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화훼와 마이스가 만나 글로벌 시장을 열다

(재)고양국제박람회재단 이창현 신임 대표

2026-04-01     이지우

대한민국 화훼 산업의 심장부 고양특례시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1일 취임한 이창현 고양국제박람회재단 대표이사. 그는 민간과 공공, 학계를 넘나든 경험을 바탕으로 “고양의 꽃을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 스토리로 묶어 전 세계에 파는 글로벌 에이전시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4월 24일 개막하는 2026 고양국제꽃박람회를 앞두고 ‘글로벌 비즈니스 전문가’인 그가 그리는 고양 화훼 산업의 새 지도를 따라가 봤다.

 

이창현 대표이사는 취임 전부터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LG유플러스에서 마케팅 부장으로 시장 전략을 진두지휘했고, KOTRA 밀라노·자카르타 무역관에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며 글로벌 판로 개척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선임전문위원과 KOTRA 아카데미 인니경영마케팅연구소장, 한양대 국제경영 전략 강의까지 이어진 이력은 도시·국가 브랜드를 함께 보는 시각을 키웠다.
“고양국제꽃박람회는 이미 16년 연속 산업통상자원부 국제인증을 받은 저력이 있는 기관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행사 주관사를 넘어 대한민국 화훼 산업의 세계화를 이끄는 ‘글로벌 에이전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글로벌 에이전시’는 꽃 자체를 파는 기관이 아니라, K-플라워와 고양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기획하고 해외 시장, 마이스(MICE), 관광을 연계해 판로를 열어주는 플랫폼이다. 실제로 재단은 2026 고양국제꽃박람회를 시작으로 ‘콘텐츠 유니버스 코리아’, ‘고양 데스티네이션 위크’, ‘고양가을꽃축제’ 등 대형 국제 행사를 함께 총괄하며 화훼와 마이스의 시너지를 키워가고 있다.

‘꽃, 시간을 물들이다’
스토리·안전·데이터를 묶은 첫 무대

오는 4월 24일부터 5월 10일까지 일산호수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2026 고양국제꽃박람회’는 이 대표의 경영 철학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첫 무대다. 올해 박람회 주제는 ‘꽃, 시간을 물들이다’로, 꽃과 정원, 예술이 결합된 ‘시간여행형’ 전시를 표방한다. 박람회장 중심에는 13m 높이의 거대 꽃 조형물과 ‘시간 여행자의 정원’을 배치해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시간여행 승강장 콘셉트로 선보인다.
“꽃은 우리 삶의 시간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존재입니다.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에게 잊지 못할 브랜드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호수공원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형 공간으로 기획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바뀐 소비·관람 패턴을 분석해 이번 박람회를 설계했다. 정부 기조인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동선, 시설, 운영 전반에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동시에 크리에이터 협업 콘텐츠와 참여형 SNS 이벤트를 대폭 확대해 현장의 감동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확산되는 ‘플랫폼형 축제’를 지향한다. 관람객 수뿐 아니라 숙박, 식당, 주유소 등 지역 상권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데이터로 정밀 측정해 목표 지표를 기존 대비 15~20% 상향 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꽃 피는 곳에 웃음이 피고(FUN), 사람이 모이면 비즈니스(BUSINESS)가 열립니다. 이 선순환이 결국 지역 경제의 풍요라는 열매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구독 경제와 ‘고양만의 꽃’…
농가와 함께 크는 모델

무엇보다 그의 관심은 화훼 농가의 소득 증대와 유통 구조 혁신에 맞춰져 있다. 스스로를 “지금도 호박과 깻잎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라고 소개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도우며 허리를 굽혀 일한 경험이 있어 농업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모델은 ‘구독 경제’다. 자동차·가전·디지털 서비스에서 확산된 구독 모델을 꽃에 적용해 농가에 안정적인 판매 채널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박람회 관람객 중 일부를 추첨해 그분의 결혼기념일마다 매년 꽃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일상 속에서 꽃을 즐기고, 농가는 구독 물량을 기준으로 안정적인 생산 계획을 세우는 구조죠. 이런 구독형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도입해 농가 소득을 높이고 싶습니다.”
최근 스타필드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는 ‘데이터 기반 경영’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지난해까지 가을에 열던 행사를 올해 봄으로 옮기고, 소비자 니즈에 맞춰 품종과 구성을 재정비한 결과 매출이 3,500만 원 수준에서 5,000만 원 이상으로 뛰었다. 그는 “계절을 바꾸고, 고객이 원하는 꽃을 맞춰준 것만으로도 수익 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실험”이라고 평가한다.
이 대표는 장기적으로 ‘고양만의 색’과 ‘고양 대표 품종’을 만드는 오리지널리티 전략도 강조했다. 제주 백합 등에서 여전히 유럽산 종구가 주류인 현실을 언급하며, “고양은 선인장·장미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렸던 도시였지만 이제는 고양만의 색, 고양만의 품종으로 다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농업기술원, 한국화훼농협 등과의 협업을 강화해 신품종 개발과 판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생산·연구·소비를 가장 가깝게 잇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화훼+MICE, 탑다운 마케팅으로
세계 무대 노린다

고양국제박람회재단은 지난해 10월 고양컨벤션뷰로와 통합되면서 화훼와 마이스를 함께 다루는 독특한 조직으로 거듭났다. 전시·박람회와 국제회의·컨벤션을 한 지붕 아래에서 맡는 사례는 국내에서도 흔치 않다.
“제가 코트라에서 전시·박람회 업무를 담당했고, 박사 과정에서는 도시 브랜드와 마이스를 공부했습니다. 고양은 이 두 축이 동시에 존재하는 드문 도시입니다. 단순한 조직 통합이 아니라, 화훼와 마이스를 연결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승부를 걸겠습니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탑다운(top-down) 마케팅’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이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중국 상류층에서 그 제품이 ‘필수품’이 된 사례를 들며, 고위급 마이스 행사에서 얻은 이미지가 곧 K-플라워의 프리미엄 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콘텐츠 유니버스 코리아, 고양 데스티네이션 위크 같은 행사에는 해외 유력 인사와 글로벌 바이어들이 찾아옵니다. 이들의 눈앞에 고양의 꽃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면, 그 자체가 강력한 탑다운 마케팅이 됩니다. 이 무대를 통해 우리 꽃이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가격을 받는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그는 앞으로 고양국제꽃박람회의 B2B 프로그램을 강화해 인도네시아 등 해외 화훼 기업과의 교류, 글로벌 판로 개척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해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우리가 수입하듯이 이제는 수출하는 꽃”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보석 같은 조직, 보석 같은 산업
그리고 화훼농업의 자긍심

조직 운영 방식에서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여러 기업과 국가기관을 거치며 수십 개 조직을 컨설팅한 그는 고양국제박람회재단을 “보석 같은 기관”이라고 표현한다.
“꽃을 상대해서 그런지, 직원들이 정말 맑아요. 계산적이지 않고, 우직하게 뚜벅뚜벅 나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들을 ‘이슬처럼 맑은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앞에서 끌고 가는 리더가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재단 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직원 한 명 한 명을 ‘보석 같은 존재’로 보고, 창의성과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 인력은 기존 업무만으로도 포화 상태라 새로운 사업과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면 조직 강화와 인력 보강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적인 진단도 덧붙였다.
꽃과 농업에 대한 인식 변화도 거듭 강조했다. “삼성전자 매장에 전시된 휴대폰을 그냥 들고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꽃은 공짜로 봐도 되고, 꺾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어요. 꽃은 농민이 수도 없이 허리를 숙여 키워낸 ‘예술 작품’이자, 엄연한 가치를 지닌 상품입니다. 그만큼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는 AI와 로봇이 확산되는 시대에도 원예·화훼 산업은 인간의 감성을 치유하는 미래 희망 산업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수확·운송 로봇, 스마트팜 등 농업 분야의 기술 혁신을 접목해 노동력을 줄이고 농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
“AI 시대에도 인간의 감성을 치유하는 원예 산업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겁니다. 재단이 농가들의 든든한 마케팅 파트너이자 글로벌 시장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농부의 아들이자 글로벌 비즈니스 전문가로서, 고양을 화훼 마이스의 세계적 중심으로 키우는 데 평생 쌓아온 경험을 모두 쏟아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