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 스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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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스치듯…
  • 월간원예
  • 승인 2011.07.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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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덜컹덜컹….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이른 새벽에 눈을 뜬 남자는
아직 잠이 덜 깬 하품을 길게 늘어놓았다.

“참 밸일이여~, 고 여시 같은 게 왜, 내 옆에서 잤을까?”

어제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남자는 꿈결에서
옛 여인을 만났다.
어쩐 일인지 온 몸이 굳어버린 남자 옆에 여자가 나란히 누었다.
남자가 눈을 뜨려 했지만 마음뿐,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희미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 이 향기는…?”

남자가 기억을 되살리기도 전에
후두둑, 후두둑, 덜컹덜컹….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노란 모감주 꽃 피어나 지면
백팔번뇌 녹이는 염주가 달리겠지.
그러면 내 아픈 기억도 지워질까….

힘들었던 기억만 있었는데,
아팠던 기억만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기억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문득,
이제는 정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름으로,
사치스럽게 떠올랐다가 아무렇지 않게 사라져 버렸다.

아프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단지,
기억이란 것….
한 켠에 눈길조차 머물지 않는 존재로
지워질 수 없는 이름으로 무의미하게 방치 되어 가고 있음을.

이렇게 흐르는 시간 앞에 무뎌져 가는 거,
살을 꼬집어보아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젠 가슴 아파할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부터
내가 자유로 와진 것일까

내 가슴 속은 폭풍이 쓸고 지나간 흔적들로 난무한 데,
…  ….

이렇게
텅 빈 충만.

무작정 멀리 떠나와서는,
하늘을 바라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
거기서부터 다시 길을 찾아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언젠가 좋은 기억을 나누며
들꽃이든,
지인이든,
친구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내 소중한 일부와 함께
저 찬란하게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언젠가 떠났던 그리움이
내게 사랑으로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림을 연습하고
또 그리움을 내 일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날이면,
저 하늘 끝에 흩어지는 가슴 아픈 눈물을 만날 수 있겠지,
그 모습으로,
바람 불고 빗방울 떨어지면
그 자리에 들꽃으로 남아 있겠지.

 

글·사진
들꽃세상 대표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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