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복숭아 명인의 철학이 싹트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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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복숭아 명인의 철학이 싹트는 시간
  • 이지우
  • 승인 2026.07.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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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명인의 밭 ② — 대한민국 복숭아 명인, 김종오 대표 인터뷰
 대한민국 복숭아 명인 1호 김종오 대표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위치한 김종오 명인의 1만 7,000평 규모의 광활한 복숭아 과수원 전경.

한 작기(作期)의 시작부터 수확, 그리고 다음 해를 위한 겨울 준비까지 명인의 밭을 동행하며 농업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월간원예 기획시리즈 [명인의 밭]. 두 번째 순서로 충북 음성군에서 30년 넘게 복숭아를 길러온 대한민국 복숭아 명인 김종오 대표를 만났다. 기후변화와 인력난이라는 두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방제와 독자적인 착과 이론으로 매년 안정적인 작황을 일궈내는 김 명인. 복숭아 총 3편 중 첫 번째 순서로, 초여름 가뭄 속에서 한창인 '봉지 씌우기' 현장과 그 안에 담긴 명인의 기술경영 노하우를 짚어본다.

 

초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봉지 씌우기’ 작업이 한창이다. 김종오 대표의 1만 7,000평 과수원도 나무마다 매달린 흰 봉지로 가득하다. 올해는 봄철 기후가 양호했던 덕에 빈 가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열매가 고르게 맺혔다.

“역대 최고로 봉지를 많이 씌우고 있어요. 작년에 30만 장을 씌웠는데, 오늘 벌써 32만 장을 넘겼고 전체 작업을 마무리하면 40만 장은 족히 넘어갈 것 같습니다.”

5월 중순 이후 비가 거의 오지 않아 가뭄이 이어지고 있지만, 김 대표의 과수원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비결은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만 가동하는, 철저하게 계산된 물주기다.

“가물었다고 무작정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 썩어버립니다. 특히 수확기까지 물을 대면 과일이 싱거워져서 당도가 안 나와요. 봉지 씌우기가 끝나는 지금 시점까지만 정밀하게 물을 주고, 이후에는 나무가 늘어질 정도가 아니라면 관수를 끊어야 진짜 달고 맛있는 복숭아가 나옵니다.”

지난해 남부 지역 복숭아 재배 침체가 상대적으로 중부지역에 이점을 가져왔고,
올해는 6월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복숭아 재배가 평탄해 풍년을 이룰 것으로 예
상하는 김종모 명인.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2015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과수 분야)'
로 선정되며 전국 최초의 복숭아 명인이 되었다.

과일이 많아야 나무가 산다
흔히 고품질 대과를 얻으려면 열매를 많이 솎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김 명인의 방식은 반대에 가깝다. 그는 나무 한 그루에 일반적인 기준보다 많은 양의 봉지를 달아 수세를 안정시킨다. 한 그루당 천 개 이상을 착과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수관이 잘 발달한 나무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을 씌운 적도 있다.

“과일을 너무 적게 남기면 나무 영양분이 위로만 솟구쳐서 쓸데없는 '도장지(웃자란 가지)'만 무성해집니다. 영양분이 가지로만 가고 과일로 가질 않아요. 오히려 과일을 넉넉하게 달아 영양분이 과실로 고르게 분산되도록 유도해야 나무가 불필요하게 커지지 않고 균형을 잡습니다.”

명인의 과수원이 이처럼 독특한 착과론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에는 서른 가지가 넘는 품종을 적절히 배치해 시월까지 쉬지 않고 이어가는 촘촘한 릴레이 출하 시스템이 있다.

유월 말 그린황도 품종을 시작으로 그레이트, K1, 단황도, 옐로드림, 이노센스 등이 초여름 시장을 연다. 이어서 복숭아의 대명사인 마도카, 천중도, 황도, 유명, 천화제일도가 배턴을 이어받고, 시월 중순 극만생종인 양홍장까지 끊임없이 수확이 이어지는 구조다.

서른 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품종의 순차적 출하는 대규모 과수원의 노동력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시장에 복숭아를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는 명인만의 핵심 전략이다.

최근 소비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대해서도 명인은 명확한 재배 방향성을 제시했다. 최근 복숭아 시장은 아삭아삭한 식감의 이른바 '딱딱이 복숭아' 종류가 확고한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한때 신비나 천도복숭아 계열이 인기를 끌며 뜨는 듯했으나, 작업 공정이 워낙 까다롭고 힘들어 재배 농가들이 서서히 기피하면서 결국 딱딱이 품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명인은 시장의 트렌드를 기민하게 읽고 품종의 다각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대규모 과수원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열쇠라고 덧붙였다.

6월부터 10월까지 연중 시장에 출하되는 명인의 복숭아.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의 균형 유지를 위해 타 농가보다 착과량을 높여 빽빽하게 씌운 백색 봉지 수관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김종오 대표.

값싼 약제가 만드는 함정
김 명인이 30년 넘게 고품질 복숭아를 키워낸 핵심은 ‘영리한 방제’에 있다. 그는 수확이 끝난 가을철 관리를 소홀히 하는 일반 농가들의 관행을 지적했다.

“올해 농사 끝났다고 가을 방제를 안 하면 이듬해 농사는 시작부터 망한 겁니다. 저는 수확 후 가을에 세 번, 이듬해 봄에 세 번, 황토유황을 활용해 일 년에 총 여섯 번의 동절기 방제를 합니다. 균과 충의 밀도를 겨울에 미리 낮춰놓는 거죠.”

여기에 일 년에 두 번은 살충제 없이 황토유황만으로 나무 밑둥치 소독을 별도로 진행한다. 이 덕분에 그의 과수원 나무들은 30년이 지나도 진(수액)이 흘러나오는 증상 없이 밑둥치가 매끄럽다. 여름철 골칫거리인 탄저병은 직접 만든 칼슘제로 세포벽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미리 대응한다.

김 대표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같은 작용 기작의 약제만 고집하는 농가들의 문제도 짚었다.

“맨날 똑같은 약만 치면 벌레와 균에 내성이 생겨서 아무리 약을 쳐도 듣지 않는다”며, “약값을 아끼지 말고 작용 기작 기호를 확인해 서로 다른 약제를 번갈아 치는 ‘교호 살포’를 해야 제대로 된 방제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철저한 동절기 황토유황 방제와 밑둥치 정밀 소독 덕분에 30년이 지나도 진(수액) 하나 없이 깨끗하고 강건한 수세를 유지하고 있는 노령목.
6월 말 본격 출하를 앞두고 명인만의 정밀 관수 제어를 통해 비대기와 당도 형성 시기를 거치고 있는 조생종 복숭아 과실.

조생종 출하를 기다리며
지난해 남부지방은 집중호우와 수해로 작황이 어려웠지만, 충북 음성 지역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어 고품질 복숭아를 생산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수십만 장의 봉지를 달아 좋은 매출을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최고가가 아니라 평균 단가를 높게 유지했다는 것이다. 인건비와 농약비, 유류비 등을 제외하고도 비교적 높은 순이익률을 달성했다.

이러한 성과는 판로 다각화 덕분이다. 김 대표는 전체 물량의 상당 부분을 대형 백화점에 직납해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고 있다. 가격 변동이 큰 도매시장 공판장 출하는 일정 규모 미만으로 제한해 위험을 줄였다.

여기에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와 직거래 계약을 맺어 단일 매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카페는 흠집이 있는 과일은 받지 않고 최고 품질의 정품 생과만 받는 곳으로, 김 명인의 철저한 품질 관리와 잘 맞아떨어진 사례다. 나머지 물량도 인터넷 직거래 채널로 분산 출하하며 제값을 받고 있다.

광활한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 대표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인력 수급이다. 이번 봉지 씌우기 성수기에는 하루 동안 많은 일용직 근로자를 투입하며 적지 않은 인건비를 지출했다.

이러한 단기 인력 외에 과수원의 핵심 생산력은 매년 다시 입국하는 고정 계절근로자들이다. 이들이 해마다 감곡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명인의 '식구(食口)' 철학에 있다. 과수원 내 냉장고에 고기와 야채, 간식을 항상 채워두고 주기적으로 특식을 제공하며 정서적 유대를 쌓아온 결과다.

다만 농촌 현실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감곡 지역도 고령화가 심각해, 주인이 고령으로 농사를 포기하면 일 년 만에 폐원하는 소규모 과수원이 늘고 있다. 청년층의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초기 기반 자금이다. 부모의 기반 없이 시작하려면 필수 농기계 확보에만 억대의 자본이 묶이게 된다.

명인은 가업 승계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재배 기술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어오는 지역 후배 농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며 감곡 농업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일주일 남짓 지나면 본격적인 수확기가 시작된다. 6월 말 특정 품종을 시작으로 7월 초부터는 조생종 복숭아를 따기 시작해, 10월 중순 만생종까지 수십 가지 품종이 차례로 나온다.

"7월 초부터는 매일 새벽 수확과 배달을 반복해야 합니다. 초여름 가뭄을 잘 버텨준 덕분에 초기 조생종의 당도와 품질은 어느 해보다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수세 관리, 내성을 고려한 방제, 시장 흐름을 읽는 유통 다각화까지. 김종오 명인의 과수원은 경험에 의존하는 농업을 넘어, 기후변화 시대에 전문 농가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30년간 감곡의 흙을 지켜온 명인의 여름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두고 과수원을 돌며 근로자들이 놓치거나 미처 작업하지 못한 세부 착과 상태를 직접 가위로 교정하는 김종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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