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농부의 시련을 딛고 피어난 달콤한 딸기

충남 서산시 ‘딸기에 반하다’ 노재현, 박혜라 대표

2026-03-04     이지우

17년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돌연 사표를 던진 남편,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농부가 된 아내. 서산의 한 딸기 농장에는 1981년생 동갑내기 부부 노재현·박혜라 대표의 치열하고도 달콤한 인생 2막이 흐르고 있다. 전체면적 약 1.2ha(5000평)에 850평 5개 동의 하우스에서 유례없는 수해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살아있으니 괜찮다”며 웃어 보이는 ‘딸기에 반하다’ 부부의 긍정 에너지는 이곳의 딸기만큼이나 진하고 달콤했다.

 

자동차 완성차 조립 공장에서 17년을 근무한 베테랑 직장인이었던 노재현 대표는 어느 날 상의도 없이 사직서를 던졌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비전이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하는 만큼 벌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죠. 사실 출근했다가 용기가 없어서 그냥 사직서를 쓰고 나왔어요.”
갑작스러운 결정에 당시 전업주부였던 박혜라 대표는 당혹스러웠지만, 남편의 결정을 존중했다. 박 대표는 “한 달이면 되겠지 싶어서 ‘오빠 잘했다’ 했는데, 슬럼프 기간이 길어져 2년을 쉬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내 새끼 잘못될까 봐” 땅을 임대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부부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기존 골조를 리모델링하고 베드를 새로 올리며 땀을 쏟았다. 처음엔 단순히 농사지어 경매장에 넣으려 했던 노 대표와 “우리 애들 놀게 체험 농장을 하자”던 박 대표는 의견 차이를 겪기도 했다. 박 대표는 “동네 어르신들처럼 재배만 해서는 타산이 안 맞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아내의 승리로 지금의 ‘딸기에 반하다’가 탄생했다.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자리, 눈물로 씻어낸 희망
농사가 손에 익어갈 무렵인 2년 차 여름, 부부에게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닥쳤다. 기록적인 폭우로 농장 전체가 물에 잠겨 거대한 ‘바다’가 된 것이다.
“밖에는 물이 목까지 차올랐고, 하우스 안의 문도 열 수 없을 정도였어요. 모든 게 둥둥 떠다녔고 장비 피해만 수천만 원이 발생했죠. 보상금은 부대시설 위주로만 나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정말 아작이 났죠. 다시 마이너스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부부를 일으켜 세운 건 ‘사람’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3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달려와 진흙을 퍼냈고, 그 모습을 본 노 대표의 어머니는 멀리서부터 울며 달려와 감사를 전했다. 박 대표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당시를 회상했다.
“수해 현장 사진을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딸기 안 팔리면 동정심 호소용으로 한 장 올려서 팔려고요.(웃음) 단골손님들이 비만 오면 ‘거기 또 잠길까 봐 걱정된다’며 연락을 주시는데, 그 마음들이 고마워서라도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3년 차의 당참, 그리고 ‘엄마의 디테일’
재배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창기엔 두 명의 멘토(스승)가 서로 다른 조언을 하는 통에 “이분 말 들어야 하나, 저분 말 들어야 하나” 혼란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3년 차인 올해는 데이터 대신 감에 의존해 비료와 물을 더 주다 작황 부진을 겪기도 했다. 노 대표는 “조금 안다고 건방지게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리스크가 있었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 속에서도 체험 농장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비결은 박혜라 대표의 섬세함과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입장료 8,900원에 음료와 2시간 이용권을 제공하고, 수확한 딸기는 디지털 저울로 무게를 달아 100g당 가격을 매겨 결제한다.
“애를 키워본 엄마의 마음은 남자들과 다르거든요.”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소한 배려들이 손님들에게 ‘편안한 놀이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사람을 응대하는 것이 힘들어 체험을 포기하는 농가도 많지만, 이들 부부는 다르다. 박 대표는 “손님들이 와서 즐거워하고, ‘사장님 너무 친절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저녁에 몸은 뻗어도 정신적인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노 대표 역시 “재방문해 주시는 분들 얼굴을 기억하고 인사드릴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40대 귀농인에게도 정책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현재 ‘설향’ 품종을 주력으로 딸기 아이스크림과 라떼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부부는 현장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특히 40대 초반인 부부에게 ‘만 39세’까지로 제한된 청년 창업농 지원 정책은 큰 벽이었다.
“농촌 현장에서는 65세 이상이 절반이 넘어요. 50대 초반도 ‘어린애’ 취급을 받죠. 저는 이제 46살이니 여기선 거의 ‘총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원 정책은 39세에서 딱 끊기니, 실제로 귀농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40대들이 혜택을 못 받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노재현 대표는 농촌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연령 제한을 현실화해 40대 귀농인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체험 공간 활성화를 위해 민원 발생 여지가 있는 부분의 규제 완화가 더 폭넓게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부부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서로 싸우지 않고 지금처럼 즐겁게 농사짓는 것”이다. 수해의 상처와 현실적인 제약들을 딛고 다시 일어선 ‘딸기에 반하다’ 농장에는 오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달콤한 딸기 향이 가득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