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맛과 향 일품… ‘겨울 대파하면 진도’ 이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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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맛과 향 일품… ‘겨울 대파하면 진도’ 이유 있네
  • 김만선
  • 승인 2022.11.2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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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겨울 대파 재배농 김을식 대표

전남 진도군은 매년 11월 말이 되면 겨울 대파를 출하하느라 분주해진다. 남쪽의 따뜻한 기온과 해풍은 겨울 대파를 기르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진도군 지산면 송호리는 전체 50여 가구 가운데 농사일을 하기 힘든 고령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업인이 대파 농사에 전념하는 지역이다. 송호리에서 가장 큰 규모로 대파를 재배하고 있는 김을식 대표를 찾아 진도 겨울 대파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해남에서 울돌목을 눈동냥하며 진도대교를 넘어서자마자 따듯한 햇살이 차창 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섬의 차가운 기온을 걱정하며 챙겨온 두꺼운 옷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창문을 열자 보드랍고 화창한 명지바람이 운전자의 들뜬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었다. 
‘겨울 대파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목적의식 때문인지 초록의 밭에 자주 시선이 갔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탓에 스프링클러를 가동하고 있는 농가들이 적지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 대파 특유의 매운 향이 코를 자극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름다운 가을 정취와 대파가 빚어낸 진도의 풍경에 익숙해질 즈음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대파가 융단처럼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는 듯 한 곳이었다.

 

 

식이섬유 풍부하고 저장성도 우수 
진도군 지산면 송호리 김을식 대표의 ‘대파 사랑’은 25년 전부터 시작됐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부모님이 연로해지면서 귀향을 결심한 것이 계기였다. 
그의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귀향 후 2년 동안 대파의 출하량이 크게 늘면서 밭을 갈아엎는 농가들이 잇따랐고 소득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돈이 없어 당장 생활하기에도 벅찬 상황이 되자 김 대표는 한 해만 더 농사를 지어보고 또다시 실패한다면 다시 서울로 상경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농사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 시기였다. 

김 대표는 진도에서 처음으로 겨울 대파의 기계정식에 성공했다. 김 대표의 대파 밭 전경.
김 대표는 진도에서 처음으로 겨울 대파의 기계정식에 성공했다. 김 대표의 대파 밭 전경.

 

김 대표와 부인 양란숙 씨가 밭에서 겨울 대파를 손보고 있다.
김 대표와 부인 양란숙 씨가 밭에서 겨울 대파를 손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농업인의 길’을 걸을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3년째에 접어들자 대파의 가격이 제대로 형성됐고 벼 수확량도 늘어 농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현재 4만2975㎡(1만3000평)에 대파를 재배하는 데 지역에서는 가장 넓은 규모다. 
진도 대파의 특징은 차지고 기름진 토양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할 뿐 아니라 알린(Alliin) 등의 아미노산 성분의 함량이 높아 특유의 맛과 향이 진하다는 데 있다. 곧은 줄기, 풍부한 식이섬유, 치밀한 조직으로 저장성이 우수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진도의 겨울 대파는 ‘일년 농사’라고도 할 수 있다. 2월 중순부터 육묘를 시작하고 4월 초부터 5월 말경에 정식을 한다. 이 때가 가장 많은 일손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수확기는 11월 말에 시작되는 데 올해의 경우 강수량이 적어 4~5일에 한 번씩 물을 공급하고 있다.
“정식하는 과정이야말로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고 손도 자주 가는 작업입니다. 여름에는 병충해만 신경 쓰면 되거든요. 대파가 여름에는 휴면기에 들어가 성장을 안 하고 멈춰버려요. 자체로 몸에서 난 성분으로 버티는 것인데 그 때 안 죽게 하는 방법이 각 농업인들의 노하우가 됩니다.”

진도서 가장 먼저 기계정식 성공 
김 대표는 진도에서 가장 먼저 기계정식을 성공한 농업인으로 꼽힌다. 비닐 피복을 통해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계로 대파를 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기계정식과 비닐피복은 재배 과정이 다르고 성장 후 크기도 구별이 된다. 기계정식 파는 비닐피복에 비해 크기가 클뿐더러 소비자들이 주로 섭취하는 연백부(흰대)의 길이도 길다. 하지만 기계정식은 경사진 밭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데다 잡초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어 비닐피복 방식을 선택하는 농가도 적지 않다. 평당 수확량이 많다는 점도 비닐피복을 선호하는 원인이 된다.
김 대표는 파의 상품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인들이 면적 당 출하량이 많은 비닐피복 파를 선호하다보니 농업인들도 그에 맞춰 재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받으려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치중하다 보면 당장은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물량 증가에 따른 가격 하락 등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손해라는 얘기다. 

김 대표가 재배 중인 대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 대표가 재배 중인 대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 대표의 진도 대파 걱정은 또 있다.
진도 겨울 대파는 한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재배 지역이 점차 확산되면서 예전의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겨울 기온이 상승하자 진도 외에 신안과 해남 등지에서도 경쟁적으로 대파를 생산하는 것이다. 과잉생산은 가격폭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농업인들의 소득에 영향을 미쳐 재배 의지를 꺾는 원인이 되고 있다. 날씨와 병해충 등의 영향으로 대파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해서 농업인들의 수입이 크게 느는 것도 아니다. 농업인의 판매 가격은 다른 해와 별반 차이가 없고 시세 차익은 중간상인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건비는 물론 각종 자재값이 턱없이 오르는 것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는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올랐고, 비료 가격도 1만원 했던 게 지금은 2만 6000원으로 뛰었습니다. 면세유도 30~40%가량 비싸졌고요. 시세는 그대로인데 생산비가 상승하다보니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계정식 파(왼쪽)는 비닐피복 파에 비해 크기가 크고 연백부도 길다.
기계정식 파(왼쪽)는 비닐피복 파에 비해 크기가 크고 연백부도 길다.


올 시세 평년보다 조금 웃돌아 ‘안도’
이 지역 대파 농업인들의 판매는 밭떼기 거래가 주류를 이룬다. 농업인이 중간상인들에게 판매를 하면 그들이 수확해서 공급하는 형식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올해의 시세가 평당 1만원에서 1만5000원 사이로 평년 수준을 조금 웃돌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2년 전부터 송호리 이장을 맡아 주민을 위한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마을 일에는 모든 주민이 제 일처럼 팔을 걷어붙일뿐더러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반면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농업기술 정보 공유나 습득에 적극적이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농업기술센터 등 전문기관에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농업인에게 당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서 먼저 지도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자신보다 먼저 기계정식을 시도한 농가가 있었음에도 물이나 비료 공급량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몰라 실패했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종자와 상토, 인건비, 시간 등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손해인 셈이다.
그는 “대파나 양파와 같은 채소류는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수급조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농산물 가격 상승 혜택이 농가에게 주어지지 않는 만큼 농자재 구입이나 시설 설치 등 농업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부 지원도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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