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병사들과 말의 혈뇨를 멈춘 차전초 ‘질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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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병사들과 말의 혈뇨를 멈춘 차전초 ‘질경이’
  • 월간원예
  • 승인 2018.07.3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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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에 심으면 검푸른 시금치처럼 변하며 웃자라 죽어버린다.
● 길가에 심든가 텃밭에 심었으면 자주 밟아주어야 한다.

 

질경이를 양지바른 길가에서 한 움큼을 뜯어다 나물로 무쳤더니 쫄깃쫄깃하고 풋풋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몇 해 전 어느 월간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독일에 근무한 한 외교관 부인이 따스한 봄날 관저 뜰에 돋아난 질경이를 캐고 있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놀러왔다. “잡초를 어디에 쓰려고 캐지요?”, “한국에서는 연한 질경이를 삶아 나물로 무쳐 먹는 답니다.”며칠 후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전에 방문한 아주머니가 뻣뻣한 질경이 한 바구니를 건네주며 고국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어보라고 하더란다. 아마 유럽에서는 아직도 질경이 나물을 먹지 않는 모양이라고 했다.
산·들나물도 영양가와 효능을 알고 먹으면 더 맛있어 배불리 먹어도 탈이 없다. 질경이는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당분 등 영양가가 듬뿍 들어 있고 약효도 풍부하다. 플라보노이드, 아데닌, 콜린 등은 약리실험 결과 기침을 멎게 하고 소변이 시원치 않을 때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진해, 소염, 이뇨, 안질, 강심, 임질, 심장염, 태독, 출혈, 해열, 지사, 금창, 익정, 종독 등에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봄철에는 삶아 나물로 먹고, 말려두었다가 묵나물로도 먹는다. 소금물에 살짝 데쳐 기름 볶음이나 국거리로도 괜찮고, 생잎은 쌈을 싸 먹거나 김치를 담그면 맛이 각별하다.
환갑이 지나고 활동이 줄면 잠도 따라 줄고 신장계통이 약해지면서 반갑잖은 빈뇨와 잔뇨 증세가 나타나 괴롭다. 밤이 반갑지만은 않은 데다 소변까지 자주 보러 다니면 숙면을 취할 수 없어 아침이 되어도 기분이 개운치 않고 기력까지 쇠잔해진다. 밤중에 3번 이상 화장실에 가면 노인성 소변장애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증세에 질경이씨를 달인 차전자차(車前子茶)가 좋다. 
평소 질경이씨를 끓여두고 물처럼 마시면 기를 깎지 않으면서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물 5컵에 질경이씨 20~40g을 넣고 20~30분간 달이면 차전자차가 된다.

이뇨약 질경이 가꾸기
봄이 무르익은 4~5월쯤이면 밭이나 산 보다 마소나 사람들이 다니는 길 가운데 촘촘히 돋아난 것이 질경이다. 큰길 중에서도 환경이 열악한 돌과 바위 길에서도 잘 자란다. 다른 산·들나물은 대부분 채소처럼 밭에서 가꿔 대량생산을 할 수 있지만 질경이는 불가능하다.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길에서만 자라는 특이한 생태습성 때문이다. 질경이를 밭에 심어 가꾸면 그 모양새가 검푸른 시금치처럼 변하며 웃자라 죽어버린다. 질경이 나물을 즐기려면 비온 다음날 길가에 돋아난 깨끗한 것을 캐올 수밖에 없는데, 요즈음에는 오솔길에도 농약을 뿌려대니 깨끗한 나물이나 씨받기가 쉽지 않다.
깨끗한 질경이를 쉽게 얻으려면 텃밭 가는 길가에 옮기거나 밭에 심어 자주 밟아주는 수밖에 없다. 흔한 질경이는 씨를 뿌릴 필요도 없다. 길가에서 포기를 캐다 옮기고 퇴비만 뿌려주고 생육 중 수시로 밟아주면 된다.
질경이는 식물 전체가 매우 질기지만 식물들과의 생존 경쟁에는 매우 약하다. 다른 식물이 살 수 없는 길바닥이 아닌 곳에서는 연약한 식물에도 밀려버린다. 대부분의 식물은 밟힘이나 수레바퀴의 짓눌림이 무서워 길에는 얼씬도 못하지만 질경이는 그런 건 무섭지 않다. 
질경이를 캐보면 우선 뿌리목이 굵고 단단하여 위에서 누른 충격이 중간에서 차단당해 뿌리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잎줄기를 잘라 확대해보면 탱크에 짓눌려도 파괴되지 않을 만큼 촘촘한 유관속다발 섬유질이 빼곡히 들어 있다. 씨앗마저 단단하고 탱글탱글하여 밟히는 것은 위협적인 파괴요인이 못 된다. 마치 탱크가 지나가면 두꺼운 블록은 깨어져도 도자기를 감싼 부드럽고 올록볼록한 충격완화 비닐포장지는 끄떡없이 버티는 이치와 같다. 모질고 질긴 삶 때문에 이름조차 질경이가 되었다.
질경이는 민들레처럼 뿌리에서 바로 잎이 나오는 로제트 식물이다. 원줄기는 없고 뿌리에서 잎자루가 길게 나와 둥글넓적하게 퍼진다. 6~8월에 이삭 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자잘한 흑갈색 씨가 10월에 익는다. 잔디씨보다 작은 씨가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바지나 신발에 엉겨 붙어 새로운 길을 따라 이동도 곧 잘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씨는 마소나 사람의 발길에 수없이 밟히면서도 찐득찐득한 진을 방출하여 길바닥에 탈싹 붙어 몇 년이고 기다린다. 촉촉한 수분이 감싸고 있어 마르지도 않고 짓눌려 깊이 박혀 있다가도 때를 만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면서 무엄하게도 한길 위에서 잘도 살아간다.
대부분의 질경이들은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길가에 나 있는 질경이나 홀로 있는 것보다 촘촘히 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뿌리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서로를 자극하여 더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무장군과 차전초
질경이는 옛날부터 농사의 지표식물(指標植物)이었다. 길섶의 질경이가 말라죽으면 그 해는 큰 가뭄이 든다는 예고였다. 질경이 껍질은 제 몸무게 40배의 수분을 지니고 있어 긴 가뭄도 끄떡없다. 이러한 질경이가 말라 죽으면 어느 곡식인들 살아남겠는가. 산중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질경이가 보이면 인가가 가깝다는 징표였다. 사람을 따라다니며 인가를 알려주는 풀이기에 깊은 산중에는 없는 들풀이다.
유럽에도 여러 종류의 질경이들이 우마차가 다니는 길에서 자란다. 독일어로 질경이를 베거리히(Wegerich)라고 하는데, 이는 ‘길’을 뜻하는 벡(Weg)과 ‘모습’을 의미하는 리히(-rich)가 합쳐진 합성어다.
생명력이 질긴 만능약초 질경이는 고사에도 나온다. 옛날 중국 한나라에 마무(馬武)라는 훌륭한 장수가 있었다. 장군은 임금의 명령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다. 강적을 만나 한없이 기며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숙영에 들어갔다.
사면이 적군으로 포위당한 와중에 병사들은 굶주리고 사기마저 떨어져 무작정 여러 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사람도 지친데다 식량과 물까지 부족하여 많은 병사와 말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다. “장군님, 양식이 떨어져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안 되겠다. 이러다간 모두 다 죽고 말겠다. 회군하자” 마무장군은 병사들을 독려하여 회군하려 했으나, 이런 상태로 사막과 적진을 뚫고 나가다가는 전군이 전멸할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가로 막았다. 
죽어가는 말과 병사들의 수가 점점 늘어갔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책 없는 야영만 계속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사들의 아랫배가 부어오르는 ‘혈뇨병’까지 번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도 피오줌을 누면서 자꾸 죽어갔다.
장군 수하에는 말을 돌보는 성실하고 영특한 전속 마부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말 세 마리와 마차 한대를 관리했는데, 그가 돌보는 말도 피오줌을 누며 비실거렸다. 혼잣말로 “말들이 지쳐 있는데다가 먹이도 없고 피오줌을 싸니 이러다간 저 말들도 곧 죽겠군” 걱정하며 중얼거렸다. 마부마저 혈뇨병이 걸려 거동이 어려웠다. 마부는 말이 굶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말고삐를 풀어주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자 말들이 생기를 되찾고 맑은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먹었기에 병이 나았단 말이냐?”마부는 말 주변을 서성대면서 살폈다. 말들은 마차 앞에 있는 돼지 귀처럼 생긴 풀을 허겁지겁 뜯고 있었다. “맞아! 이 풀이 피오줌을 멎게 한 것이 틀림없어” 마부는 곧 그 풀을 뜯어다 국을 끓여 먹었다. 첫날은 별 변화가 없었으나 다음날부터 오줌이 맑아지고 퉁퉁 부었던 아랫배도 정상으로 회복되어갔다. 곧 장군한테 달려가 보고했다. “장군님, 병사들과 말의 혈뇨병을 고칠 약초를 발견했습니다” 마무 장군은 모든 병사에게 그 풀로 국을 끓여주고, 말에게도 뜯어 먹이라고 했다. 과연 며칠 뒤 병사와 말의 혈뇨병이 모두 나았다. 장군은 몹시 기뻐하며 마부를 불렀다. “과연 이풀은 신통한 약초로구나. 그런데 그 풀이름이 무엇이냐?”, “처음 보는 풀이라 이름을 모릅니다”, “그러면 그 풀을 마차 앞에서 처음 발견했으니 이름을 차전초(車前草)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 그 뒤로 그 풀은 차전초가 되었다. 그리고 기운을 추스른 병사들은 마침내 싸워 이겼다. 말의 병을 고쳤다 하여 의마초(醫馬草) 또는 마제초(馬蹄草)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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