿠스코에서 북동쪽 30km 떨어진 해발 3762m, 마추픽추를 가는 길목에 위치한 잉카시대의 멋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전통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옷감을 생산하는 이곳은 잉카의 직조공예와 천연염색을 체험할 수 있다.

 

직물 염색 시 사용하는 천연염료.
직물 염색 시 사용하는 천연염료.

 

친체로의 직조공예와 천연염색


친체로에 방문하면 페루의 전통모자인 몬테라스와 전통 치마 폴레라스를 입은 원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알파카와 양털의 실을 뽑는 과정, 직조 과정, 염색 과정을 차례대로 보여주며 직접 만든 상품들을 판매했다. 상품의 종류는 모포를 비롯해 셔츠, 재킷, 판초, 모자, 인형, 가방 등 다양했다.


여인들은 베틀에 앉아 염색된 색동실을 조합하며 알록달록한 문양을 만들어 낸다. 이 문양은 안데스산에 자생하는 로라이뽀라는 식물의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알파카와 양털의 수세 과정을 보게 됐다. 잉카의 샴푸라고 하는 사크타(Sagta)라는 식물 뿌리를 갈아 뜨거운 물에 넣으니 거품이 나면서 말끔히 세척됐다.


잉카시대부터 전해진 전통 재료들을 이용해 염색한다. 염색에는 식물의 뿌리, 줄기, 꽃, 과일, 자색옥수수 등 식물성 염료와 동물성 염료인 연지벌레(Coccus cacti) 등을 사용했다. 색상은 녹색의 경우는 각종 허브식물, 분홍색은 빨로빨로, 파란색은 킨사꼬초, 짙은 자주색은 자주 옥수수와 선인장 연지벌레를 이용한다.


선인장에 붙어 있는 연지벌레를 긁어 손바닥에 으깨니 짙은 자색을 보였지만 레몬즙을 떨어뜨리니 밝은 선홍색으로 발색됐다. 


이 염료는 입술, 볼연지 등 색조 화장품용으로 사용하는데 입술에 바르면 입맞춤을 200번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현지인의 설명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큼 염료로서 연지벌레의 가치가 높다는 이야기다. 천연염색에서 발색과 착색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매염제는 광석, 소금, 레몬즙 등을 이용한다.

 

천연염색된 실로 직조하는 모습.
천연염색된 실로 직조하는 모습.

 

오랜 기간 간직한 전통염색법


친체로를 방문하자 아프리카 모르코 페스(Fes)의 전통 가죽염색 공장인 ‘슈아라 테너리’(Chouara Tannerie)가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가죽의 무두질 작업을 통해 천연염색이 이루어진다.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염색법을 고집하며 ‘슈아라 테너리’는 가죽염색을 위해 빨간색은 양귀비, 주황색은 헤나, 노란색은 샤프란을 사용했다. 이처럼 지역에 따라 피염물과 염료의 종류는 다르지만 오랜 기간 그들만이 간직한 천연염색법은 그 자체가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다.


잉카의 숨결이 느껴지는 친체로를 페루 정부는 마추픽추의 관문인 신공항 부지로 결정했다.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에 착수했으며 한국공항공사와 국내 건설업체가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사업 대행 국가로 선정됐다. 기쁜 소식이지만 신공항 건설로 인해 잉카시대의 전통마을이 잘 보존될까 하는 염려가 생긴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

 

연지벌레에게 얻는 천연염료


코치닐은 패각충과에 속하는 중남미가 원산의 곤충인 연지벌레(Dactylopius coccus)에서 얻은 카르민산(Carminic acid)을 주성분으로 하는 적색 색소다. 채취된 연지벌레를 건조한 후 분말을 만든 다음 물이나 알코올 용액으로 색소를 추출해서 얻은 농축물로 내열과 내광성, 안정성이 우수해 음료수, 가공식품, 화장품, 의약품, 천연염색 등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색소 중 하나다.


수채화 물감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딸기우유나 명란젓 등 식품, 립스틱이나 볼연지 등 붉은 색소의 화장품으로 이용한다. 산도에 따라 중성에서는 오렌지색~붉은색, 산성에서는 오렌지색, 알칼리성에서는 적자색~자주색, 미량의 철 이온에 의해서는 자줏빛을 띤 검은색으로 색상이 변한다.


코치닐의 원료가 되는 연지벌레는 가시배선인장(Prickly pear cactus)과 노팔선인장(Opuntia ficus-indica) 같은 줄기가 넓적한 곳에 평생 기생하며 가루로 된 밀랍 같은 물질을 분비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연지벌레는 빳빳한 솔로 털거나 무딘 칼로 긁어 채취한다. 1kg의 코치닐 색소를 얻기 위해서는 8~10만 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하다. 최고의 염료를 얻기 위해서는 연지벌레 암컷인 코쿠스 칵타(Coccus cacti L.)의 산란 직전 시기를 노려야 한다. 알이 색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루 안데스산은 7개월 기간 동안 3회 정도 채취가 가능하다.

 

연지벌레에 레몬즙을 뿌리자 나타난 발색 차이.
연지벌레에 레몬즙을 뿌리자 나타난 발색 차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기 만점 코치닐


현재 전 세계 공급되는 연지벌레의 약 85%를 페루가 책임진다. 페루는 코치닐을 얻기 위해 선인장 재배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으며 남부 나스카 평원에 대단위 선인장 재배 단지를 볼 수 있다.


멕시코 오악사카주에서도 노팔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를 생산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연지벌레의 진홍빛에 매료돼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군복의 진홍색 염색 염료로 사용할 정도였다. 금·은 다음으로 귀한 자원으로 1650년부터 1860년까지 멕시코의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코치닐의 높았던 인기는 19세기 중반 합성염료의 출현으로 막을 내렸다. 간편하고 제조하기 쉬우며 비용도 적게 드는 합성염료가 단기간에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 착색 첨가제로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최근 건강과 합성염료의 안정성 우려로 최근 천연색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코치닐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글= 박윤점
원광대학교 원예산업학부 교수

정리= 김민지 기자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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