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접(花接)의 계절, 배 과수원에 핀 새 희망

충남 아산시 박상균 대표

2026-05-06     이지우

 

4월의 아산 들녘은 온통 하얀 배꽃으로 물들며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린다. 풍년을 기대하게 하는 이 풍경 속에서 농민들의 손길도 한층 분주해진다.
월간원예는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화접(꽃가루받이) 작업이 한창인 아산시 음봉면의 박상균 대표 과수원을 찾았다. 40여 년간 묵묵히 아산 배의 명맥을 이어온 박 대표를 만나, 우리 농촌의 현재와 그 속에서 찾은 해법을 들어봤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서 40여 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는 박상균 대표의 과수원도 한창 바쁜 시기였다. 약 2.5ha(7500평) 규모의 과수원 곳곳에서는 화접(꽃가루받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지금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이때 손이 얼마나 가느냐에 따라 결실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서울에서 연차를 내고 내려와 일손을 돕는 지인들도 함께했다.
붓을 들고 꽃눈마다 세심하게 인공 수분을 진행하는 모습에서 농사의 고단함과 애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새벽부터 과수원을 찾아 꽃눈의 상태를 확인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은 농촌의 심각한 인력난 속에서 박 대표가 어떻게 농장을 지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새벽부터 와서 도와주는 분들 덕분에 큰 힘이 된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냉해는 비켜갔지만…
농가의 가장 큰 걱정은 화상병

올해 아산 지역 배 농가들은 우선 냉해 부담을 덜었다. 박 대표는 “예년에는 저지대 과수원이 냉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아직 피해 징후가 없다”며 “시작이 좋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현장에서 가장 큰 우려로 꼽히는 것은 과수화상병이다. 과수화상병은 배·사과 등에 발생하는 국가검역병해충으로, 발병 시 과원 폐원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박 대표는 “주변에서도 폐원한 곳이 있었다”며 “30~50년 키운 나무를 한 번에 없애야 하니 농가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어 “예방과 방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덧붙였다.

“생산은 했는데 가격이 문제”
유통 구조의 고민

기후만 넘는다고 농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농민들이 체감하는 또 다른 위기는 가격 불안정이다. 박 대표는 “농산물은 생산량이 조금만 변해도 가격이 30~40%씩 널뛴다”며 “농민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저장 배 시장도 녹록지 않았다. 저장 중 흑변 현상이나 품질 저하가 나타난 농가가 많았고, 중소과 비중 증가로 판매 부담을 느낀 농가도 적지 않았다. 박 대표는 농림부의 ‘지정 출하제’가 시장 수급과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물량을 출하하게 함으로써, 농가의 가격 결정권을 빼앗고 비수기 시장 교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사꾼에게는 시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수급 조절 없는 강제 출하는 농가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죠.”
이처럼 출하 전략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박 대표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품종 다변화’를 꼽았다. 아산 배의 주력 품종은 여전히 ‘신고’다. 하지만 박 대표는 오래전부터 품종 편중의 한계를 고민해 왔다. 그는 배연구회 활동 당시부터 새로운 품종 도입과 갱신 필요성을 강조했고, 현재 과원 일부에는 ‘그린시스’와 ‘신화’ 품종도 재배하고 있다.
박 대표는 “좋은 품종이라도 소비자가 알아주지 않으면 시장에서 제값을 받기 어렵다”며 “품질 경쟁력과 함께 홍보, 판로 개척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린시스는 소비자 반응이 좋은 편이지만 시장 인지도가 낮아 온라인 직거래나 일부 판매처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품종이 정착하려면 생산 현장뿐 아니라 시장 측면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농가와 함께하는 아산원예농협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테두리

현장에는 아산원예농협 송재찬 영농지도사도 함께했다. 박 대표는 “아산원예농협은 영농자재 지원, 지도사업, 각종 보조사업 등에서 농가 체감도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송재찬 지도사는 우리 조합이 조합원들의 실질 소득을 높이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선제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대한민국 최초로 조합원들에게 연 80만 원의 영농수당을 직접 지급하여 실질적인 경영 보조를 수행하고 있으며, 농자재 원가를 30% 가까이 할인해주는 등 각종 보조 사업을 통해 조합원 1인당 연간 1천여만 원이 넘는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했다.
또한 1조 원이 넘는 예수금을 바탕으로 하나로마트 1·2호점, 학교 급식센터 운영, 수출 라인 확보 등 수익성 사업을 통해 조합 수익을 극대화하여 다시 조합원에게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박 대표는 “인력 지원부터 지도 사업비, 영농 자재 지원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니 다른 농협에서도 우리 조합을 무척 부러워한다”며 농협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송 지도사는 앞으로도 농협은 농가의 고충을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박 대표는 농업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가격 안정’을 꼽았다. “농민은 좋은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크게 흔들리면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박상균 대표의 44년 농사 철학은 단순하다. 농민이 땀 흘린 만큼 정당한 결실을 얻고, 소비자는 건강한 먹거리를 즐기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배꽃이 만개한 아산의 봄 과수원, 풍년을 향한 기대 속에 박 대표와 아산원예농협은 오늘도 농촌의 내일을 단단하게 일구고 있다. 농민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정책적 지원과 농협의 밀착형 동행이 계속되는 한 아산 배의 미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