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아는 만큼 농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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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아는 만큼 농사가 산다.
  • 이설희
  • 승인 2020.03.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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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흙 속에는 이름 끝에 상(相, 바탕이라는 뜻)자 돌림의 3형제가 살 수 있다. 흙 알갱이나 유기물같이 딱딱한 바탕을 지닌 고상(固相), 공기의 바탕을 지닌 기상(氣相), 물의 바탕을 지닌 액상(液相)이 그것들이다. 뿌리가 가장 잘 크는 작물에 가장 이상적인 3형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상 : 액상 : 기상, 삼상의 비율은 각각 40 : 30 : 30 이다. 고상은 뿌리를 지탱해주고, 양분 고급을 조절해준다. 기상은 산소를, 액상은 물과 양분을 뿌리에 공급해 준다. 삼상의 비율은 흙의 통기성, 물을 지니는 힘 등의 물리적인 성질을 보일 뿐만 아니라, 양분을 지닐 수 있는 능력과 뿌리의 신장, 그리고 생육, 즉 수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흙은 적당한 공극(틈)이 있어야 한다. 

 

오이 하우스의 노숙자

귀농을 한 A는 논과 밭에 1천여 평의 땅을 사, 하우스를 짓고 첫 작물로 오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하우스 안 오이의 반은 잘 자라고 반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 찾아가보니 하우스 안의 오이는 잎이 노랗고, 심하면 타버려서 자랄 수 있는 형태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렇게 내부 반을 칼로 자른 듯이 다른 모양새로 자라고, 잎의 모양까지 차이를 보이는 현상은 처음 보아 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하우스를 짓기 전 오이가 잘 자라는 곳은 논이었고, 문제가 되는 곳은 비닐하우스가 자리했던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A는 오이를 심기 전 흙을 가꾸기 위해 한 평(3.3㎡)에 유기질비료를 각 1포씩을 넣고 오이를 심었다고 했다.
나는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논 자리였던 곳은 물에 의해 노숙자(전기전도도)들 모두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었고, 하우스 자리에서는 노숙자(전기전도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다  퇴비를 한 평에 한 포대씩 넣었다니 더 큰 문제를 키웠던 것.
사실 요즘의 가축분뇨는 비료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옛날 소나 돼지는 짚이나 구정물로 길렀지만, 요즘은 사료를 먹이니 분뇨가 걸을 수밖에 없다. 옛날 소두엄은 N-P-K 함량이 1-1-1kg/톤이었지만 요즘은 7-7-7kg이나 된다. 무려 7배나 걸어진 것이다. 원인은 비료를 너무 많이 준 곳(하우스 자리)의 노숙자(전기전도도)가 높았던 것이다.

 

토양의 산성화로 인해 안으로 말리고 갈색으로 말라버린 오이 잎들
 

오이 하우스의 방귀 귀신

어느 해 봄, 한 오이 농가로부터 SOS를 받았다. 주인 B는 수십 년간 농사를 지은 농부였다. 그는 잎에 까만 깨 씨 같은 무늬가 보인다며 흑반병인 것 같다고 했다. 찢어지고 망가진 잎에 증류수를 적셔 질산태 질소 측정지를 대보았다. 측정지는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흙을 헤쳐 보니 뿌리는 겉흙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심기 전 어떤 유기질 비료를 주는지 물었더니 올 농사를 더 잘해보려고 구해온 수피(樹皮)에다 닭똥을 버무려서 가을부터 발효를 좀 시켜서 넣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원인이 있었다. 덜 썩은 닭똥에서 나온 방귀 귀신이 장난을 치고 있구나!

오이 하우스의 깡패

C는 28년째 평택시 북쪽에서 오이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었다. C는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오이 재배에 실력이 남달랐는데 최근 들어서 재배가 시원찮지 않다고 연락을 해왔다. 하우스로 찾아가 흙을 진단해보니 토양산도(pH)가 3.9로 떨어져 있었다. 오이 잎은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안으로 말려 있었는데 이런 현상은 아래 잎으로 내려갈수록 더 악화됐고 모양도 많이 뭉그러져 있었다. 심한 경우는 하단 잎들이 가스로 인해 갈색으로 말라 있기까지 했다.
농사만 지었는데 pH가 그렇게 떨어진 이유는 오이가 비료나 양분을 먹고 똥과 오줌으로 깡패를 싸놓았기 때문에 흙이 저절로 산성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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