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 키운 4500송이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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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 키운 4500송이 포도나무
  • 이태호 기자
  • 승인 2019.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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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희성농장 도덕현 대표

한 그루에서 포도 4500송이가 열리는 기적. 전북 고창에서 매해 기록을 새로 쓰며 기적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희성농장의 포도나무는 올해로 14살이 됐다. 보통 10살이 넘은 포도나무는 품질이 저하돼 수명을 다하지만, 희성농장의 포도나무들은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최대한 자연 그대로를 지향하는 호르몬전지법과 탄소순환농법으로 유기농 포도와 유기농 복분자의 파라다이스를 이끌고 있는 도덕현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북 고창군 희성농장 도덕현 대표
전북 고창군 희성농장 도덕현 대표

 

농사는 ‘거름’이 아니라 
‘걸음’을 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기농’ 하면 단연 손꼽히는 실력자인 도덕현 대표의 첫인상은 ‘강단’과 ‘뚝심’ 그 자체였다. 마주한 그의 또렷한 눈빛에서 유기농법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느껴졌다. 그는 신지식인, 스타팜 등 다양한 수식어만큼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그러나 도 대표는 대외적인 평가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농사꾼은 농산물을 먹는 모든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붙잡은 채, 유기농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며 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스레 따라붙은 평가라고.  
“농사는 거름이 아니라 걸음을 많이 줘야 성공합니다. 걸음이란 애정과 관심에 비례하겠지요. 나무 곁으로 걸음을 많이 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물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7년부터 유기농에 대한 뚝심 하나로 일궈온 도덕현 대표의 희성농장은 포도 8264㎡(2500평), 복분자 3305㎡(1000평) 규모로 국내 유기농 포도 재배 농가 중에서는 으뜸가는 규모와 품질을 자랑한다. 
도 대표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절 농약이나 호르몬제, 비료 등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도 대표를 두고 주변에서는 ‘미쳤다’는 소리를 수없이 했다고. 최근 시작한 유기농 복분자 재배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가능성을 낮게 보았지만, 도 대표는 그에 괘념치 않고 여전히 ‘인간의 편의를 위한 농사가 아닌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농사법’을 지향하고 있다. 

 

희성농장은  여섯 그루의 나무가 3305㎡(1000평)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거목이다. 
 

 

나무가 크고 싶은 대로 돌봐주는  
호르몬 전지법

도 대표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동물이 건강한 먹거리가 되듯, 식물 역시 행복해야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식물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반 관행 농장은 보통 나무 간격이 2.4m 정도지만, 희성농장은 짧게는 20m, 길게는 30m 간격으로 나무가 자유롭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저는 평생 유기농만을 고집했습니다. 농약이나 약품 처리를 해서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그렇게 해볼까 하는 생각조차 한 적 없습니다. 전지 또한 그렇습니다. 인간이 일하기 편하게 자르지 않고 나무가 자라는 자연스러운 방향을 따라 큰 가지 위주로 남깁니다.” 
도 대표는 나무의 호르몬이 왕성한 큰 가지 위주로 전지하는 방법을 ‘호르몬 전지법’이라고 칭하며 자신이 고안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저 ‘나무야, 네가 크고 싶은 대로 커라. 나는 네가 클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준다’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돌볼 뿐입니다.”
도 대표의 이러한 철학은 희성농장의 자랑인 거대한 포도나무에 그대로 구현됐다. 
8264㎡(2500평) 면적에 포도나무는 단 36그루. 여섯 그루의 나무가 3305㎡(1000평)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거목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거짓말 같은 이 말이 희성농장에서는 꿈처럼 실현돼 포도의 파라다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호르몬 전지법은 보시다시피 불가능한 실험이 아닙니다. 이론을 넘어선 결과입니다. 편의나 이론에 따라 전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방향대로, 포도가 지닌 유전적 능력을 극대화 해주는 것이 농사꾼의 몫입니다.”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환경으로. 
탄소순환농법

도 대표는 농사에 분뇨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대나무와 참나무 톱밥, 콩깻묵, 두부비지, 현미쌀겨, 옥수수씨눈박, 밀기울, 버섯배지 등을 섞어 발효과정을 거쳐 직접 식물성 발효 유기물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산에 가 보면 비료도 안 주고 농약도 안 쳤지만 나무나 식물들이 알아서 잘 크지 않습니까? 약품이 아닌 유기물 퇴비만으로도 훌륭한 ‘천연 영양제’가 됩니다.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조성해,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뿌리의 건강을 위해 땅속 순환을 도우면 나무는 알아서 잘 자랍니다.”
그렇다면 병해충에는 어떻게 대비하는지 궁금해 물으니, 도 대표는 한 번도 병해충으로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비법은 병해충으로 피해를 보기 전, 나무의 저항력을 키워 스스로를 지키게 만드는 것. 나무의 저항력을 키우는 도 대표의 ‘특효 병해충 방지제’는 전복껍데기다. 전복껍데기를 1300℃로 구워 빻은 뒤 이를 용해해 엽면살포하고, 참숯과 피톤치드 원액과 법제 유황, 감식초 등 천연재료로 병해충의 접근을 막고 있다. 
"수확 전, 100송이 정도 포도알에 이쑤시개를 꽂아봅니다. 보편적 농법으로 키워낸 포도라면 금세 무르고 썩겠지만, 이곳의 포도들은 어느새 아물어 그대로 익습니다. 또, 포도를 따서 상온에 1년 동안 보관해도 썩지 않고 건포도처럼 마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믿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우리 포도로 실험을 한 어떤 사람은 실제 포도가 썩지 않고 마르는 것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도 대표는 자신의 농사법을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 철학이 오늘날 포도나무 한 그루에 4500송이가 열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복분자 나무는 보통 사람 허리께까지 키우나, 도 대표는 호르몬 전지법으로 사람 키보다 크게 키운다.
복분자 나무는 보통 사람 허리께까지 키우나, 도 대표는 호르몬 전지법으로 사람 키보다 크게 키운다.

 

신뢰가 만들어낸 마니아층 
판로 걱정 없어

포도와 더불어 유기농 복분자 재배를 시작한 도덕현 대표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러나 그는 일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일반 농법은 매뉴얼이 있지만 유기농은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이 도덕현 대표의 지론이다. 오로지 작물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한결같이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러한 애정은 고스란히 수익으로 실현되고 있다. 연간 20t의 수확량 중 50% 이상이 농장에서 자체 판매된다. 마니아층이 두터워 판로 걱정은커녕 물량이 부족할 수준이다. 도 대표가 생산한 포도는 ‘포도만 100%만 들어간’ 포도즙으로도 생산되고 있는데, 식이요법만으로 병을 치료하는 자연치유협회에서 특히 선호한다고 한다. 포도즙을 희석하면 당장 눈앞에 얼마의 이익금은 더 나겠지만 도 대표는 그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농부의 사명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또, 아직 시작 단계인 유기농 복분자도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현재 시중 복분자는 1kg당 15000~17000원 수준이나 도 대표의 유기농 복분자는 1kg당 25000원 선으로 거래된다. 평균보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500kg 상당의 물량이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다.
“자기가 먹을 것은 다 갖고 태어나는 것이 나무입니다. 농사꾼이 할 일은 오로지 나무가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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