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지갑 여는 과일의 비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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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지갑 여는 과일의 비밀 ②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8.05.30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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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과일? 큰 과일? 소비자 취향은 바로 먹는 ‘간편 소비형’ 과일

[더 많은 소식은 월간원예 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사과를 깎아서 먹는 문화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습니다.”(윤태명 경북대학교 원예과학과 교수)

“한국 사과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습니다. 그러나 높은 생산 단가 때문에 국제 경쟁력은 매우 낮습니다.”(정혜웅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 교수)

 

조각 파인애플과 삼각 김밥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먹기 편하다. 둘째, 보관이 편리하다. 셋째,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공통점은 또 있다. 도시 소비자들이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조각 과일은 바쁜 도시민들이 시간과 돈을 덜 들이고 당분과 섬유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 조각 과일 외 낱개 포장된 사과나 바나나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도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다.

 

 

과일도 ‘나홀로’사먹는다

낱개·소포장 소비 트렌드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 과일산업 대전에서 관람객이 국산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국내 과일 시장에선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신품종 과일이 선보이고 있다.

편의점 과일의 인기가 심상찮다. CU에 따르면, 과일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 16%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상승했다. 이에 CU는 지난 4월부터 ‘이달의 과일’ 프로젝트를 실시해 제철 과일을 선보이고 있다.

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해 소용량 과일 매출은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특히 바나나 매출은 80%나 급증했다. 시간대별 바나나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인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의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15%로 가장 높았다.

‘혼술’, ‘혼밥’이 유행인 시대에 낱개(소포장) 과일 소비 트렌드는 예견된 셈이다. 미리 적당량 만큼 잘라서 포장한 신선 편이 과일은 바쁜 도시민들에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설문 결과에 따르면, 컵과일을 ‘구입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7%에 달했다. 신선 편이 과일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0%를 웃돌았다.

국내 대표 과일인 사과와 배의 경우, 제수용이 아닌 평상시 섭취 목적으로 ‘상자 구매’를 희망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사과와 배를 상자째 사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9%, 5%에 불과했다.

저장성이 약한 포도는 소포장 구입 희망률이 더 높았다. 포도 구입을 희망하는 소비자의 78%가 2kg 또는 5kg 상자 단위의 구매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단지 몇 송이만 구입하고 싶다고 응답한 소비자도 20%나 됐다.

소포장 트렌드는 과수업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낱개 포장 과일이 상자 포장 과일보다 단가가 비싼데도 사먹는다는 건, 소비자들이 개별 단가보다 ‘회당 구입 가격’에 더욱 민감하다는 것을 뜻한다. 국내 과수 전문가들이 개선 요구 사항으로 꼽는 고질적 문제가 ‘높은 생산 단가’인데,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높아진 인건비와 생산 단가를 과거 수준으로 낮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높은 생산 단가를 높은 판매 단가로 매칭해 해결하면 될 일이다.

모양이나 색이 제각각이지만 맛이 좋은 과일을 ‘못난이’과일로 마케팅하고 이를 소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처=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과일 소비 트렌드 변화와 과일 산업 대응 방안’, 2018)

한편 껍질에 미세한 상처가 있거나 크기나 모양이 균일하지 못한 과일을 소위 ‘못난이’과일이라 부르며 오히려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 판매 사례도 돋보인다. 무조건 예쁘고 반듯한 과일만 선호하던 소비 풍토에서 소위 ‘가성비’를 중시하는 실용적 소비 문화가 자리잡은 덕분이기도 하다.

 

‘미니’사과, ‘미니’수박…

과일업계 미니 열풍 이어질까?

대형마트에 진열된 ‘애플수박’. 일인 가구 및 핵가족 시대에 걸맞은 ‘미니’품종 과일 재배가 늘고 있다.

소포장 과일 트렌드와 함께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현상이 있다. 미니 사과, 미니 수박 등 과일 생산 현장에 불고 있는 ‘미니’트렌드다. 탁구공 만 한 사과 ‘루비에스’품종과 사과 만 한 ‘애플 수박’등 작고 앙증맞은 과일은 첫눈에 시선을 강탈한다.

관건은 이런 ‘미니’ 품종들에 대한 관심과 소비의 지속성 여부다. 처음 몇 번은 신기해서 사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해를 거듭해도 꾸준한 구매가 지속돼야 ‘국민 과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 우선 호소하는 어려움은 판로 확보다. 공선회와 경매 시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과수 업계의 유통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품종과 다르면 ‘물량이 충분치 않다’며 받아주지 않거나 ‘파치’ 취급해 버리는 도매 관행 때문에 직접 판로 확보에 나서는 농가들이 의외로 많다.

따라서 미니 품종 재배를 시작하려는 농업인들은 단지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 사업에 솔깃해서, 혹은 ‘일단 심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하기 보다는 소비 추이를 지켜보며 품종 부분 전환을 실시하는 등 전략이 필요하다. 또 정부나 지자체도 보급 사업 실적에 연연해 농민들 등을 떠밀기보다는, 기존 품종의 유통 방식 개선에 함께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본도 소포장 트렌드에서 예외는 아니다. 소포장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아예 과일도 샌드위치처럼 걸어다니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포장을 간소화했다. 딸기와 곶감을 빵 봉지 만 한 비닐에 5~6개씩 포장해 판매하는가 하면, 백화점에선 샤인머스캣을 한 송이씩 포장해 3만원 남짓한 가격에 판다. 소비자 입장에서 취향을 철저히 파악해 마케팅한 결과다.

한국 역시 과일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고급화 전략 보다는 때와 장소, 그리고 소비 계층에 맞는 유통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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