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줄고 기후는 어렵다, 2026 고추농사 전망

충남 서산시 흥농상사 이병민 대표

2026-03-04     이지우

고추는 기상 여건과 노동력 수급에 민감해 해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작물이다. 충남 서산에서 종자 및 농자재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흥농상사 이병민 대표는 2026년 고추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단순히 면적이 줄어드니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1차원적인 전망을 경계했다. 현장의 목소리와 객관적인 통계를 통해 2026년 고추 농사의 쟁점들을 깊이 있게 짚어봤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 2026에 따르면 2026년산 건고추 재배 의향면적은 2만5014헥타르로 조사됐다. 전년 대비 2.8%, 평년 대비 9.9% 감소했다. 이를 현장에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병민 대표의 분석은 조금 더 입체적이다. 그는 재배면적의 감소와 올해 고추 시세의 전망을 단순화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지역 농약사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올해는 진짜 안 심는다, 매출이 30%나 줄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게 전체 면적의 감소를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서산 농가는 서산 농약사에서만 샀지만, 이제는 유튜브와 온라인 시장이 열리면서 구매처가 전국으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마케팅과 콘텐츠를 갖춘 특정 업체들로 구매가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일반 오프라인 농약사들은 손님이 끊겼다고 느끼고 이를 곧 농사 포기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실제 감소 폭은 크지 않은 수준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고령화로 인해 고추 농사를 접는 어르신들이 늘어나는 것은 상수지만, 그 빈자리를 대규모로 농사짓는 젊은 층이 메우고 있어 생산 기반이 우려될 수준은 아니라는 진단이다.

이 대표가 주목하는 더 큰 변수는 생산성의 변화다. 농업전망 보고서는 재배면적 감소의 영향으로 2026년총생산량이 전년 대비 2.8퍼센트 감소한 5만9000톤 내외가 될 것으로 예측했으며 중장기적으로도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현장의 시각에서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과거 관행 농법에 의존하던 고령 농가들은 자연 감소하고 있지만, 새롭게 진입하거나 규모를 키우는 3040 청년 농부들의 농법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비 안 오면 하늘만 바라보지만, 젊은 친구들은 점적 관수를 기본으로 깔고 관정을 파서라도 물을 댑니다. 1,000평 이상의 대면적에 체계적인 영양 관리가 들어가면, 한 줄 심어 반 근 따던 밭에서 한 근 이상을 수확해냅니다.”
즉 통계상 전체 재배 면적과 총생산량은 감소 추세를 보일지라도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전문 농가의 약진이 이런 감소분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면적이 줄었으니, 시세가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위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짜 위기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있다
이 대표는 고추 농가의 수익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소비 부진을 꼽았다. 농업전망 보고서 역시 2025년산 건고추 1인당 소비량이 전년보다 17.8% 급감한 2.5kg으로 추정된다고 밝혀 이런 현장의 위기감을 정확히 뒷받침했다. 작년은 기상 악화로 작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세가 받쳐주지 못했다. 물량이 없는데 가격이 오르지 않는 기현상의 원인은 명확했다.
“식당 경기가 너무 안 좋습니다. 고춧가루가 대량으로 소비되는 곳이 결국 외식업체와 공장인데, 경기 불황으로 소비 자체가 꽉 막혀버렸습니다. 여기에 중국산 고추가 그 빈틈을 꾸준히 대체하고 있고요. 자재비와 인건비는 다 올랐는데, 고추 가격만 20년 전과 비슷한 수준인 1만5000원 선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입니다.”
농업전망 통계상 2025년 화건 상품 평균 도매가격이 600그램당 1만3300원 선이었음을 감안하면 농자재를 직접 구매하며 밭을 일구는 농가들이 체감하는 산지 거래선과 비교할 때 채산성 악화의 충격은 통계 수치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종자 시장 트렌드
절대 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

올해 품종 선택의 트렌드는 어떨까. 이 대표는 시장을 독식하는 슈퍼 품종이 사라졌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과거 칼라탄이나 칼탄패스와 같은 복합내병계 품종들이 시장을 휩쓸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모든 종자 회사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에는 탄저병과 칼라병 등에 강한 내병성 유무가 품종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었으나, 이제는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메이저 품종이 고른 내병성을 갖추게 되었다. 특정 품종이 병해에 압도적으로 강해 시장을 석권하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이제 내병성은 품종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 대표는 이제는 단순히 품종의 이름이나 명성에 기대기보다 누가 육종했느냐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대형 브랜드의 인지도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실력 있는 육종가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알짜배기 품종들을 추천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재배 환경에 대한 접근법이다. 품종 간의 기술 격차가 좁혀진 만큼, 이제는 내가 농사짓는 지역의 토양 성분과 미세한 기후 특성에 얼마나 부합하는 품종을 고르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유명한 품종을 맹목적으로 쫓기보다는, 내 밭의 흙과 나의 재배 스타일에 최적화된 품종을 찾아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어떤 우수한 품종을 심더라도 기상 여건에 따른 세심한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품종의 특성을 잘 파악해 정밀하게 관리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평작 이상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시대입니다.”

육묘기 기초 체력이 승부처
이 대표는 올해 기상 전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최근 몇 년간의 패턴을 보면 태풍은 줄어드는 대신, 국지성 폭우와 장마철 고온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비가 오는 시기가 뒤로 밀리면서 수확기에 비가 겹치는 현상은 치명적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우면 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꽃이 떨어지거나 기형과가 생깁니다. 밭에 나가서 비료 좀 더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육묘입니다. 정식 전 모종 상태일 때 뿌리 발근제, 아미노산, 해조 추출물 등을 충분히 공급해 기초 체력을 극대화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밭에 나갔을 때 냉해나 고온 스트레스를 버티고 활착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 이병민 대표는 냉정한 조언을 남겼다. 고추 농사가 과거처럼 대충 심어 용돈 버는 작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고추 농사는 보다 전략적 경영과 투자의 효율을 중시해야 합니다. 텃밭 수준으로 자가 소비만 하든지, 아니면 1,000평 이상 대규모로 시설과 장비를 갖춰서 확실하게 수익을 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애매하게 1,000주, 2,000주 심어서는 자재비 건지기도 힘든 구조가 됐습니다. 이제 고추도 멜론이나 수박처럼 전문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는 경영의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농가들이 인지해야 합니다.”
2026년, 고추 농사는 단순한 농사가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면적 감소라는 착시에 기대기보다, 내 농장의 생산성과 비용 구조를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