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습격과 신고의 한계, 신품종 배가 여는 새로운 소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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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의 습격과 신고의 한계, 신품종 배가 여는 새로운 소비 지도
  • 이지우
  • 승인 2026.04.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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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이팜스 이욱용 대표
충남 천안시 이팜스 이욱용 대표

기상 이변이 더 이상 이례적 사건이 아닌 일상이 되면서, 과수 산업의 위기는 한층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수확 이후에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손실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박사후연구원(Post-Doc) 출신으로 이론과 현장을 모두 경험한 이욱용 대표를 만나, 기후 변화가 불러온 구조적 변화와 그 대응 전략, 그리고 신고 중심 구조를 넘어서는 배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짚어봤다.

 

최근 배 농가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수확 직후가 아닌 저장고에서 드러난 문제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던 과실이 저장 과정에서 급격히 무르거나 부패하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욱용 대표는 이를 기후 변화가 만든 전형적인 2차 피해로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해 배 저장 물량의 손실율은 전국 평균 40% 수준까지 치솟았다. 재작년처럼 극심한 일소(볕데임) 피해가 눈에 띄지 않았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더 큰 손실로 이어진 셈이다.
이욱용 대표는 배 산업 전체의 관점에서 살펴봐야할 문제라고 말한다.“과수는 눈에 보이는 피해보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데미지가 더 큽니다. 보통 6월 말부터 시작되는 꽃눈 분화기에 8~9월 폭염과 열대야가 겹치면 나무가 충분한 저장 양분을 축적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양 불균형이 발생하면 저장 과정에서의 품질 저하는 물론, 다음 해 생육 사이클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특정 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배 산업 전체가 직면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팜스의 저장 손실율은 10% 미만에 머물렀다. 비결은 관행을 그대로 따르지 않은 유연한 재배 전략에 있었다. 일소 피해가 우려되는 시기, 일반적으로는 도장지 제거를 통해 수세를 조절하지만 이 대표는 오히려 작업을 최소화하고 수관을 무성하게 유지했다. 잎을 충분히 확보해 과실을 가리는 차광 효과를 확보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광합성 효율 일부를 감수하더라도 과실을 열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도장지를 남겨둔 것이 과실의 온도 상승을 막아 저장성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기상 조건에 따라 재배 방식을 현장에서 유연하게 수정하는 기술적 민첩성이 필수적입니다.”

봄 전지전정 작업을 마치고 화접을 기다리는 이팜스 과수원.
이팜스는 유인 작업을 끝내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팜스 과수원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냉해 피해는 덜한 편이다.
지난 겨울 전국 저장배의 상당부분이 일소피해로 인한 기록적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또 다른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품종 다변화를 통한 시장 경쟁력 확보
이욱용 대표는 사과나 복숭아 등 타 과종에 비해 유독 더딘 배 산업의 품종 갱신 속도를 깊이 우려한다. 사과는 이미 소비 트렌드에 맞춰 신품종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며 시장의 선택권이 넓어진 반면, 배는 여전히 신고라는 단일 품종의 벽에 갇혀 있다는 분석이다.
“사과나 복숭아는 신품종이 나오면 시장에서 빠르게 수용되고 농가도 이에 기민하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배 도매시장은 여전히 신고 중심입니다. 신품종은 물량이 적다는 이유로 잡배 취급을 받고, 오히려 가격을 더 낮게 책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로 인해 농가는 판로가 불확실한 신품종 대신 안정적으로 판매 가능한 신고 품종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유통은 물량이 있어야 취급한다고 하고, 생산자는 팔아줄 곳이 있어야 심는다고 하며 서로 먼저 움직이지 않으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 대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이팜스의 3만 평 농지 중 8천 평 이상을 신품종으로 전환하며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석세포가 적어 식감이 부드럽고 과즙이 풍부한 녹색 배 그린시스(4,500평)부터 숙기가 빠른 창조(1,500평), 충남 지역 특화 품종인 청밀(1,500평), 그리고 15.9브릭스의 고당도를 자랑하는 소과형 기후 1호(500평)까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품종들로 소비자 입맛을 정교하게 공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바나나처럼 저렴하고 간편한 과일이 많습니다. 과거처럼 명절 선물용 중심 소비만으로는 시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소비자의 입맛은 이미 변했습니다. 이제는 크기나 모양보다 트렌드에 맞춘 맛과 품질로 승부해야 합니다. 신품종 도입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우리 배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욱용 대표는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과원의 핵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교편을 잡고 조합 이사직을 겸하면서도 매일 현장에서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좋은 결실로 돌아온다고.
이 대표는 신품종 갱신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신품종 주력인 그린시스 외에도 청밀, 창조, 기후1호 등 다양한 품종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조합과 청년 농업인이 함께 그려가는 미래
이러한 위기 인식은 개별 농가를 넘어 조직 차원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천안배원예농협은 최근 기후 위기 대응과 품종 갱신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 실험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선출직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 대표는 55세 미만 농가로 구성된 청년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현장의 실질적인 대안을 조합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자재를 지원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특정 농가를 선정해 영양제나 재배 기술의 효과를 실제 데이터로 검증하는 오픈 테스트 베드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이론과 실증을 겸비한 청년 농가들이 중심이 되어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현장 최적화 매뉴얼을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또한 상습 냉해 지역을 위해 무인 SS기 기반 열풍 시스템 도입과 같은 창의적인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며 스마트 농업의 실용적 확산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대표는 연구 현장의 연계성을 강화하여 데이터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재배부터 저장까지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수확 후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어야만 기후 위기에 따른 피해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규명할 수 있다는 논리다.
“농업도 이제는 철저히 소비자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하며, 그 변화의 중심에 농협이 있어야 합니다. 품종 다변화를 통해 배를 명절 선물용이라는 틀에서 해방시키고 제철에 즐기는 가장 맛있는 일상 과일로 포지셔닝하는 것. 천안배원예농협과 청년 농부들이 함께 그려가는 이 실험이 한국 배 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배 산업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 진단한 이욱용 대표. 배 산업의 갱쟁력은 농가 스스로 키워나가는 것이라며 적극적 품종갱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유통력 단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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