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북구교수의 타이완의 원예 정보 ]타이완의 종교와 꽃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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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교수의 타이완의 원예 정보 ]타이완의 종교와 꽃 문화
  • 월간원예
  • 승인 2017.09.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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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시설이 주요 꽃 소비처”

 

타이완에서 순수하게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10% 미만이지만 종교인의 폭을 넓히면 상당 히 많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에 따라 선을 쌓아야 다음 세상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 고, 도교는 각종 병마나 위험, 재앙 등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중 어 떤 것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타이완에서는 이 둘을 함께 믿는 혼합형 종교를 만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음으로 사람들은 만족했고, 타이완의 사찰들도 이것을 반영하여 불 교의 사찰이나 도교의 사찰이나 서로 대동소이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혼합된 종교를 포함해 서 민간 신앙이 종교화된 것을 포함하면 타이완 사람들은 80%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다. 종 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 또한 민간신앙이 하나의 생활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종교 시설은 인구 2000명당 1개 정도가 있다. 

 

학교보다 많은 종교시설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꽃이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꽃의 주요 소비처가 되고 있다. 꽃 장식은 숭배하는 신에 따라 사용하는 꽃 종류와 용기가 조금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신들에게 제 물로 바치는 꽃들은 주로 수반에 플로랄폼을 고정한 후 꽃을 꽂아 이용하며, 장소에 따라 병 에 꽂아 이용하기도 한다.

 

타이완에서 주요 종교

 

타이완(중화민국)은 중화민국헙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각 종교는 평등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포교 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타이완 정부 자료에 의하 면 종교 활동을 하는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약 156만 2606명이다. 이는 타이완의 2017년 기준 인구 약 2346 만4787명에 대입해 보면 6.7% 정도 해당된다. 

종교별로 는 도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일관도(一貫道) 순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비공식 자료에는 신앙 인이 82%, 무 신앙자가 18%이며, 타이완 국민 중 70% 가까이가 불교와 도교인으로 되어 있다. 이 자료는 민간 신앙을 도교 및 불교에 포함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 된다.

 

 

도교

 

도교는 한민족(漢民族)의 전통종교이다. 도교의 창시 자는 동한(東漢)의 장릉(張陵)이다. 장릉은 어려서 태학 (太學)을 익혔고, 젊어서는 오경(五經)을 익혔다. 말년에 는 장생(長生)의 도를 익혔고 24편의 도서(道書)를 만들 었다. 후에 노자(老子)를 중심으로 유교와 세간의 도덕 그리고 인과응보론 등을 첨가한 것이 도교의 기틀이 되었다.  

 

타이완에서 도교는 중국 남방계의 정일교(正一敎)에 속하며, 경전을 읽는 것, 기도, 부적과 주문, 귀신에 대 한 제사 등이 중시되고 있다. 타이완에서 도교는, 불교, 도교를 혼합시키고 토속신앙 속의 여러 신명들을 도교 적 색채로 입혀서 더 강화시킴으로 타이완 사람들에게 더욱 쉽게 다가가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거의 사라져버 린 도교의 제례 의식이 타이완에는 남아 있으며, 민간종교의 근간으로 종교 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 으며, 곳곳에 도교 사원이 있다.

 

기독교

 

타이완에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2%에도 못 미친 다.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17세기에 네덜란드가 원주민 을 상대로 선교를 하면서 부터이다. 네덜란드는 1624년에 타이완 섬의 서남부에 상업지구 를 건설하였다. 스페인은 1626년에 타이완 섬 북부 일대 를 차지하였다. 네덜란드는 1642년에 스페인을 몰아내 고 1662년까지 타이완을 통치하였으며, 이 시기에 원주 민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금도 타이완의 높은 산악지대에 사는 원주민 마을에서는 교회를 쉽게 볼 수 있다. 고산 족 원주민 사회에서 목사는 마을의 장로(長老)를 겸하 며, 교회는 마을 유일의 공유시설과 활동센터이다.

 

 

천주교

타이완에서 가톨릭은 스페인이 1626년에 타이완 섬 북부 일대를 차지하면서 포교가 되었다. 하지만 스페인 이 네덜란드에 패하면서 선교는 중단되었다. 이후 1859 년에 스페인 선교사가 타이완 가오슝에 상륙하면서 타 이완의 가톨릭교회가 시작되었다. 타이완에서 가톨릭은 소수이지만 20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종교 탄압을 피한 가톨릭 신자가 타이완으로 대거 이주했다.

 

불교 

 

불교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동양의 문화에 많 은 영향을 미쳐 왔다. 타이완에서는 불교는 18세기 이후 관음(觀音)을 주신(主神)으로 모시는 암자가 많이 건립 되었고, 관음상을 도교 사원으로 모시게 되어 불교, 도 교, 유교의 융합이 진행되었다. 1885년에는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 불교의 영향 을 받았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타이완은 국 민정부에 접수되었고, 1950년대에 중국 공산당이 종교 를 탄압하자 중국의 많은 불교 관계자가 대만으로 이주 했다. 이것을 계기로 관음신앙에서 대승불교로 주류가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타이완의 불교는 순 수한 형태의 불교 보다는 유교, 도교 그리고 민간신앙과 혼합된 형태로 변화되어 있다.

 

불교에서 꽃의 사용은 대개 연꽃(Lotus)을 이용하지 만, 연꽃의 구입과 이용에 한계가 있어 국화 등 다른 꽃 들의 이용도 증가되고 있다.

 

 

기타 

 

일관도(一貫道)는 청나라에서 창시되었으며, 타이완 에는 1946년에 전래되었다. 이슬람교는 중국 국민당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 이주해 온 이슬람족의 후예인 회족 (回族)에 의해 포교가 되었다. 천리교는 일본에서 발생 한 종교로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 지배했던 1897년에 타 이완 전도기구가 설립되어 포교 활동을 하다가 2차 대전 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포교가 중단되었다가 1967년 이 후 다시 포교를 하고 있다.

 

원고 작성에 도움을 준 타이완 타이중시정부 문화국(臺中市政府文化局) 문화자원과(文化資源科)의 장혜여(張惠茹)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글· 그림 원광대학교 원예산업학과 허북구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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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maca 2017-09-05 11:41:40
2차대전때,일본이 중국에 대만을 반환하여,유교국이던 대만유교가 다시 이어진 측면을 보아야! 세계사의 正史 개념으로 보면, 제자백가이후,漢나라때 국교로 성립된 유교는,이후 동아시아의 주요이념으로 세계종교화.http://blog.daum.net/macmaca/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