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으로는 '신고'와 구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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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으로는 '신고'와 구별되지 않았다
  • 이혁희 국장
  • 승인 2026.09.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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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녹색배 넉 종 보급 확대… 가락시장 5년 설득 끝 "물건만 가져와라", 설원 도매 15㎏ 15만 원 최고가
수확기를 앞둔 녹색배. 배연구센터는 껍질색을 바꿔 '신고'와의 구별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수확기를 앞둔 녹색배. 배연구센터는 껍질색을 바꿔 '신고'와의 구별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국내 배 재배면적의 85%를 차지하는 '신고' 편중을 녹색 껍질의 품종으로 풀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는 8월 25일 전남 나주시 해오름영농법인에서 농업전문지 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설원'·'슈퍼골드'·'그린시스'·'조이스킨' 네 품종을 소개했다. 껍질색을 바꾼 이유는 맛이나 수량이 아니라 구별성이었다. 갈색 신품종을 아무리 내놓아도 시장에서 '신고'와 구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5년에 걸친 평가 끝에 반응이 돌아섰고, 지난해 '설원'은 도매 15㎏ 15만 원선까지 값이 올랐다.

갈색 신품종은 '신고'와 구별되지 않았다

'신고'는 1927년 일본에서 육성돼 일제강점기 국내에 들어온 품종이다. 1980년대 전체 재배면적의 35% 수준이던 점유율이 1990년대 후반 70%로 올랐고 지금은 85.4%에 이른다. 윤수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장은 브리핑에서 국내 배 시장이 명절 선물용 대과 중심으로 굳어졌다고 짚었다.

편중이 굳어진 데는 기술이 있었다. 정해원 배연구센터 연구사는 "지베렐린을 바르면 추석에 출하할 수 있고 바르지 않으면 설에 출하할 수 있어, 생산자 입장에서는 '신고'만 심으면 명절 수요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덜 익은 배를 추석에 내보내는 일이 반복되면서 품질 문제가 쌓였고, 그것이 배 산업 전체의 위축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배연구센터의 진단이다.

문제는 대안을 내놓아도 시장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정 연구사는 "기존에 갈색 품종을 아무리 새로 내더라도 '신고'와 구별성이 없었다"고 했다. 크고 외관이 좋은 갈색 배라는 점에서 '신고'와 같은 칸에 놓였고, 물량이 적으니 도매시장에서는 이른바 잡배 취급을 받아 값이 나오지 않았다.

껍질색을 바꾼 것은 그 지점을 겨냥한 선택이다. 배연구센터는 품종을 개발할 때 다양한 유전자원을 쓰기 때문에 녹색 배가 나오는 빈도도 갈색 못지않게 높지만, 시장의 인식 때문에 본격적으로 보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소비자 쪽에서 껍질색과 무관하게 내부 품질만 좋으면 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 변화를 확인한 뒤 녹색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설원'은 당도 14.0브릭스에 과육이 희고, 잘라 두어도 40분 이상 갈변하지 않는다.
'설원'은 당도 14.0브릭스에 과육이 희고, 잘라 두어도 40분 이상 갈변하지 않는다.

 

'설원'은 과육이 눈처럼 하얀 배다. 9월 상순 수확하며 당도는 14.0브릭스, 상온 저장기간은 30일이다. 전지혜 배연구센터장은 잘라 두어도 40분 이상 갈변하지 않는다며 조각 과일 같은 신선편이 가공에 유용하다고 했다. 추석 전에 대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꼽혔다.

'슈퍼골드'는 기존 배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은은한 산미가 특징이다. 9월 상순 수확하며, 윤 부장은 중동을 대상으로 한 시장성 평가에서 선호도 1위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린시스'는 동양배 '황금배'와 서양배 '바틀렛'을 교배한 국내 최초의 동·서양배 교잡 품종이다. 9월 중순 수확하며 당도는 12.3브릭스다. 서양배 쪽에서 검은별무늬병 저항성을 받아 방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저장성이 좋다. 전 센터장은 지난해 수확분이 이듬해 6월 하순까지 유통된 사례를 들었다.

'조이스킨'은 손으로 쥘 만한 크기의 소과종이다. 과중 320g, 당도 13.5브릭스에 과피가 얇아 껍질째 먹을 수 있다. 8월 하순 수확한다. 껍질을 벗겨야 하는 불편이 배 소비의 걸림돌이라는 판단에서 선발된 품종이다.

이들 품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게 15년, 길게 20년 이상이다. 전 센터장은 '그린시스'가 20년, '설원'이 15년 정도 걸렸다고 밝혔다.

가락시장이 5년 만에 문을 열었다

녹색배가 넘어야 할 관문으로 배연구센터가 지목한 곳은 가락시장이었다. 크고 외관이 좋은 과실만 취급하는, 가장 보수적인 시장이라는 이유에서다.

정 연구사는 5년 전부터 가락시장에서 중도매인과 유통인을 대상으로 시식 평가와 품질 평가를 계속해 왔다고 했다. 반응이 돌아선 것은 2~3년 전부터다. 그는 "특히 '설원'과 '슈퍼골드'는 껍질색과 상관없이 물건만 가져오면 판매해 주겠다는 중도매인이 대다수"라고 전했다.

정해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 연구사(왼쪽)와 윤수현 원예작물부장이 녹색배 품종을 설명하고 있다.
정해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 연구사(왼쪽)와 윤수현 원예작물부장이 녹색배 품종을 설명하고 있다.

 

값으로도 나타났다. 지난해 '설원'은 도매 기준 15㎏에 15만 원선까지 최고가를 기록했다. '슈퍼골드'는 ㎏당 1만 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전 센터장은 도매시장이나 대형 유통 쪽으로만 가면 '신고' 중심 구조에 눌리지만, 온라인 직판처럼 소비자가 먼저 찾는 경로로 가면 '신고'보다 훨씬 높은 값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에는 중앙청과 중도매인을 대상으로 한 시식 평가에서도 당도·식감·저장성이 우수해 대량 유통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가장 큰 한계로 지목된 것은 물량 확보 부족이었다. 중도매인들은 적극적인 보급을 요청했다.

꽃눈 2개 대 1.5개, 생산량은 아직 진다

시장이 열렸다고 농가가 곧바로 갈아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 연구사는 생산량에서 '신고'가 여전히 앞선다고 인정했다.

'신고'가 생산자에게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꽃눈 유지성이다. 국산 품종은 물론 동양배 전체와 견줘도 이 특성이 가장 좋다는 것이 정 연구사의 설명이다. 전년도 결과지 자리에 '신고'가 꽃눈 2개를 만든다면 신품종은 평균 1.5개 수준이다. 그만큼 겨울에 결과지 유인 작업을 더 해야 한다.

과실 크기에서도 차이가 있다. '신고'는 지베렐린 처리로 최대 700~800g까지 키우는데 '설원'은 600~700g 수준이다. 과실 하나마다 인력이 들어가는 구조에서 이 차이는 그대로 소득으로 이어진다.

정 연구사는 "소비자는 자꾸만 더 작은 배를 원하지만, 농가는 과실 하나당 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쉽사리 작은 과일로 바꾸지 못한다"며 그래서 식미가 좋은 것 중에서도 과중이 큰 '설원'과 '슈퍼골드'를 우선 보급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다 맞추는 완벽한 품종은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묘목만 주지 않는다, 생산·유통·소비를 묶는다

생산량 열세를 안고도 품종을 바꾸게 하려면 판로가 먼저 있어야 한다. 배연구센터가 개별 농가 보급이 아니라 생산단지로 방향을 잡은 이유다.

정 연구사는 생산단지가 묘목만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고 했다. 생산·유통·소비 세 축이 함께 참여한다는 것이다. 울산에서는 울산원예농협이 유통을 맡고, 나주에서는 나주시 시장인증 품질보증제에 '설원'을 품목으로 추가했다. 물량이 늘어날 경우에 대비해 나주배원예농협의 수출 경로도 미리 확보해 뒀다.

지방정부와의 협약이 통로가 됐다. 윤 부장은 울산과는 재작년에, 나주시와는 8월에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방정부와 연계한 지역 특화 단지 조성이 신품종 보급의 주요 경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라고 했다.

보급 면적은 아직 작다. '설원' 10㏊, '슈퍼골드' 27㏊, '그린시스' 43㏊ 규모로 나주·천안·울산·익산 등에 퍼져 있다. 도매시장이 요구한 물량과는 거리가 있다.

나주는 이미 25.8%

브리핑이 나주에서 열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주시가 배포한 자료를 보면 나주의 배 재배면적은 1,642㏊로 전국의 15.6%, 전남의 68.1%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주산지다. 국내육성품종 재배 비율은 25.8%로 전국 평균의 약 1.8배다.

비율은 최근 4년 사이에 움직였다. 2022년 370㏊(20.5%)에서 2025년 425㏊(25.8%)로 늘었고 2029년 500㏊(32.7%)가 목표다. 나주시는 매년 15~20㏊ 규모로 묘목과 시설을 지원해 왔으며, 녹색배 '설원'은 5년간 약 30㏊ 규모로 생산단지를 조성하기로 협약이 맺어졌다.

값을 받쳐 주는 장치도 함께 돌아간다. 나주시는 2023년부터 배 시장인증 품질보증제를 운영해 왔다. 당도 12브릭스 이상, 생장조절제 무처리를 기준으로 삼고 농가 교육과 현장 컨설팅, 숙기 판정을 거쳐 APC가 계약물량을 전량 매입·판매한다. 참여농가는 지난해 27농가에서 올해 36농가로 늘었고 계약물량은 56톤이다. 지난해 '신화'·'창조' 참여농가 27곳이 73.4톤을 유통해 일반 출하보다 조수입이 2억 3,600만 원 늘었다.

사람도 함께 준비되고 있다. 국내육성품종 전용 전정 기술을 다룰 전문 인력을 2024년부터 71명 길렀고, 2027년에는 시장인증 전정자격증반 40명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날 브리핑 장소를 내준 해오름영농법인 김지현 대표이사는 나주에서 약 20㏊ 규모의 배 과수원을 운영한다. 대형마트와 도매시장은 물론 최근에는 온라인 판매까지 넓혀 왔고, 2021년 나주시 자랑스러운 농업인, 2025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배연구센터는 앞으로 개화기가 늦은 품종, 자가결실성 품종, 화상병과 검은별무늬병에 강한 품종 등 안정 생산형 품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식대에는 겨울철 저온 요구 시간을 줄인 계통 '원교나-기후1'도 함께 올랐다. 지역적응시험을 마치고 등록까지 끝나 일부 농가에서 재배 중이다.

정리하면 녹색배의 셈법은 이렇다. 시장은 열렸고 값도 확인됐다. 그러나 생산량은 '신고'보다 적고 보급 면적은 80㏊ 남짓이다. 도매시장이 물건만 가져오라고 하는데 가져갈 물건이 아직 없다.

당장의 관찰 지점은 이달 하순 추석이다. 추석 전 출하가 가능하다는 '설원'과 '슈퍼골드'가 실제로 얼마나 나오는지가 첫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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