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아는 만큼 농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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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아는 만큼 농사가 산다.
  • 나성신 기자
  • 승인 2020.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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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지난 주 음성군 금광면에서 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가의 현장을 보고 왔다. 농가 주인은 당일 녹비를 베어서 하우스에 흙에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그곳에서 뜻밖의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다.
필자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농업기업 ‘팜한농’에서 강의를 하며 녹비에 대해 강조해왔지만, 수강생들로부터 별 반응을 얻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농가 주인은 강의에 매년 참석한 분이었고, 그는 지난 3년 동안 녹비를 재배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선생님 강의를 들은 후 녹비작물을 기르며 부대 퇴비도 줄이고, 비료의 양도 반까지 줄였더니 작물 기르기 훨씬 편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완주 선생님.”

 

흙 속의 ‘녹비’는 천사 중의 천사
지난 호 월간 원예를 읽은 독자는 ‘천사’가 무엇인지를 기억할 것이다. 흙에 들어가 천사같이 모든 일을 잘 돕는 것, 바로 완숙된 유기물을 뜻한다.
앞서 말했던 농가에 방문한 그 날은 청보리와 헤어리베치 꽃이 한창 피어 녹비를 흙에 갈아 넣는 적기였다. 농가 주인은 지난해 수박 덩굴을 걷어내고, 그 하우스에 11월 29일 청보리와 헤어리베치 씨를 1000㎡(300평)당 각각 5kg씩 혼파 했다.

그는 10월에 중순 이미 수박 덩굴을 걷어낸 첫 번째 하우스에 정상적으로 파종을 해놓았다. 하지만 바로 옆 하우스는 이보다 한 달 늦은 12월에 가까워 수박을 거두고 파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누구도 이만큼 자라리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청보리 키와 무게를 재보았더니 10월에 뿌려놓은 것은 한 달 뒤인 11월 29일 것보다 10cm나 큰 80cm였고, 생체 수량도 1000㎡(300평)당 1톤이 많은 6.3톤이나 생산되었다.
11월 29일 파종한 하우스의 가장 놀라운 점은, 거름도 주지 않은 맨흙에서 약 4개월 동안 1000㎡(300평)에서 5.3톤의 녹비가 생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양은 지상부만 잰 것이며, 지하부에도 지상부와 같은 양의 뿌리가 있는 것이다. 더해보니 10월 중순경 파종한 녹비는 전체의 무게가 12.6톤, 11월 29일 파종한 것은 10.6톤이 생산된 것. 이 양은 유기물 10톤 이상, 건물로 2톤 이상을 넣은 것과 같다. 어떤 농가가 3년 동안 매년 이만큼의 양을 퇴비로 줄 수 있을까. 게다가 청보리와 헤어리베치 뿌리가 분포했던 30cm까지 토양의 물리성을 개량해 줄 수 있을까?

토양병원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더 놀랄 뿐이다, 질산태질소와 수용성인산을 바닥을 보일 정도로 녹비가 깡그리 먹어 치웠다는 사실. 더구나, 이 녹비 작기(作期)에 비료를 조금도 안 주었으며, 이때만 그런 게 아니고 전(前) 작기인 수박 작기 중에도 시비량은 평소의 반만 주었다. 전 작기였던 지난해 밑거름으로 유기질비료 1톤과 복합비료(15-4-8)를 1000㎡(300평)당 18kg 정도를 주었다.

 

농가가 마지막 단계로 녹비를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토양에 화원하고 있다.
 

선충을 없애고 당도를 높이는 ‘녹비’
녹비로부터 얻는 이득이 이것뿐일까? 병해충, 특히 연작하는 곳에 홍역처럼 따라다니는 선충으로부터 자유롭다면 농가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될까. 실제로 지난해 음성군 금황면의 또 다른 수박 농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도대체 왜 수박이 시들어 죽어 갑니까?”
항의하듯 따지는 농가 주인이 하는 말을 종합해보니, 원인은 연작에서 오는 선충의 발생으로 추정되었다. 이튿날 분석팀장과 함께 현장에 방문했다. 마지막 하우스에서 뿌리를 캐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뿌리는 마치 혹 같은 것이 무수히 달려 있었으며, 잔뿌리는 거의 없었다.

필자는 앞서 말한 ‘이완주식 키워드’에서 유기물을 천사라 말했다. 유기물 중 녹비를 천사 중의 천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어떤 유기질 비료나 잘 완숙된 가축분뇨도 녹비만큼 선충을 없애는 효과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녹비가 토양 중에 있는 양분을 바닥냈고, 독까지 만드니 선충인들 버틸 수 있을까?
녹비가 천사 중의 천사인 또 다른 이유는 당도를 특별히 높인다는 것에 있다. 물론 퇴비를 줘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보이지만 녹비만큼은 아니다. 녹비는 그 뿌리가 30~100cm까지 뻗으며, 평소 흙 속에서 게으름을 부리며 표토에만 머물고 있던 인산을 빨아들인다. 녹비는 전 인산의 80%까지 뿌리에 저장하며 후작인 작물(이 경우는 수박)의 모든 뿌리가 가용성인산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때문에 작물의 당도는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녹비작물을 기르면서 부대 퇴비 및 비료의 양을 반까지 줄였더니
작물 기르기 훨씬 편해졌다는 수박 농가
 

더구나 이 농가의 경우 1000㎡(300평)당 10kg의 종자를 뿌려 건물 2톤의 양을 생산한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10kg의 종자에서 2000kg의 건물을 얻어냈느니, 200배의 이득을 올린 것. 올해에 이만큼의 유기물을 다 소모하지는 못한다. 나머지가 정확하게 몇 kg이 될지 모르지만, 이 양은 고스란히 이 밭에서 부식되어 계속해서 미생물의 번식을 돕고 땅심(地力)을 높이며, 보통의 전기전도에도 작물을 잘 가꿔줄 것이니, 녹비가 진정한 천사가 아니라면, 뭐라 할 것인가!

이뿐만 아니라, 뿌리가 흙 속에서 썩으며 흙을 엉성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만만치 않다. 연작과 염류장해를 막아주는 효과, 비료 절감의 효과, 수박의 당도 향상 등 이 모든 효과는 돈으로 계산하기도 어렵다. 물론 겨울 농한기에 휴경하고 녹비를 재배하는 것도 나쁘지 않미만, 한여름에 수단그라스, 네마장황, 크나프와 같은 여름 녹비를 재배하면서 2~3달 동안 쉬는 방법 또한 좋다. 

※ ‌농가에 관한 더 자세한 자료는 포털에 ‘토양병원 리포트‘ 검색 후 볼 수 있습니다.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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