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재배, 시설보다 중요한 건 농부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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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재배, 시설보다 중요한 건 농부의 ‘깊이’
  • 이지우
  • 승인 2026.01.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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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쌍둥이농장 문병호 대표
경남 창원시 쌍둥이농장 문병호 대표
재배 품종은 설향. 400평 5동 하우스에서 약 4만주를 재배한다.

시설의 현대화가 화두다. 하지만 초기비용은 언제나 큰 벽이자 성공적 영농의 짐이 될 수 있다. 18년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문병호 대표는 관점을 달리해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다. 으리으리한 시설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30년 된 낡은 하우스에서 비롯된 그의 딸기 재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병호 대표의 농장에 들어서면 최근 유행하는 고층 연동 하우스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8년 전 딸기를 시작해 하나씩 늘려온 5개 하우스는 폭이 넓은(베드길이 12m) ‘광폭형 단동 하우스’ 형태를 띠고 있지만, 층고는 3.5m 정도로 아담한 편이다. 흔히 딸기 스마트팜이라고 하면 높은 천장을 떠올리지만, 문 대표는 “시설이 무조건 좋고 높아야 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가 낮은 하우스를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겨울철 ‘난방 효율’과 ‘생육 속도’ 때문이다. 딸기 농사의 승부처는 가격이 가장 높게 형성되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다. 천장이 높은 연동 하우스는 내부 체적이 커서 온도를 올리는 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된다. 온실의 낮은 높이에 더해 햇빛의 궤적에 맞춰 베드 방향을 남북으로 배치, 어느 한 곳도 소외되지 않고 하루 종일 균일한 일조량을 확보했다.
“딸기는 20℃ 이상 따뜻해야 생육이 빨라집니다. 우리 하우스는 아침에 이불(보온덮개)을 벗기면 1시간 안에 20도까지 금방 올라가 버려요. 반면 높은 연동 하우스들은 그 온도 맞추려면 난방비가 엄청나게 들어가죠. 출하일을 당기는 것보다 과실을 충분히 비대시키고 맛을 채우기 위해 12월 초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씁니다. 남들보다 빨리 따는 게 능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시즌 같은 대목에 맞춰 가장 완벽한 품질로 출하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빠른 온도 상승과 효율적인 관리는 출하의 타이밍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단순한 속도전보단 ‘품질’을 선택한 것이다.

노동력 절감과 병해 예방의 핵심
‘멀티컵’ 시스템

쌍둥이 농장이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서도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멀티컵(Multi-Cup)’ 재배 시스템의 도입이다. 5년 전부터 문 대표가 사용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하나의 베드에 6개의 컵이 장착된 형태다. 문 대표는 “멀티컵은 인건비싸움에서 압도적”이라고 강조했다.
“농촌에 사람 구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 농장에 들어가는 모종이 약 4만 주 정도 됩니다. 예전에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 4만여 포기를 7260m2(2200평)에 다 심으려면 5일은 꼬박 걸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8명이서 하루면 다 심어버립니다. 구멍 팔 필요도 없이 포트를 컵에 얹어놓기만 하면 뿌리가 알아서 내리니까요. 철거할 때도 저 혼자 일주일이면 충분할 정도로 간편합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멀티컵은 탁월한 이점을 가진다. 보통 수경재배 농가들은 비용 문제로 상토(배지)를 3~5년씩 재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염류가 집적되거나 병원균이 축적되어 연작 장해를 겪기 쉽다. 하지만 멀티컵 방식은 컵 용량이 작아 상토 소요량이 일반 베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반 베드는 상토를 4~5년씩 쓰는데, 한 번 병이 오면 그 자리에 또 병이 와요. 하지만 이건 상토 양이 적으니까 비용 부담 없이 매년 새 상토로 갈아줄 수 있습니다. 매년 ‘새 집’을 지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죠. 혹시 죽는 게 나와도 그 컵만 쏙 뽑아서 새 걸로 갈아 끼우면 됩니다. 흔히 말하는 보식 후 ‘골탕(생육 불균형)’ 현상도 전혀 없어요.”
특히 멀티컵 물 관리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사용자의 의도대로 관수량과 배액을 정밀하게 통제하기가 용이해, 뿌리 환경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표가 강조하는 ‘물 관리’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컨설팅하는 분들은 물을 많이 주라고 하지만, 저는 정식 초기 하루 1회, 활착 후에는 조금씩 자주 줍니다. 멀티컵은 이렇게 제 의도대로 수분과 영양을 조절하기가 쉬워요. 염류집적도 막을 수 있고요. 덕분에 물맛이 아닌, 경도가 단단하고 당도가 꽉 찬 딸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멀티컵으로 설비를 변경하면서 딸기가 이전보다 확실히 더 맛있어졌다는 평가가 주를 잇는다. 이는 정밀한 EC 관리와 절제된 관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5일 걸리던 약 4만 주의 딸기 모종 정식이 8명 기준 하루 만에 끝내는 비약적 결실을 낸 멀티컵 도입. 문 대표는 정식과 재배 후 재정비가 모두 편해 노동력이 크게 절감됐다고 말한다.
문 대표가 5년 전 도입해 재배의 효율성을 끌어올린 (주)화성산업의 멀티컵 6구. 사용되는 상토 양이 1/3까지 줄일 수 있으며, 양액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멀티컵은 특히 뿌리가 각각 한주씩 분리되기 때문에 균일한 생장과 병의 전염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큰 특징이다.

농부의 노력이 곧
딸기의 가치를 높인다

문병호 대표는 포기당 평균 800~900g의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는 직거래 장터나 SNS 판매, 체험 농장 등 부가적인 유통 채널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생산된 딸기 전량은 선별 과정을 거쳐 100% 부산 농협 공판장으로 출하된다. 문 대표의 딸기는 공판장에서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생산과 유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작물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판매를 하러 다니는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딸기에게 쏟고 싶습니다. 공판장에서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아 제값을 받는 것, 그것이 소비자와 만나는 가장 확실하고 정직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인터뷰 말미, 문 대표는 최근 스마트팜 창업에 뛰어드는 청년 농부들에게 선배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는 “아무리 좋은 차라도 운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달릴 수 없듯이, 최첨단 시설도 결국 농부의 이해도가 중요하다”고 비유했다.
“저 역시 고추 하우스 한 동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5동까지 늘려왔습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작게 시작하더라도 작물과 호흡하며 내공을 쌓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결국 농사는 시설이 아니라, 농부의 땀과 관심으로 지어지는 것이니까요.”
쌍둥이 농장의 하우스는 겉보기엔 투박하고 오래되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햇빛의 각도부터 난방 효율, 노동력 절감, 그리고 병해 예방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문병호 대표만의 ‘실용주의 농법’이 가득 차 있다. 시설의 높이나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을 제어하고 작물과 소통하는 농부의 깊이라는 사실을 문 대표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문대표는 유통보다 재배에 중점을 두며, 전국 상위 2%의 공판장 가격을 목표로 딸기를 출하하고 있다.
30년이 넘은 하우스를 가진 환경적 조건과 6구 멀티컵을 활용해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문 대표의 딸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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