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혁명 농안법 혁신이 답이다”

2021-03-30     월간원예

2021년, 농산물 유통개혁을 논하다

 

요즘 들어 도매시장에서의 거래 다양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농수산물 유통구조가 혁신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은 여름내 밭에 나가 김을 맸다.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어렵게 수확한 농산물과 힘들게 잡은 수산물은 어디에든지 팔아야만 돈이 된다. 그래야 농민도, 어민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농어민이 시장에 직접 내다 팔았다. 그런데 시장은 늘 변해, 애써 고생한 농산물을 다 팔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해 농사지었는데, 판매가 안 되면 농민은 생계는커녕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비료에 어구에 각종 부자재 설치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은 원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려 만든 법이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시도마다 개설하고, 농어민들이 가져오는 농수산물을 의무적으로 사주도록 만든 것이다. 농어민의 유통 걱정을 확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도매시장에 농산물 의무구매를 담당하는 이는 도매시장법인으로 정해졌다. 시시각각으로 밀려드는 농산물양의 변동은 그날그날 가격변동이 가능한 경매제로 정해졌다. 여기에 도매시장법인은 소비자에게 직접 농수산물을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소매상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소매상인은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와 약간의 이문을 붙여 동네에서 사과도 팔고, 어물도 파는 사람들이다.


이런 산지 농어민,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소매상인, 소비자로 이어지는 시장구조의 형성은 농안법이 만든 것이다. 농안법에서는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을 지정하고, 경매인을 통한 거래를 정해 놓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시장도매인이 가능해졌지만, 2004년 강서시장을 제외하고는 도입된 곳이 없는 실정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요즘 들어 도매시장에서의 거래 다양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농수산물 유통구조가 혁신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매시장법인 경쟁압력 작동하지 않아 
도매시장법인은 정부지정 경제주체이다. 문제는 이들은 좀처럼 시장 퇴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시장 풍파와 무관하게 해체되거나, 퇴출되지 않듯, 도매시장법인도 마찬가지이다. 평가제가 있지만, 전국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평가를 받아 퇴출에 이른 경우는 전무하다.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망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경쟁압력이 작동하지 않다 보니, 혁신의 유인이 생길 수 없다. 지난 20여 년간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유통혁명이 이루어졌지만, 도매시장법인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정부가 보장해 준, 시장구조 속에서 안정적인 이윤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2004년, 시장도매인을 도입한 강서시장은 좋은 실험이다. 산지 농어민-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소매인으로 이어지는 도매시장구조에 산지 농어민-시장도매인-소매인이라는 유통채널을 인정했다. 당장 유통단계의 감소로 중간마진으로 인한 가격인상 수요가 낮아졌다. 
유통단계를 거칠 때마다, 트럭에 농수산물을 실어, 몇 시간씩 대기하거나, 농수산물을 트럭에 올리고, 내리는 번거로움과 비용도 줄어들었다. 
신선식품, 최대한 빨리 소비자에 도달해야 하는 과일 같은 것은, 경매를 진행하고, 도매시장법인이 사들이고, 중도매인에 넘기는 동안 몇 시간이 훌쩍 간다. 아침에 산지에서 출하해, 저녁이면 소비자에게 갈 것이, 이런 다단계의 유통구조를 거치면, 다음날 아침에야 동네마트에 도착할 수도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경쟁이 없는 정부가 보장한 시장은 사실 시장이 아니다. 시장은 거래를 통해 가격이 형성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부단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유통시장도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소비자는 이로부터 더 나은 혜택을 누린다.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은 성공적으로 수익을 얻고, 여기에 실패하면 퇴출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력이 낮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퇴출되는 곳이 시장이다. 이런 메커니즘이야말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시장의 비밀이다.

미꾸라지에 메기를 풀 듯, 거래 제도를 다양화해야 
반론도 있다. 농안법 원래 취지를 보자고 한다. 산지 농어민의 출하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농산물 유통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재의 농안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일본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농산물 유통구조를 가진 국가였다. 그런데 전면 혁신을 통해, 농산물 유통시장의 경직성을 타파했다. 경쟁을 도입한 것이다. 농수산물 유통에도 작동하는 시장의 힘을 이해한 때문이다. 미꾸라지에 메기를 풀 듯, 거래 제도를 다양화해야, 아니 장기적으로는 지금의 농안법 구조를 폐지하고, 농산물 유통시장에도 전면적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생산자도, 소비자도 더 나은 유통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021년, 어느새 유통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 잡은 대형마트는 산지 농어민들과 직거래 계약을 통해 농수산물을 공급받고 있다. 이들은 전문 엠디(MD)를 두고, 산지를 돌아다니며 신선하고 품질도 좋은 농수산물을 찾아낸다. 농어민들은 엠디들과 계약을 하기 위해 신경을 쓴다. 이문도 좋고, 장기계약이라도 하면, 안정적인 거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지 농어민들은 도매시장법인으로 출하도 하지만, 소비자에 직거래도 한다. 


농협은 산지에서 직접 모은 농수산물을 택배로 직접 소비자에 판매해 보낸다. 생협 같은 곳은 아예, 산지조합원 체제를 갖추고 있다. 높은 품질로 차별화된 농수산물을 공급받아 시장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농수산물, 유통의 판은 이미 오래전이 이렇게 바뀌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농산물 유통구조, 이것을 형성하고 있는 농안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산지 농어민일까, 소비자일까, 도매시장법인, 경매사, 중도매인일까? 농어민과 소비자는 정부가 정하지 않은 자유시장의 경제주체들이고, 도매시장법인과 경매사, 중도매인은 도매시장을 운영하다 보니 정부 제도로 만든 경제주체들이다. 정부 제도로 형성된 이들 유통구조를 간소화, 아니면 거래 다양성을 도입해, 경쟁의 숨결을 넣을 수만 있다면, 농어민과 소비자가 이익을 볼 수 있다.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경매사들도 좀 더 경쟁 유인, 시장유인을 느끼고 혁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한국규제학회 부편집위원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