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면 탈나요, 형편에 맞춰 실속 있게 지어야죠"

송탄농협시설채소출하회 정병헌 회장

2026-08-20     이지우

경기 평택시 송탄의 하우스 단지.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교차 재배하는 열일곱 동, 3,600평 규모의 시설 앞에서 정병헌 회장을 만났다. 그는 송탄농협시설채소출하회 회장으로 10년, 지역 농협 총회장으로도 오랜 기간 지역 농업인들을 대표해 온 인물이다. 27년째 오이와 방울토마토 농사를 지어 온 그는 걸쭉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시설채소 농가가 처한 구조적 현실과 유통·정책 환경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정 회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 삼성전관(현 삼성SDI)을 그만두고 평택으로 내려와 농사를 시작했다. “5년만 하고 다시 올라가자”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게 쉽게 되나요”라며 웃어넘겼다.

군 제대 후 스물여섯 살에 일본 정부 초청으로 1년간 일본에서 농업 연수를 받은 경험은 이후 영농의 기본기가 됐다. 이 마을에서 법인체와 작목반 활동을 8년, 송탄 지역회장과 총회장을 10년 지냈고, 올해부터는 후배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제 그 나이가 됐지”라는 그의 말처럼, 함께 농사짓는 동료들의 평균 연령도 이미 65세를 넘어섰다.

지난해와 재작년 평택·안성·용인 일대를 덮친 폭설로 그의 하우스 12동(2,400평)도 무너졌다. 밤사이 연락을 받고 새벽같이 달려온 기자와 다음 날 바로 현장을 찾았던 경기도지사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언론 덕에 재난지역 선포는 받았다”고 했다.

다만 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갈렸던 피해 보상과 이후 더 까다로워진 보험 가입 기준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으로 남았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사정은 최저임금 수준

“제 하우스요? 수십억 들어간 자동화 스마트팜이 아니라 그냥 실속형 하우스예요. 한번 지으면 25~30년을 써야 하니까 내 상황에 맞춰 무리할 필요가 없는 거죠.”

시설에 대한 그의 지론은 담담하지만, 뒤따르는 경영 수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육묘비로 연간 약 2,500만 원, 외국인 근로자 세 명의 인건비로 8개월간 약 5,600만 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농약·비료·전기료(연 400만 원)·임대료 등을 더하면 연 매출 1억2,000만 원을 올려도 그와 아내가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해가 많다고 한다.

“방송에는 연 매출 몇 억 올리는 청년 농가 이야기만 나오지, 거기서 난방비·시설비·인건비·육묘비 다 빼고 나면 얼마 남는지는 아무도 안 물어봐요”라며 그는 껄껄 웃었다.

최근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석유화학 기반의 농자재 가격까지 치솟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없다는 점도 짚었다.

여름철 고온다습으로 7월 말부터 10월 초까지는 사실상 생산이 어려운 계절적 한계에 더해 노동력 확보의 어려움, 후계 인력 부재까지 겹치면서 시설채소 농가의 경영 여건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스마트팜 확대, 그러나 품목은 한정적

“스마트팜에 수십억을 투자해도 대한민국 먹거리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 시설에서 지을 수 있는 품목이라고 해봐야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정도예요. 그거 대한민국 사람이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정 회장은 정부의 청년농 스마트팜 지원 정책이 확대될수록 오히려 특정 품목의 공급과잉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지자체마다 시설채소 지원에 나서면서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품목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게 됐고, 예전에는 호남에서 시작해 충청·경기를 거쳐 강원까지 단계적으로 출하되던 지역별 시차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강원도나 전라도나 시설을 다 똑같이 갖춰 놨으니 한꺼번에 나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 식생활 패턴의 변화도 한몫한다. 김장문화가 옅어지고 오이지·재래 채소 소비가 줄어드는 반면 방울토마토 재배는 계속 늘면서, 실제로 방울토마토 가격은 지난해보다 10~15%가량 낮게 형성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네덜란드식 장기 재배 스마트팜의 물량 확대가 가격 하락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생산성은 계속 좋아지는데 좋아질수록 값은 떨어진다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냐”며 그는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비자 물가와 채소값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채소는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보니 조금만 값이 뛰어도 물가 상승의 주범처럼 다뤄지지만, 정작 농업이 국가 전체 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하루에 흑자만 몇 조씩 낸다는데, 농업 생산액을 다 합쳐도 몇 조가 안 됩니다. 그런데 물가 얘기만 나오면 제일 먼저 채소값부터 잡죠”라며, 당장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이기 때문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 자체가 농가에는 또 다른 부담이 된다고 짚었다.

농지 임대차, 직불금… 풀리지 않는 매듭

정 회장은 농지 유동화와 임대차 문제도 현장의 오랜 숙제로 꼽았다.

도시 개발 기대감으로 외지 자본이 매입한 농지가 늘면서 실제 경작자인 임차농은 임대차 관계의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직불금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경작자에게 지급하도록 설계된 직불금이 실제로는 임차인과 지주 사이에서 임대료 조정 등으로 상쇄되는 경우가 많아, “이 문제는 어느 한쪽만 잘못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양면성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농지 규모화 정책에 대해서도 현실과의 괴리를 지적했다. 조각조각 나뉜 필지와 제각각인 지반 높낮이, 소유주마다 다른 사정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어도 현장에 들어가면 왜 안 되는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책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의지를 탓하기보다, 현장 경험 없이 설계된 정책이 반복적으로 부작용을 낳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다.

교차재배로 일구는 밭, 그리고 대변할 창구의 부재

정 회장은 토양 지력을 지키고 연작 피해를 막기 위해 봄에는 수확과 자금 순환이 빠른 오이(굿모닝)를, 가을에는 고온 저항성과 저장성이 좋은 유럽계 방울토마토를 교차 재배하며 한 뼘의 하우스도 놀리지 않는다.

지하수를 활용한 수막 시설과 관수 장치까지 직접 용접해 가며 철저히 실속 위주로 농장을 운영해 왔지만, 현장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대변할 통로가 부족하다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벼농사 중심의 기존 농민단체는 시설채소 농가의 사정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고, 지역 언론 역시 구조적 한계로 목소리를 담아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도든 강원도든 충청·호남이든 전국 시설채소 농가가 똑같이 겪고 있는 일”이라며, 정확한 사안별 진단과 체계적인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찾은 날에도 봄 오이 수확을 마치고 여름 방울토마토를 한창 수확하고 있었다.

“큰 눈덩이가 한 번 굴러야 더 멀리 간다”며 웃는 그는 27년 동안 규모 확대와 경제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며 농장을 일궈왔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보여주기식 스마트팜 확대보다 생산비 절감 지원과 전국 단위의 수급 조절 체계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현장 농업인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