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쌀, 소고기와 같은 민감 품목의 추가개방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감한 이슈인 농축산물 검역 등 비관세 조치에 대해서는 개선, 협력 등 선언적인 내용만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잘한 협상이라고 볼 수 있다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고 그 결과 1995년에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로 대변되는 무역자유화의 시대가 바야흐로 저물어가고 있다. 트럼프 1기 집권 때 이러한 징조가 예견되었지만, 2기 집권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한참 뛰어 넘는 ‘패권무역주의’를 선보이고 있다. 트럼프에 의해 일방적인 품목별 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가 설정되었으니, 나름 글로벌 파워가 있다고 여겨졌던 국가들도 미국과의 일대일 협상에서는 전혀 맥을 못 추었으며, 신흥개도국 그룹인 BRICs의 대응도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불법 비상 계험과 탄핵으로 미국과의 통상협상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지체되었던 우리나라의 상호관세는 15%로 확정되었다. 미국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국인 일본, EU 등과 동일한 조건인 상호관세율 15%를 얻어낸 점에서 일단 선방한 협상으로 볼 수 있다. 국가별 상호관세 문제가 일단락이 되었지만, 여전히 중국과의 협상은 진행 중이며, 현행 상호관세를 줄이고자 하는 각국의 외교적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더욱이,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 문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의 통상정책의 추진 경과를 되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국내 농업부문의 통상이슈들에 대해서도 향후 대응방향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질서의 변곡점
상호관세 협상이 일단락된 8월 7일에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지난 30년 간 지속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
자유무역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트럼프 라운드’라고 명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국 주도의 연합국이 자유경제 질서 확립 방안을 논의하며 1945년 출범시킨 브레튼우즈 체제 50년과 이후 현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을 이루며 30년을 이어온 WTO 체제 등 80년의 자유무역 질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되고 불과 200일 만에 종말을 고한 셈이다. 그리어 대표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트럼프 라운드의 핵심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이라는 수단과 목표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새로운 체제를 만든 원동력과 향후 발생할 분쟁을 해결할 사실상의 유일한 수단으로 무차별적 관세를 내세웠다. 미국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합의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불이행 시 더 높은 관세를 신속하게 부과하는 것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소비시장인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특권을 강력한 ‘당근’으로, 관세를 강력한 ‘채찍’으로 활용한다. 이미 트럼프는 정치적 이유로 ‘징벌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는 중국 견제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4개국 안보대화(QUAD)의 일원인 인도에 러시아 원유 수입을 이유로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브라질에는 극우파인 전직 대통령의 쿠데타 모의 혐의 기소가 인권침해라며 상호관세율을 50%까지 높였다. 캐나다 총리가 팔레스타인 독립국 승인 가능성을 언급하자 상호관세율을 35%로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7개월 동안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미국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패권국으로서의 존재감을 만방에 과시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가지고 거칠게 추진하고 있는 대중 경제안보동맹체제가 기존 자유무역질서를 성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아니면 관세제국주의의 행포로 동맹과 우방의 불만이 커지고 인플레이션과 같은 내부의 피로도가 쌓여 종국에는 미국의 고립과 쇠퇴로 귀결될 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계질서의 변곡점을 목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략과 농업분야의 대응
한국으로부터 상호관세 ‘15%’를 부여받은 EU, 일본, 한국은 외교·군사적으로 또 다른 안보비용을 청구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존재한다. 트럼프는 EU, 일본, 한국을 무임승차하고 있는 부자 동맹으로 간주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때로는 적이 아닌 친구처럼 활용한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미 동맹에만 의존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 보인다. 결국, 한미 동맹을 핵심으로 두되 EU, 일본 등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협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한, 통상국가로서 포용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규범 기반 다자무역질서의 복원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트럼프 라운드에서는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미국을 중심으로 첨단산업과 핵심자원의 공급망을 재구축하는데 있어 동맹이나 우방의 정치·외교·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핵심 제조업의 과도한 대미투자가 국내 산업공동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AI, 로봇, 바이오 등 혁신기술과 접목해 제조혁신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내수시장의 활성화, 수출시장 다변화와 더불어 남북 경제협력 여건 조성도 준비해 나가야 한다.
농업분야 또한 미국과의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되, 식량안보와 식품안전성, 검역주권 등에 있어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미국 농무부(USDA) 통계에 따르면, 2024년에 우리나라는 미국에게 5번째로 큰 규모의 농산물수출시장이다.
미국의 對한국 무역적자 규모는 2024년 557억달러이나, 농식품교역만으로 좁혀 보면 미국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對미 농식품수출은 16억 달러인데 반해, 미국으로부터 농식품수입은 96억 달러로 우리나라는 80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미국 농축산물의 소비시장 중의 하나에 진출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쌀, 소고기와 같은 민감 품목의 추가개방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감한 이슈인 농축산물 검역 등 비관세조치에 대해서는 개선, 협력 등 선언적인 내용만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잘한 협상이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트럼프의 행동패턴을 고려하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예기치 못한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관세협상에서 합의된 내용이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제시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당장, 한미 FTA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한미 FTA의 이행결과를 유지하면서 이번 관세협상을 반영한 FTA 개선협상이 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현재 한미 FTA에서 추가 이행은 농축산물 분야만 남아 있다. 즉, 미국으로부터 수입 시 소고기를 포함해 15년 관세철폐 품목들과 20년 관세철폐 두 품목(부사 품종 사과/동양 배)은 잔존관세가 아직 남아 있다. TRQ를 매년 복리증량하는 품목들도 존재한다. 당장 이들 품목의 관세율이 0%가 되는지, TRQ 증량 품목들의 증량은 현 수준에서 멈추는지 등 세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관세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나라의 일부 농업통상정책을 불공정한 무역관행 사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쌀 513% 고관세와 제한적인 시장접근(매년 5%저율 관세 적용하는 40.87만 톤 수입량 中 미국산 13만여 톤 배정)에 대해서는 또 다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7월 상호관세 발표 시 들어 보인
USTR의 ‘2025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3월 말 발간)‘에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수입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국방분야의 절충교역 규정, 디지털 무역장벽 등과 함께 농업 관련 대표이슈인 30개월 이상인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수입금지가 명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USTR의 NTE 연례보고서에는 한국 농업과 관련해 농생명공학제품에 대한 까다로운 승인절차, 반려동물사
료 시장접근 제한, 원예 농산물 시장접근 제한, 농약 최대잔류 허용수준(MRL, Maximum Residue Limit) 설정 등이 매년 반복되어 기술된다.
국내 신선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의 미국시장 접근
식물 검역절차 등 원예 농산물 시장접근, 농약 최대잔류 허용수준 등은 국내 관련 제도와 규정이 관련 국제 기구의 권고에 기초하여 설정된 점을 이해시키고, 인위적인 절차 지연 없이 전문기관과 전문가의 과학적 근거와 판단을 존중해서 처리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일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 SPS 관련 물적·인적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
야 한다. 농생명공학 제품의 경우, 국내 관련 기술의 R&D 및 투자 활성화, 산업화 등에서 긍정적인 측면 이 크기 때문에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관련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유전자편집기술이 적용된 제품에 한정해 수입승인 절차를 개선하는 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것에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반면, 대미 농식품 무역적자의 개선을 위해 국내 신선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의 미국시장 접근을 제약하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미국에 개선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1995년 농산물 시장개방 이후 지난 30여년 간 국산 농축산물의 품질 경쟁력은 상당히 개선되어 왔다. 물적 인프라나 제도적 장치도 선진국 수준으로 마련되어 왔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가격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농산물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작년 사과의 경우를 보더라도, 검역조치를 해제하고 해외에서 사과를 수입해야 한다는 비농업계 인사들의 주장도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기후변화 등 생산의 불안정성을 낮추기 위한 정책, 농가경영의 위험관리를 강화하는 수단이 필요하며, 새로운 청년층의 농업 진입의 문턱을 낮추고, 농업생산과 스마트팜, AI로봇 등 혁신기술과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가격경쟁력을 개선할 수 있는 유통구조 개선 등도 중요한 과제이다. 외부적으로는, 수요기반 확보 차원에서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도 모색해야 한다. 한류의 인기에 힘입어 신선농축산물과 함께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한 가공식품의 수출을 촉진할 수 있도록 농업과 식품산업의 연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업경제과
문한필 교수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업경제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