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지갑 여는 과일의 비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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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지갑 여는 과일의 비밀 ①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8.04.27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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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수입 1조원 시대, 먹기 편한 과일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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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수입액이 연간 1조원을 돌파했다. 수입 과일 품목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반면 국산 과일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생산액도, 비중도 감소 추세다. 왜 수입 과일 인기는 치솟는데, 국산 과일은 고전을 면치 못할까? 국산 과수 산업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활성화 전략이 필요한 때다.

 

 

지난 4월 저녁,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과일 매장. 냉장 진열대에 조각 과일 상품이 가득하다. 작은 용기(300g)에 담긴 조각 멜론은 이미 동났다. 같은 용량의 파인애플도 재고 한 개만 놔두고 모두 팔렸다.

반면 비슷한 용량의 조각 사과·배 혼합 상품과 방울토마토는 가격이 훨씬 싼데도 늦은 시각까지 재고가 가득하다. 바로 옆 상온 진열대에는 4개들이 배가 할인 판매되고 있었지만, 관심을 보이는 손님은 적었다.

 

과일이 ‘귀한’ 시대는 지났다
몸에 좋은 과일vs 먹기 편한 과일

본 기사 작성을 위해 20~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항목은 과일 구매 행태와 품목 선호도, 섭취 빈도와 이유 총 네 가지 항목이다.

조사 결과, 20~30대 소비자들에게 과일은 두 가지로 구분됐다. 하나는 ‘엄마(아빠)가 사다주는 과일’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좋아서 사먹는 과일’이다. 밥도 간편식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에게, 과일을 상자 채 쌓아놓고 먹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바로 여기서, 부모님표 과일과 스스로 사먹는 과일이 나뉜다. 부모님이 사다주는 과일은 주로 큰 상자에 담긴 과일이다. 대부분 전통 과일이다. 사과, 배, 감, 포도 등이다. 공통점은 껍질을 깎거나 일일이 뱉어야 한다. 껍질째 먹을 수 있는 과일은 기껏해야 사과 정도다.

신선 편이 과일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컵과일, 조각 과일 등 먹기 편리하게 세척 또는 가공한 과일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이 스스로 사먹는 과일은 다르다. 끼니 대신 먹을 수 있는 조각 파인애플, 조각 멜론, 세척 사과나 낱개 포장 바나나 등이다. 이 과일들의 공통점은 먹기 편할 뿐더러 사기도 쉽다는 점이다.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또 당도도 높다. 조각 또는 낱개 포장이다 보니, 회당 구매 가격도 대부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국내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개당 2000원이 넘는 낱개 포장 바나나가 불티나게 팔리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마트에 가면 남미산 바나나를 한 송이에 3000원 남짓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데, 왜 한 송이 가격에 맞먹는 바나나를 낱개로 사먹을까? 이유는 편리성이다. 커피 마시면서 식사 대용으로 먹기에 ‘아깝지 않다고 생각되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영악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수입 바나나와 농약의 상관 관계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바나나 껍질에 농약이 묻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닐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 먹는다. 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편의성이 곧 젊은 세대들이 과일을 구매하는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일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인기 과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소단위로 포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길거리 편의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의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일 소포장 상품. 일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유통업계에도 다품목·소포장 상품이 유행하고 있다.

‘팔아주기’ 행사로는 소비 증가 한계

신선 편이 과일이란, 신선한 형태로 다듬거나 절단해 세척 과정을 거친 후 위생적으로 포장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과일이다. 신선 편이 과일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과일을 포함한 일본의 신선 편이 농산물 시장 규모는 연간 3조원을 웃돈다. 주로 컵과일, 과일 도시락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인 가구, 맞벌이 가구 증가로 인한 신선 편이 과일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유명 다국적기업은 충북 음성에 신선 편이 과일 공장을 설립해 가동 중이다.

물론 모든 과일이 신선 편이 유통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사과는 깎아 놓으면 갈변한다. 복숭아는 부패 속도가 빠르다. 

이런 제약이 있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는 소비 촉진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매번 ‘수매’ 카드를 꺼내든다. 대표적인 예가 ‘사과, 배 팔아주기’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농민들도 이제 팔아주기 정책은 식상하다.

“팔아주기 정책은 임시방편이지요. 그런 것은 농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원하는 신품종 보급을 늘리는 게 더 시급해요.”

충남 아산시에서 50년 동안 배 농사를 한 농업인 A씨의 의견이다. 소비자들도 국산 과일 떨이 행사에 기대만큼 크게 호응하지 않는다. 특히 사과보다 선호도가 낮은 배는 아무리 싸게 팔아도 소비가 급증하지 않는다.

단순한 염가 마케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노력도 요구된다. 우박 맞은 사과에 보조개 모양 흠집이 있는 것에 착안해 ‘보조개 사과’로 판매하고, 덜 노랗지만 맛이 좋은 참외를 ‘반전 참외’라고 포장해 판매하는 식이다.

 

 

“과일도 품종이 있어요?”

신품종 평가회, ‘그들만의 잔치’로는 곤란

서울 서초구에 사는 대학생 이 모 씨는 최근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과일에도 품종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사과는 다같은 사과, 배는 다같은 배인 줄 알았다.

과일을 즐겨먹긴 해도 정작 과일 품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은 드물다. 먹고싶을 때 사먹으면 그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소비자에게 ‘사먹을 권리’는 있어도, ‘잘 알고 사먹을 의무’는 없다. 결국 신품종을 알리는 건 생산자와 유통업자, 그리고 농업 유관기관의 몫이다.

이런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실적 알리기 식의 신품종 평가회만 개최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신품종 육성의 목표는 결국 소비 촉진이다. 품종 보급에 성공하려면 소비자들을 더욱 가까이 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냉정한 평가 없이, 농업인들과 관련 학자들만 공유하는 품종 평가회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서울 가락시장에 수입 과일이 진열돼 있다. 국내 수입되는 과일은 15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한 17개 품목이다.

다행히 최근엔 농업 연구기관들도 유통업자에 대한 홍보 필요성을 자각하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대형마트도 주산지가 아닌 품종을 홍보하는 마케팅을도입하고 있다. ‘시나노스위트’ 등 이름은 생소하지만 맛있는 품종을 혼합한 ‘삼미삼색 사과’ 상품, ‘나주 추황배’ 전용 판매코너 등이 그 예다.

특정 품종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 관련 재배 기술을 재빨리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국내에서 재배 면적이 늘고 있는 청포도 ‘샤인머스캣’과 ‘엔비’ 사과가 그 예다. 샤인머스캣 포도와 엔비 사과는 각각 일본, 뉴질랜드가 원산지다. 두 품종 모두 고당도이며, 껍질째 먹을 수 있다. 맛과 편의성을 모두 갖췄다.

지난해 한 대형마트에서 엔비 사과를 시식한 B씨는 “지금까지 먹어본 사과와 확실히 다른 맛”이라고 호평하며 지속 구매 의사를 밝혔다. 엔비 사과는 평균 당도가 16Brix 내외로, 충청도 농가들을 중심으로 묘목이 보급되고 있다.

(표·그래프 = ‘과일 소비 트렌드 변화와 과일 산업 대응방안’, 박미성·이미숙·박한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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