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계절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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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계절을 기억한다
  • 이지우
  • 승인 2026.05.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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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특집기획] 스마트농업, 오늘을 묻고 미래를 그리다②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오정석 책임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오정석 책임연구원

지하 200m 아래는 계절이 없다. 한여름 폭염도, 한겨울 한파도 닿지 않는 14℃의 안정적인 온도가 사계절 유지된다. 오정석 책임연구원은 이 사실에서 출발했다. 여름의 열을 땅속에 저장했다가 겨울에 꺼내 쓰는 ATES(대수층 축열) 기술을 전북 완주 화훼온실에서 성공적으로 실증해 낸 그에게, 에너지 위기 시대 시설원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Q 왜 지금 에너지 자립을 서둘러야 합니까?
근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호르무즈 사태로 증폭된 에너지 위기는 다시금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화석연료 기반의 외부 에너지 의존 구조는 기후변화 및 탄소중립의 당위성을 넘어서, 당장 오늘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시설원예 운영에는 난방비 비중이 30% 내외로 매우 높기 때문에 유가 변동이 곧바로 농가 경영 위기로 직결됩니다. 이번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화석연료 기반의 농업 생산이 지니는 구조적 취약성과 농업경영의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에너지 자립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로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ATES(대수층 축열) 기술을 적용한 전북 완주 화훼재배온실의 시설실

Q 스마트농업이 지향해야 할 저소비·고효율 구조는 무엇입니까?
그동안 스마트팜이 고품질과 생산성에 집중하였다면 앞으로는 에너지까지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에너지 생산·저장·사용의 통합입니다. 단순히 에너지를 외부에서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원예시설 자체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여 적시에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합니다. 둘째, 계절 간 에너지 이동(Seasonal Shifting)입니다. 여름의 온열을 저장했다가 겨울에 사용하는 방식처럼 계절 간 시간차 열 효용을 고려한 에너지 운영이 필요합니다. 셋째, 데이터 기반 에너지 관리입니다. 온실의 열 환경, 작물 생육 조건, 에너지 소비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최적 운영을 해야 합니다. 저희 연구에서 에너지 생산(ATES), 변환(히트펌프), 관리(통합플랫폼)의 통합을 실증한 결과 단순 자동화를 넘어 에너지 효율 중심의 스마트팜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앞으로 스마트농업은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농업이 아니라, 적은 에너지로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농업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Q ATES가 대규모 스마트팜에서 갖는 독보적 강점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대용량·저비용·계절간 장기저장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에너지 저장 기술은 저장용량이나 저장기간에서 한계가 있지만, 대수층(지하수층)을 활용하면 자연 자체를 온열과 냉열 저장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하 대수층을 활용해 대규모 열저장이 가능하고, 계절간 열에너지 이동이 가능하며, 자연 지층을 열저장소로 활용함으로써 높은 경제성을 지닙니다. 무엇보다 외기 영향을 적게 받아 높은 열저장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열적 안정성이 결정적인 강점입니다. 실제 저희는 전북 완주 화훼온실 약 1,000평(0.3ha) 규모에서 대수층과 하천수 기반의 열을 저장·활용하여 온실 냉난방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실증하였습니다. 냉난방 에너지 수요가 일정하고 큰 대규모 스마트팜이나 화훼단지에서 ATES는 가장 현실적인 기저 에너지 시스템이 될 수 있습니다.

Q 마을 단위의 ‘에너지 공동체’ 모델도 실현 가능합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우리 시설원예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방향입니다. 예를 들어 여름철 한 농가에서 발생한 열을 지중에 저장했다가 겨울철 다른 농가에서 사용하는 방식의 구역간 에너지 공유(Regional Sharing)가 가능합니다. 이는 전기 분야의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Micro-grid)과 유사한 개념으로, 열에너지 기반 지역 에너지 네트워크·인프라로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지역 공동체에서 농번기 일손을 돌아가며 거들어 주던 품앗이 전통이 있습니다. 이를 에너지 품앗이로 확장함으로써 초기 투자비 절감, 설비 효율 극대화, 에너지 수급 안정화라는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스마트팜 단지 또는 농촌 마을 단위로 에너지 생산·저장·공유를 통합한 농촌형 에너지 플랫폼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 농업인들께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농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단순한 경기 문제가 아니라 농업 구조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해법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수층 계간 축열(ATES)과 같은 기술은 원예시설이 더 이상 에너지 다소비 설비가 아니라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에너지 자립 플랫폼으로 바꿀 수 있는 기반입니다. 현장에서 느끼시기에는 변화가 부담스럽고 불확실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만,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먼저 준비하는 농가가 훨씬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연구자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대수층 축열(ATES) 기술이 온실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성과를 내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어려운 에너지 위기를 조금만 더 버텨주시고, 가능하다면 에너지 자립형 농업으로 한 걸음 내디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첫걸음이 우리 농업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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