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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 좋은 ‘무화과’

<월간원예 = 월간원예 편집부>

● 남부내륙에서도 겨울 보온이 필수적이며 영하 9℃가 한계기온이다.
● 나무를 밑에서 잘라 겨울에 땅에 묻으려면 1.5~2m 사이로 촘촘히 심는다.

● 한 가지에 7월 하순까지 건전한 잎 17~18매를 확보하고 순을 잘라버린다.
● 큰 잎이 많아 석회와 칼리 등의 요구량이 많다.

무화과는 아담과 하와 이전부터 가꿔온 재배역사가 꽤나 오래된 아열대 과실이다. 유다야산 서쪽 유적지에서 기원 전 5000년으로 밝혀진 말린 무화과가 발견되었고,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무화과 이야기가 나온다. 무화과는 뽕 나무과로 이들 나무에는 600여 종이 있으나 먹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재배한 한 계통뿐이다. 이 종류의 나무들 은 줄기나 잎에 상처를 내면 하나같이 젖빛수액이 나오고, 수꽃을 꽃집 안에 착생하여 과육으로 성숙시킨다. 소아시아 카리카(Carica)가 원산지로 학명도 그곳 지명을 따 피쿠스 카리카(Ficus carica)로 붙였다. 재배종의 선조로 보이는 카프리 계는 지중해 연안과 서남아시아의 반 건조지대에서 절로 자란다. ‘카프리’라는 이름도 무화과 재배가 성행한 이태리 남쪽 카프리 섬에서 유래된 듯싶다. 우리나라의 무화과에 대한 처음기록은 중종 때 간행된 『식물본초』에 ‘꽃이 피지 않은 과실’로 소개되었고,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꽃 없이 열매가 열리는데 그 빛이 푸른 자두 같으면서 좀 길쭉하다. 맛이 달아 식욕을 돋우며 설사를 멎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짐작컨대 조선중기에 약용식물로 들어온 것 같다. 이후 수백 년 동 안 과실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800년대 후반 김옥균 등이 일본에서 신품종을 들여오면서 비로소 소규모 과원이 조성되었고, 1970년대 초 새마을사업으로 남부지방에서 소득 작물을 찾던 중 영암 삼호 일대에 무화과단지가 들어서면서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무화과에는 비타민-A와 칼슘, 인 같은 미네랄이 많고 단백질 분해효소인 피신이 들어 있어 소화촉진은 물론 주독과 어독을 풀어주고 식이섬유의 이상적인 공급원이 된다. 매우 달아 생과로 소비가 많고 식초, 통조림, 쨈, 스프 등의 원료로도 쓰이지만, 식품점에 나온 말린 무화과는 전량 수입한 것이다.

변비약 무화과 재배
무화과 안전재배지대는 영암군 삼호면을 비롯한 남해안과 제주 등지로 한정되어 있다. 영암은 우리나라 무화과생산의 중심지로 국내 총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다음이 경남, 제주 순이다. 겨울이 너무 추워도 자라지 못하고, 여름에 비가 많은 지역도 가지에 곰팡이가 피어 나무가 상한다. 세계무화과 생산지가 하나같이 온난한 반사막인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는 재배 적지는 아니다. 지중해 연안 같은 천혜의 무화과산지에서는 여름가을 두 번 수확하지만 온대에서는 가을무화과 생산만 가능하다. 무화과의 재배한계는 겨울저온이 결정한다. 특히 어린나무는 추위에 약해 심은 후 3~4 년간은 보온덮개로 두껍게 싸매는 등 보온이 필수적이며 큰 나무도 영하 9℃가 한계기온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동해(凍害) 안전지대는 단감과 같이 13℃ 등온선 이남으로 본다. 남부내륙에 심으면 겨울 추위에 뿌리는 살아남지만 우죽은 동해를 받아 큰 나무로 키우기가 어렵다. 북풍을 막아주는 남쪽에는 살아남지만 취미 재배만 가능하다. 위도는 좀 높지만 충남 서산과 당진, 경기 강화, 동해안의 영일만까지 재배가 가능한 것은 난류 때문이다. 남해안에서도 무화과원은 햇볕이 잘 쪼이고 바람이 적어야 한다. 알맞은 토양산도는 pH 7.2~7.5 정도의 중 성 땅이 좋고, 뿌리의 산소 요구가 커 물 빠짐이 좋은 곳에 심는다. 남부내륙에서는 겨울에 나무가 죽어버려 큰 나무로는 불가능하고, 뽕나무처럼 매년 가을에 밑동을 잘라 흙을 두둑이 덮어 겨울을 나고 봄에 새순을 받아 가꿀 수는 있다. 가을에 줄기를 20~30㎝ 정도로 낮게 잘라 흙으로 묻고 위에 보온덮개로 덮고 군데군데 흙으로 눌러준다. 이러한 방법으로 가꾸려면 나무 사이를 1.5~2m 사이로 촘촘히 심는다. 중부지방에서도 무가론 하우스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가꿀 수 있다.
세계적 무화과 산지 지중해 연안은 연 강수량이 600~800mm이며, 나무가 자라는 4~10월중에 100~250mm 내외의 비밖에 오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연간 1200~1500mm나 내리고 그것도 여름에 집중되어 너무 습하다. 이처럼 생육기의 고온다습은 나무를 웃자라게하고 일조량을 떨어뜨리며, 곰팡이가 생겨 낙과, 착색불량, 당도저하 등의 악영향을 끼친다. 무화과 씨에는 싹이 되는 배아(胚芽)가 없다. 그러니 씨 번식은 불가능하고 꺾꽂이, 접붙이기, 휘묻이 등 영양 번식만 가능하나, 가장 쉬운 것은 꺾꽂이 번식법이다. 부근에 좋은 품종이 있으면 봄에 몇가지 꺾어다 꽂아도 잘 살고, 묘목을 구하려면 영암 삼호농협에 연락하면 독농가를 안내해준다. 조생종과 만생종을 각각 2~3 주씩 심으면 한 가족이 먹을 만큼 열린다. 심은 당년부터 열매가 맺지만 수확은 2년째부터 가능하다. 무화과는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 뻗어 심을 구덩이와 골치기, 제초작업을 할 때 깊이 파주면 해높다. 드물게 심어 큰 나무로 가꿀 때는 나무모양을 비교적 낮은 배상형(盃졽形)으로 만들어야 관리가 쉽다. 배상형은 성목이 되면 낮은 술잔모양이 된다. 묘목을 심고 원 줄기를 30~40cm 높이에서 바깥쪽으로 향한 곁눈위를 자르고, 당년에 새로 나온 가지 중 튼튼한 것 3개를 골라 원가지로 삼고 3방향으로 배치시킨다. 약한 가지 는 세우고 강한 가지는 뉘여서 원가지를 균일하게 기른다. 2년째는 각각의 원가지에서 다시 3개씩의 덧원가지를 받아 열매가지로 삼는다.

3년째도 전년도 열매가지에서 3개씩을 더 받으면 열매가지가 27~30개가 되고 나무모양이 완성된다. 이후부터는 매년 열매가지의 1/2씩을 잘라 사방으로 넓히면서 묵은 가지를 갱신해간다. 무화과는 나무의 성질이 다른 과수와 달라 갈라진 곳에서 바싹 자르면 밑에 붙은 눈이 죽거나 새가 지가 약하게 나온다. 원줄기로 길러 쓰고자 하는 부위에서 위로 두세 눈을 붙여 잘라야 세력이 강한 순을 얻는다. 열매가지는 1.2~1.5m 높이로 고정하고, 주당 열매가지 30개 정도를 유지해가며, 한 열매가지에 4~5개를 붙이면 알맞다. 너비 80㎝, 깊이 50㎝로 줄 간격 3.6m, 포기 사이 2.7m에 1주씩 심으면 10a당 103주를 심을 수 있다. 생육모양을 보면 새가지가 4월 하순부터 자라기 시작해서 6월 중순까지는 빨리 자라고 이후부터는 서서히 자란다. 한 가지에 7월 하순까지 건전한 잎 17~18매를 확보하고 더 자라지 못하게 순을 집어버린다. 과실 한 개당 큰 잎 1개가 필요하므로 1개의 가지에 잎 수와 과실수가 일치한다. 잎과 열매의 비율이 1:1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결과습성은 다른 과수에서 볼 수 없는 무화과만의 특성이다. 열매는 1년생 가지에 초여름에 열려 초가을에 익는다. 무화과는 생육기간이 길고 큰 잎이 많아 석회와 칼리 등의 요구량이 많다. 전원에 몇 주 심을 때는 구덩이 당 퇴비 10ka, 석회 1kg, 요소 0.3kg, 용성인비 0.5kg, 염 화가리 0.2kg을 넣어 심고, 나무가 커감에 따라 매년 10~15%씩 늘여준다. 이것도 번거로우면 석회만 별도로 주고 퇴비와 과수용 복합비료 가꾸어도 수량과 맛에 큰 차가 없다. 거름주기는 다른 과수와 약간 다르다. 어린나무 때는 나무 밑 전면에, 큰 나무가 되면 나무 밑에 3~4개의 골을 방사상으로 파고 준다. 무화과는 비교적 병이 적은 과수로 무농약 재배가 가능하나, 최근 집단 재배지에서 역병, 탄저병, 더뎅이병, 줄기마름병 등이 나타나 농약방제가 늘고 있다. 무화과의 익는 모양은 ‘1일 1과 성숙’으로 알려진 것처럼 매일 한 가지에서 한 개씩 익어 날마다 또는 격일제로 딴다. 보통 10월 상중순까지 익은 것은 생과용으로 그 후의 것은 쨈과 식초 등 가공용으로 쓴다. 완숙과는 약간 들어 올리면서 조심스럽게 따야지 껍데기가 얇아 돌리거나 무리하게 다루면 상처가 난다. 까먹을 때도 거꾸로 들고 꼬투리 쪽에서 꼭지 쪽으로 벗긴다. 다른 과실처럼 벋기면 뚝뚝 떨어져버린다.

은화과 이야기
남부 해안이나 섬에 가면 토종 무화과나무라고 할 수 있는 천선과(天仙果)가 자란다. 키는 2~4m정도이며 무화과 같은 갈래 잎이 아니고 긴 타원형으로 끝은 뾰족하고 아래쪽은 둥글거나 약간 오목하다. 암수딴그루로 줄기와 잎을 ‘우내시’ 열매를 ‘우내장’ 뿌리를 ‘우내장근’이라고 하며, 한방에서는 치질, 관절염, 혈액순환의 건재로 쓴다. 무화과처럼 꽃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 보이지 않은 채 열매가 익는다. 꽃이 보이지 않아 은화과(隱 花果)라고도 하며, 5~6월에 꽃이 피어 지름 15mm 내외의 흑자색 열매가 9~10월에 익어간다. 마치 모양과 색이 젖꼭지와 흡사하여 남부지방에서는 아예 젖꼭지 나무라고도 한다. 무화과에 비해 작고 당분도 적다.
우리 조상들은 흔히 사물이 가지는 특성이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모두 미신은 아니었다. 요새말로 표현하면 수년간의 임상체험으로 그 이치를 터득시키고 동기 강화를 위하여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했을 따름이다. 임산부들에게 발가락이 붙은 아기가 태어난다고 오리 고기를 금했고, 닭살이 돋는다고 닭고기도 못 먹게 했다. 오리와 닭은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아 아이가 고혈압 체질로 자라거나 유산 가능성도 있어 금했던 것이다. 처녀들에게는 무화과도 못 먹게 했다. “꽃도 없는 과실을 왜 먹어? 아가씨는 그런 과실일 랑 먹지 말아요.” 처녀들이 꽃 없는 무화과를 먹으면 아기집에 탈이 생긴다고 말렸다. 여자들은 씨가 많은 과실 을 먹어야 자궁이 발달하여 애를 잘 낳는다는데 겉으로 보아 꽃이 없으니 씨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잘못이었다. 무화과는 이름대로라면 꽃이 없어야 한다.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주머니처럼 커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그 속에서 피어 수정이 되어 깨알 같은 씨가 된다. 주머니 속일지언정 무화과도 꽃은 핀다. 주머니 안에서 피는 꽃이라 겉에서는 볼 수 없어 ‘꽃 없는 과실’ 즉 무화과(無花果)가 되었을 뿐이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식물은 꽃이 피어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더러는 꽃은 피우나 수정이 안된 채 씨 없는 과실을 맺기도 하지만 꽃 없는 과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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