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농업 표준화,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과제

[500호 특집기획] 스마트농업, 오늘을 묻고 미래를 그리다③ 한국농업기술진흥원 김용호 스마트농업본부장

2026-06-15     이지우

스마트농업의 기자재 표준화는 현장의 오래된 숙제이지만, 이를 해결할 ‘진짜 열쇠’는 따로 있다. 바로 장비들이 내부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쓰는 통신 신호를 통일하는 일이다. 기계들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면서 그동안 농가들이 겪어온 호환성 문제와 AS 단절 고충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맞이하게 됐다. 국가표준 확산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 김용호 스마트농업본부장을 만나 국내 스마트농업 표준화의 현실과 과제를 들어봤다.

 

Q 그동안 기자재 표준화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김용호 스마트농업본부장(이하 김 본부장): 스마트팜 표준화가 겉돌았던 원인은 제조사의 영세성과 하드웨어 중심의 초기 접근에 기인한다. 국내 스마트팜 업체 절대다수는 자본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다 보니 국가표준(KS)에 맞춰 설계와 생산 라인을 변경하는 데 현실적인 부담이 컸다. 현장에서도 “표준화 필요성은 다 알지만 업체마다 사정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초기 정책이 온실 골조나 센서 잭 모양 등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결합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데이터 배열이나 전기적 신호 같은 통신 프로토콜 표준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 결국 제조사들은 독자 규격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하게 됐고, 업체 폐업 시 농가가 사후관리를 받지 못해 설비를 철거하는 부작용도 반복됐다.

Q 통신 신호 파편화로 인한 데이터 고립이 산업 경쟁력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진단하나.
 

김 본부장: 이종 장비 간 통신 규격이 일치하지 않다 보니 수집된 데이터가 제조사별로 분산되고 고립되는 문제가 이어졌다. AI 기반 정밀농업으로 나아가려면 센서와 구동기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축적돼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장비 간 호환성 부족으로 적용에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장비 간 통신 표준과 생육·환경 데이터 표준 체계를 함께 구축하는 작업을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관련 논의도 국제표준화기구(ISO)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정부와 공공기관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강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기업들의 참여가 함께 이뤄져야 표준도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본다.

Q 올해 지원 대상을 40개 기업, 64종 장비로 확대한 것이 시장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나.

김 본부장: 그렇다. 올해 사업 확대는 민간 스마트팜 시장의 표준 전환 속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총예산 17억 1,000만 원 규모를 투입해 제품 개선 비용을 기업당 최대 5,000만 원까지 매칭 지원하고 있다. 핵심 기자재들이 국가표준 인증을 획득하고 상용화되면 농민들도 자연스럽게 호환성과 AS가 보장되는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표준은 현장에서 실제 사용돼야 의미가 있다. 해외의 경우 존디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과 표준을 함께 이끌어가는 구조인데, 국내 역시 주요 기업들과 산업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표준이 빠르게 자리 잡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Q 올해 도입된 ‘단계별 바우처 지원 체계’의 실질적인 차별점은 무엇인가.
 

김 본부장: 기존의 일괄 지급 방식과 달리 기업의 기술 성숙도(TRL)와 상황에 맞춰 지원 체계를 세분화했다. 1단계 시제품 제작, 2단계 제품 개선, 3단계 표준 검정 및 현장 실증 등으로 구분해 기업들이 필요한 분야를 선택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설계 능력이 있는 기업은 시제품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검정·실증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다. 영세 기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도 보다 실효성 있게 표준 제품 보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Q 표준 적용 범위를 노지 분야까지 확대했는데,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무엇인가.
 

김 본부장: 노지는 시설원예보다 환경 변수가 훨씬 크다. 폭설·폭염·강풍 같은 외부 환경에서도 장비가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고, 데이터 송수신 역시 끊김 없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서 단순한 기계적 내구성뿐 아니라 통신 안정성과 데이터 검정 기준을 함께 강화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 부담으로 느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공통 기준이 있어야 중복 개발 비용을 줄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Q 최근 스마트농업 분야에서 ‘집적화’와 ‘규모화’ 필요성도 많이 거론된다. 어떻게 보고 있나.
 

김 본부장: 결국 스마트농업도 지속 가능하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적화와 규모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시설이 지나치게 분산돼 있으면 에너지 효율이나 물류·유통·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스마트팜은 단순히 시설 안에서 농산물만 생산하는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농업 자동화 기계와 데이터 산업, 소프트웨어, 에너지 시스템 같은 전후방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로 봐야 한다. 특히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스마트팜은 장기적으로 국내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까지 함께 바라봐야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고 본다.

Q 국가표준 확산 사업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현장 농민과 기업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 본부장: 현장을 다니다 보면 아직도 “스마트농업이 실제로 농사에 도움이 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한 토양 센서를 설치한 농가로부터 “예전에는 새벽마다 불안해서 밭에 나갔는데, 이제는 눈뜨자마자 데이터로 확인하니 안 나가도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농민이 현장에서 실제 손발처럼 체감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진흥원은 단순히 장비를 보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민들이 데이터를 스스로 활용하고 장비를 운영할 수 있는 역량까지 함께 키워주는 방향으로 공공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