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고추명인의 밭,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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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고추명인의 밭,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 이지우
  • 승인 202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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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명인의 밭 ① — 남안우의 고추 작기 따라잡기
충북 음성군 고추명인 남안우 대표.

충북 음성군. ‘청결고추’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수도권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아온 고추 명산지다. 농림축산식품부 파워브랜드 대전 5회 연속 수상, 세계 명품브랜드 대상 3회 연속 수상이 이 땅의 고추가 쌓아온 위상을 말해준다. 본지는 올해 이 음성 고추의 한 작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 취재한다. 귀농 14년 차, 직거래 고객 800명과 함께 해마다 완판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고추명인이자 음성 청결고추 작목반 부회장, 남안우 대표의 이야기다.

 

“예전에는 전라도·경상도 분들이 고추를 따러 음성으로 올라왔어요. 그만큼 여기가 고추 농사의 원천 기술을 가진 곳이었죠.”
남안우 대표에 따르면 현재 음성군의 특용작물 생산 규모는 복숭아, 수박, 고추 순이다. 그러나 20~30년 전만 해도 고추가 가장 중요한 소득 작목이었다. 중국산 고추 수입이 늘면서 가격 경쟁이 심해졌고, 재배 인구도 점차 줄었다. 그럼에도 음성 고추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밤낮의 큰 일교차와 고추 생육에 적합한 중부지방 특유의 기후가 맛과 색을 만든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안우 대표는 고추를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작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육묘부터 정식, 방제, 수확, 건조, 판매까지 거의 1년에 가까운 과정이 이어진다. 재배 난도가 높고 노동 강도도 크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변화와 병해충 발생 양상이 해마다 달라지면서 경험 많은 농가들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지금 고추 농사는 방제를 얼마나 자주,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립니다.”
하지만 방제 작업은 체력 소모가 크다. 고령 농가에게는 한 번의 소독조차 큰 부담이 된다. 여기에 중국산 고추의 품질까지 꾸준히 향상되면서 국내 농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젊은 세대의 신규 진입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우스 내부 전경. 4월 8일 정식을 마친 고추 모종이 줄지어 자라고 있다.
정식 후 3주 차 하우스 고추 모종. 지지대와 유인 줄 설치가 마무리된 상태다.

남안우 대표는 2012년 경기 용인 수지에서 음성으로 귀농했다. 본래 귀농의 목표는 복숭아였다. 당시 복숭아나무 350주를 심었지만, 수확까지 4~5년이 필요했다. 그 공백 기간 동안 선택한 작목이 고추였다. 주변에 고추 재배 농가가 많았고, 음성이라는 지역의 강점도 분명했다. 그렇게 시작한 고추가 지금은 그의 대표 작목이 됐다.
“작목반에서 제가 막내예요. 50대 후반인데도 가장 젊은 편이죠.”
농촌의 고령화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지만, 그 막내는 어느새 음성 청결고추 작목반 부회장이 되었고 ‘고추명인’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된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남안우 대표는 “이번에는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서리를 견디는 묘, 고객의 입맛을 맞추는 품종
고추 농사의 시작은 씨앗을 뿌리는 순간보다 어떤 묘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남안우 대표는 육묘를 외부 육묘장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음성은 4월 말까지도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정식을 마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늦서리가 찾아왔다.
“육묘장에서 받은 모종은 이런 온도 변화를 견디기 쉽지 않아요. 저는 일부러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면서 키웁니다.”
그가 말하는 육묘의 핵심은 ‘스트레스 적응’이다. 처음부터 안정된 환경에만 두지 않고 온도 변화에 점진적으로 노출해 내성을 길러준다. 그래야 밭에 나간 뒤 갑작스러운 냉해를 만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좋은 묘란 곱게 자란 묘가 아니라 봄의 변덕을 견딜 준비가 된 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올해 처음 도입한 자동 호스릴 방제기를 소개하는 남안우 대표.
줄 조절이 자동화되면서 방제 작업 부담이 줄었다.
하우스 내 유인 줄 작업 중인 남안우 대표. 정식 초기 관리가 이후 생육을 결정한다.

파종 시기는 작형에 따라 다르다. 하우스 재배용은 1월 10~12일경 가장 먼저 씨를 뿌린다. 노지 재배용은 2월 5일부터 15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나눠 파종한다. 한꺼번에 모든 묘를 키우기 어렵고, 정식 시기를 분산해 작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파종부터 정식까지 육묘 기간은 약 80~100일에 이른다.
올해 남안우 대표가 선택한 품종은 모두 9가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4개 품종으로 단순하게 재배했지만, 직거래 고객이 늘면서 소비자 취향에 맞춘 세분화가 필요해졌다. 현재 그는 700~800명의 단골 고객을 두고 있으며, 해마다 주문량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예전에는 안 매운 것, 중간 맛, 매운 것 정도로 나누면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중간 맛에서도 조금 덜 매운 걸 찾는 분이 있고, 색도 선홍색을 좋아하는 분과 진한 붉은색을 선호하는 분이 따로 있어요.”
최근 소비자들의 선호는 강한 매운맛보다 중간 맛에서 약간 덜 매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간 맛 계열 품종의 비중이 가장 높다. 대표 품종으로는 티탄대박, 리치칼탄, 매운맛 계열의 명장칼탄 등을 꼽았다. 모두 탄저병과 역병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복합 내병계 품종이다.
“맛있고 색이 좋은 품종일수록 예민해요. 그러니까 다 좋은 품종만 살아남지는 못하는 거죠.”


노지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올해 하우스 정식일은 4월 8일이었다. 평년보다 이틀 정도 빨랐다. 노지 정식은 4월 26일에 시작됐다. 취재팀이 농장을 찾은 5월 중순에는 정식 후 약 3주가 지난 시점으로, 지지대 설치와 1차 줄 매기 작업이 끝나고 곁순 제거가 한창이었다.
정식 직후의 관리도 세심하다. 하우스는 초기 생육 단계에서 부직포를 덮어 보호하고, 아침 최저기온이 10℃ 이상 올라오면 제거한다. 노지는 해조 추출물과 영양제를 충분히 공급해 냉해 저항성을 높인다. 그는 “정식 초반에 영양분을 충분히 줘야 이후 생육이 안정된다”고 설명했다.

남안우 대표는 비닐 멀칭 필름 한 롤을 기준으로 한 현장 단위인 ‘마끼’로 노지 약 12마끼와 하우스 600평 규모의 고추를 재배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재식 간격이다. 일반적인 권장 간격은 40㎝ 정도지만 그는 30~35㎝ 간격을 유지한다.
“40㎝로 심으면 품질은 좋아지는데 생산량이 받쳐주지 않아요. 음성 기후에서는 이 정도 간격이 품질과 수량의 균형점입니다.”
품종에 따라 차이도 둔다. 생육이 왕성한 품종은 30~32㎝ 간격으로 심고, 키가 크게 자라는 품종은 1m 80㎝ 길이의 말뚝을 사용해 지지력을 보강한다.

생산성만 놓고 보면 하우스가 확실히 유리하다. 비를 맞지 않아 탄저병 발생이 크게 줄고, 생산량도 노지보다 2~3배 높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노지 재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품종을 하우스와 노지에서 재배해 드리면, 고객들은 거의 모두 노지 고추가 더 맛있다고 말씀하세요.”
관행 재배로 자연 강수와 일교차를 그대로 받아 자란 노지 고추는 모양이 다소 일정하지 않지만, 매운맛과 단맛이 조화된 고추 본연의 풍미가 살아 있다. 남안우 대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자란 고추가 맛과 영양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스마트농업의 필요성도 인정한다.
“결국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노지는 너무 힘드니까요.”
그러나 지금 당장은 700~800명의 직거래 고객이 원하는 맛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남안우 대표에게 노지는 단순한 재배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기억하는 음성 고추의 맛을 지키는 밭이다.

고추 하우스 앞에 선 남안우 대표 부부. 귀농 반대에서 시작해 지금은 농장의 든든한 동반자가 된 아내와 함께다.
정식을 마친 노지 고추밭 전경. 음성의 산과 들 사이에서 올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5월의 밭, 7월의 수확을 기다리며
5월의 농장은 분주하다. 고추 곁순 제거와 줄 매기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복숭아 적과 작업까지 겹쳐 하루가 빠듯하다. 올해 처음 도입한 배터리식 줄 조절기는 방제 작업에서 아내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는 작은 변화가 됐다.
“고추 농사에서 버티는 힘은 혼자서 나오지 않아요. 와이프가 함께 있으니까 지금까지 올 수 있었죠.”
남안우 대표에게 아내 유진옥씨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농장의 동반자다. 처음 귀농을 결심했을 때 아내는 반대했다.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남편의 말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먼저 내려온 뒤 5~6개월 만에 음성행을 결심했고, 이후 농장의 크고 작은 일을 함께 나눠왔다. 방제 작업에서 줄을 잡아주는 일부터 직거래 고객 관리와 판매까지, 아내가 맡은 영역은 넓다. 남안우 대표는 “판매는 와이프가 더 잘해요”라며 웃었다.

귀농 초기 5~6년은 적자가 이어졌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귀농 5~6년 차, 본격적으로 수익이 나기 시작한 것은 9~10년 차 이후였다.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역할이 컸다. 지금의 800명 직거래 고객, 고추명인 타이틀, 블라인드 품평 대상 수상. 남안우 대표는 이 모든 것에 아내의 몫이 있다고 말한다.

노지 재식 간격 30~35㎝는 그가 음성 기후에서 찾아낸 품질과 수량의 균형점이다.

남안우 대표의 밭에서는 지금도 씨앗에서 시작된 한 해 농사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 봄의 늦서리를 견딘 묘들은 음성의 바람과 햇빛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음 취재는 7월 말, 하우스 고추의 첫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다. 붉게 익어가는 고추와 함께 남안우 대표 부부의 여름 이야기를 다음 호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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