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는 반찬이 아니라 ‘요리의 주인공’

흑백요리사가 증명한 채소 품종의 힘

2026-06-01     아시아종묘 홍보출판팀 박재호 대리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두 달 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흑백요리사는 시즌 1에 못지않은 화려한 연출을 비롯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출연진들의 요리로 시청자들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재도전자의 우승이라는 낭만 가득한 서사로 피날레를 장식한 <흑백요리사>는 프로그램 내·외부로 많은 울림을 전하기도 했는데, 요리사들의 진심어린 퍼포먼스와 열정만큼이나 프로그램을 묵묵하게 지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요리의 본질인 풍부한 식재료들이 아닐까 한다.

꼬마당근튀김

당근 하나로, 요리가 가능할까?

흑백요리사를 이야기하면서 ‘무한요리지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결승으로 가기 위한 요리사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최종 관문으로, 지정된 하나의 주 식재료를 이용해 최후의 생존자만이 남을 때까지 말 그대로 무한의 요리를 창조해 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미션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두부로 만든 지옥이 시즌 1에서 펼쳐졌다면, 이번 시즌2에서는 바로 당근으로 만들어진 지옥에 요리사들이 초대됐다.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당근은 쉽지만, 당근 요리는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당근은 베타카로틴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풋내와 흙내를 비롯해, 가열 시 튀어나오는 강한 단향(甘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삭하거나 물렁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적인 식감도 당근 요리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흑백의 요리사들은 보란 듯 멋지게 당근이 메인이 되는 요리들을 완성해냈다.

‘당근으로 당근을 맨든’ 후덕죽 셰프의 <꼬마당근튀김>은 당근이라는 식재료로 가장 많은 호응을 이끌어낸 메뉴였다. 당근즙으로 반죽을 만들어 안에 팥소를 채워 넣고, 고수로 당근 잎을 만들어 꽂아 넣은 귀여운 비주얼과 디테일은 마치 당근을 싫어하는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가 만든 것 같다는 반응에서부터, 최근핫한 인기를 끌고 있는 감자빵, 고구마빵 등을 연상케 했다.

<당근 짜장면> 역시 후덕죽 셰프가 선보인 창의적인 당근요리였다. 당근을 국수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 마치 면처럼 표현했고, 여기에 소스를 곁들여 짜장 스타일로 풀어낸 메뉴로 눈길을 끌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다이어트 식품처럼 보인다’며 화제가 됐고, 그만의 독창적인 변주로 당근을 주목시킨 사례였다.

당근케이크

흑수저 이하성 셰프(요리괴물)가 만들어낸 <당근 케이크>는 후덕죽 셰프가 만들어낸 요리들에 지지 않고 높은 평가를 얻어낸 요리였다. 브리오슈 식빵에 당근 시럽을 더하고, 리코타치즈에 라임제스트 크림을 제작한 뒤 당근+오렌지 토핑을 올린 신선한 조합은 그를 결국 결승전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메뉴가 됐다.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

당근은 요리사의 실력을 가장 가차 없이 드러내는 식재료다. 뿌리채소 특유의 흙 단맛을 가지고 있지만, 단백질과 지방이 거의 없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당근도 사실 알고 보면 그 품종이 아주 다양하다.

슈퍼소촌

‘슈퍼소촌’은 당도가 높고, 카로틴이 풍부하며 씨 뿌림 후 100일 전후에 수확이 가능한 품종이다. 근형은 원추형이며, 근피가 매끈한 슈퍼소촌은 추대가 늦기 때문에 봄, 여름에 씨 뿌림이 가능하며 근비대가 빠르다. 근중은 약 150g에 달한다.

손가락

미니당근이라 불리는 ‘아시아베이비, 손가락당근’도 주목해볼 만하다. 초장이 작아 밀식재배가 용이한 미니당근은 뿌리색이 등황색으로 진하고 선명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숙기가 상당히 빠르고 뿌리 길이는 비교적 짧기 때문에 수확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시아퍼플알파

짙은 보랏빛을 자랑하는 보라색 당근 ‘아시아퍼플알파’도 있다.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은 아시아퍼플알파는 약 25cm의 길쭉한 길이를 자랑하며 숙기는 약 135~140일 정도다. 염색용 또는 주스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당근이 ‘면’이 되려면 부러지지 않고 일정한 탄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당근은 심이 단단하거나 섬유가 불균일해, 얇게 썰면 쉽게 끊어진다. 사실 품종의 차이는 바로 이런데서 온다. 심이 적고, 크기가 고르게 배열된 당근만이 선택되는 것처럼 썰어도 무너지지 않고, 볶아도 수분이 유지되는 품종이 요리 재료가 될 수 있다.

익히면 부드러워지지만 쉽게 퍽퍽해지고, 생으로는 아삭하지만 쓴맛이 튀어나오는 당근. 그래서 셰프들이 보여준 고군분투는, 사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채소들의 얼굴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트에 진열된 채소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요리에 쓰기 시작하는 순간 차이가 드러난다. 어떤 것은 잘 썰리지만 어떤 것은 쉽게 부서지고, 어떤 것은 단맛이 살아있지만 어떤 것은 향이 거칠듯이.

가장 가혹한 품종 테스트

이번 시즌에서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출연자는 사찰음식의 명장으로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재스님이다. 선재스님의 요리는 화려함보다는 ‘절제와 본질’에 집중한 사찰음식스타일의 채식·비건 요리로, 육류와 자극적인 향신채 등을 쓰지 않고 조화로운 맛을 끌어낸 점이 특징이다. 조미료마저 최소화한 채, 채소의 맛만으로 한 접시를 완성하는 요리는 마치 채소의 한계를 시험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선재스님

선재스님의 잣과 채소만으로 맛을 낸 잣국수, 양념을 절제한 사찰식 비빔밥과 당근지옥에서 보여준 당근채전 등은 소스가 아니라 채소의 본래 맛으로 평가받는 음식이다. 쓴맛이 적고, 향이 깨끗하며, 씹을수록 단맛이 살아나는 채소만이 이런 요리에서 빛을 발하기 마련. 어쩌면 사찰음식이야말로 가장 가혹한 품종 테스트는 아닐까?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주목할 점은 채소를 큰 비중으로 활용한 요리가 단순한 반찬이나 곁들임이 아니라 산채, 나물 반상 샐러드허브, 봄 채소를 이용한 죽, 곡물을 베이스로 만든 면 요리 등의 형태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리들은 채소를 단순 곁들임이 아니라 요리의 핵심 요소로 활용했고, 채소 본연의 풍미와 밸런스를 살리는 방식이 주효했다.

식물성 재료의 질감과 색감, 향을 중심으로 설계한 메뉴들은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제철채소가 주요 플레이팅 포인트였다. 단순한 조리가 아니라 채소 본연의 풍미와 밸런스를 살리는 방식으로 요리 대결의 무대를 넓혔다는 점도 주목할만 했다. 흑백요리사에서 펼쳐진 당근 지옥과 다양한 채소 요리의 선전은 단순한 예능 요리 경연의 승패를 넘어 그 이면에 숨은 채소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라는 의미로도 비춰졌다.

1년 만에 우리의 TV와 식탁으로 돌아온 흑백요리사는 채소가 더이상 식탁 위의 조연이 아니라, 요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무대 뒤에는 새로운 식문화를 위해 기나긴 시간 동안 품종을 만들고 개발해온 종자기업의 시간도 함께 쌓여있다.

아시아종묘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목표 또한 단순한 수확량이 아니다. ‘생식에 어울리는 오이’, ‘단맛이 살아있는 당근’, ‘쓴맛이 적은 잎채소’, 궁극적으로는 ‘양념 없이도 맛있는 채소’라는 점. 이 모든 것은 요리를 하기 훨씬 이전인 종자 단계에서 방향이 정해지기도 한다.

흑백요리사는 날고 긴다는 셰프들의 실력과 요리에 대한 그들의 진심을 보여줬지만 다른 한편으로 채소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우리에게 슬며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요리를 완성하는 것이 셰프의 몫이라면, 요리의 가능성은 씨앗에서부터 만들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