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국처럼 처절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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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국처럼 처절하지 못할까
  • 월간원예
  • 승인 2009.11.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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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에
엄니가 싸주신 가을을 들고
삭막한 도시로 돌아오며
뒤돌아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을 아쉬워 합니다.

 

명자가 얼굴 붉이며 내밀던
부추전이 꽃으로 남아
뇌리에서 한들거립니다.

 

담벼락 타 넘던 메꽃은
건너 마을 복순이를 닮았습니다.
먼 옛날 소싯적, 희고 탱탱했던 얼굴이
지금도 눈 앞에 아련합니다.

 

“나는 나팔꽃을 젤 좋아해”

 

환하게 웃던 은숙이는
아직도 철부지 아이 같았습니다.

가을이 깊고
하늘이 높아지면
우리는 더 외로워 할 것입니다.

 

이제,
맘속에 흥얼이던 싯귀를
기억해 낼 것입니다.
이 가을에.

 

조용히 불러주세요
눈 감지않아도 보여요
바람처럼 달려왔던 당신모습
이슬되어 흐르네요

 

조용히 불러주세요
눈 감지않아도 보여요
속삭임처럼 당신 목소리
처마밑 풍경 되었지요

 

조용히 불러주세요
눈 감지않아도 보여요
스산한거리 저쪽 뒹구는 낙엽위에
당신 맘 물들었네요

 

조용히 불러주세요
눈 감지않아도 보여요
그댈 사랑해버린 바보같은 내 인생
오늘 고개 숙였네요

 

조용히 불러주세요
눈 감지않아도 보여요
당신은,
당신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이 웅장했던 여름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봄날의 아련한 추억도,
이젠 떠나고 없다.

 

솜털 보송한 할미꽃 수염도
바람을 맞은 지 오래다.
폐교로 남아있는 화단 길에
풍접초가 익어간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나는 서러워 진다.

 

왔다가 가는 것,
갔다가 오는 것.

 

이 단순한 순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쯤이면
가는 것과 오는것에
마음 뺏기지 않을까…

 

하나, 둘 피어나는 감국처럼
처절하지 못할까.

 

한가위 명절에
그리운 얼굴을 만나고
내 탯자리에서 하늘만큼 큰
내 모습을 만났습니다.

 

가을 깊숙히 들어가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털머위 꽃도 만났습니다.

 

그래
여름이 가고 있다.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서
바위를 삼키고 모래를 삼키고

 

그리고
뜨거운 태양아래 숨은 욕망조차도 삼켜버린
여름이 가고 있다.

 

모래우에 지은 집 위로
하룻밤 사랑이 쓰러져 울고
뻥 뚫린 가슴하나가 바람소리를 내며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래
이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숲에서 쫓겨난 가을잎 속으로
- 가을이 오면 / 최명자-


글·사진 | 들꽃세상 대표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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