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병원 원장
천사란 인간 세상에서는 행운을 가져다주거나, 남몰래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부르기도 하는 말이다. 흙에서의 천사도 우리의 뜻과 같은 맥락으로 착한 일을 하는 ‘유기물’을 비유한다. 흙 속에서 천사인 유기물이 하는 역할을 세어 보면 열 손가락만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좋은 역할이란 좋은 역할을 무어든 다 하므로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 그 사례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 유기물의 다양한 역할
천사, 즉 유기물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양분 저장탱크 노릇을 하는 것이다. 다량요소 2가지와 미량요소 9가지 등, 흙에 저장되는 칼리(K), 칼슘(Ca), 마그네슘(Mg) 등 3가지를 빼놓고는 식물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필수적 양분을 저장했다 내어준다. 질소와 인산 2종과 미량원소 7종인 철(Fe), 망간(Mn), 아연(Zn), 구리(Cu). 니켈(Ni), 염소(cl), 붕소(B), 몰리브덴(Mo) 등이 그 예이다. 질소와 인산은 다량요소이기 때문에 중간에 덧거름으로 줄 수 있지만, 미량요소는 1ha당 10kg 미만이라 따로 주다 보면 자칫 과잉될 수 있다. 그렇지만 유기물로 주면 절대로 과잉증상이 나타날 수가 없다.
또한 유기물은 땅심(지력)을 높여준다. 땅심, 즉 지력이란 흙에 뿌리를 박고서 크는데 흙이 얼마나 높은 소출을 오릴 수 있느냐를 좌우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력은 흙의 화학적인 면과 물리적인 면, 그리고 생물적인 특성, 즉 3박자를 모두 개량해 주는 것으로 특히, 흙 알갱이를 홑 알에서 떼 알로 구조를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유기물이 미생물의 밥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이런 일은 유기물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유기물은 과부의 수(양이온 교환 능력)가 우리나라의 흙보다 25배 크기 때문에 양분을 25(250cmolc/kg)배나 많이 지닐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유기물이 많은 흙은 양이온 교환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꺼번에 많은 비료를 넣어줘도 다 수용할 수 있으므로 좀처럼 염류장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유기물이 흙에서 10g/kg 씩 많아질 때마다 처음 2에서 5, 8에서 11로 3ds/m 씩 한계 전기전도도도 함께 올라간다.
유기물은 작물에 물을 공급해 준다. 작물은 살아생전 광합성(이산화탄소+물 → 포도당+ 산소)을 해서 만든 포도당이 원료가 되어 몸을 만든다. 그 때문에 유기물을 흙에 넣어주면 분해되면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각각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 물이야말로 작물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유기물을 충분히 준 흙에서 작물이 훨씬 더 잘 자랄 수 있다.
이 밖에도 유기물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유기농 작물이. 감칠맛이 더 있는 이유가 있다. 유기물에는 각종 원소가 60여 종이나 들어 있다. 작물이 필요로 한 14종의 필수성분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꼭 필요한 23개 성분도 모두 있다. 그러니 유기물이 풍부한 흙에서 자란 작물이 어찌 맛이 나쁠 것이며, 어찌 건강에 해로울 것인가?
◯ 잘 알고 사용해야 하는 유기물
그런데 우리 인간들에게는 훌륭한 천사로 만들어야 할 유기물을 돌연 ‘망나니’로 만드는 재주도 있나 보다. 망나니란 옛날 죄인 중에서 다른 죄수의 목을 쳐서 사형을 시켰던 사람이다. 만일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다 겪고 죽어야 한다는 속설 때문에, 오늘날 못된 짓을 골라 하는 사람을 망나니라고 부른다.
필자는 2015년부터 토양병원을 열고 여러 농가를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귀농하는 농가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 농가들이 가졌던 잦았던 문제는, 심어놓은 작물이 하나같이 누렇게 타서 죽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바로 망나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귀촌하기 전, 우리나라 흙의 성분과 문제점을 숙지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기물을 넉넉히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다 유기질비료를 사서 넣게 된다. 그런데 그 유기질비료가 작물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17년부터 시중에 팔고 있는 유기질비료를 가져다가 가스발생 여부를 알기 위해 꾸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작물이 죽은 농가의 유기물 분석을 해보니 pH가 8.3~9.4로 강알칼리성으로 나타났다. 본래 가축분뇨, 특히 소 분뇨의 pH가 대개 이 수준을 보인다. 싹을 잘 틔웠던 평택에 위치한 어느 농가의 돈분 비료의 경우에는 pH6.1을 보였으며, 2018년에 시험한 유기질비료는 pH6.5, 그리고 최근 시험한 굼벵이 분변토는 pH6.7을 보였다. 보시다시피 싹을 잘 틔운 비료는 pH가 6.0~7.0인 범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기질비료가 작물을 죽이는 경우는 대체로 발효를 중단시킨 미숙 유기질비료를 흙에 넣을 때 발생한다. 덜 끝난 발효가 계속되면서 발생하는 가스가 ‘망나니’ 역할을 한 것이 작물을 죽이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봄 부추 농가가 많은 경남 한 지역에서 20여 농가의 부추가 집단으로 죽어가는 현상이 일어나, 우리 토양병원으로 원인분석을 의뢰하는 요청이 들어왔다.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는 데는 머크(Merck)사에서 판매하는 질산태질소 검정지를 쓰는 것이 편리하다. 우선 피복한 비닐의 안쪽에서부터 측정해 보았더니 질소가스가 벌겋게 나와 있었다. 이 농가들은 지난가을에 화성시의 비료판매업자에게서 가축분뇨 비료를 단체로 구매해서 넣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망나니’였던 것이다.
유기물은 살포 후 적어도 보름~한 달 동안은 망나니가 나오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특히 겨울 동안 하우스 문을 꼭 닫아놓고 하는 농사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 비료를 써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주인은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짐까지 떠안을 수도 있다.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