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아는 만큼 농사가 산다. 천사가 망나니가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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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아는 만큼 농사가 산다. 천사가 망나니가 되는 이유
  • 이설희
  • 승인 202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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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천사란 인간 세상에서는 행운을 가져다주거나, 남몰래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부르기도 하는 말이다. 흙에서의 천사도 우리의 뜻과 같은 맥락으로 착한 일을 하는 ‘유기물’을 비유한다. 흙 속에서 천사인 유기물이 하는 역할을 세어 보면 열 손가락만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좋은 역할이란 좋은 역할을 무어든 다 하므로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 그 사례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유기질비료의 피해를 받고 자라지 못하는 부추 밭의 상태

◯ 유기물의 다양한 역할
천사, 즉 유기물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양분 저장탱크 노릇을 하는 것이다. 다량요소 2가지와 미량요소 9가지 등, 흙에 저장되는 칼리(K), 칼슘(Ca), 마그네슘(Mg) 등 3가지를 빼놓고는 식물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필수적 양분을 저장했다 내어준다. 질소와 인산 2종과 미량원소 7종인 철(Fe), 망간(Mn), 아연(Zn), 구리(Cu). 니켈(Ni), 염소(cl), 붕소(B), 몰리브덴(Mo) 등이 그 예이다. 질소와 인산은 다량요소이기 때문에 중간에 덧거름으로 줄 수 있지만, 미량요소는 1ha당 10kg 미만이라 따로 주다 보면 자칫 과잉될 수 있다. 그렇지만 유기물로 주면 절대로 과잉증상이 나타날 수가 없다.

또한 유기물은 땅심(지력)을 높여준다. 땅심, 즉 지력이란 흙에 뿌리를 박고서 크는데 흙이 얼마나 높은 소출을 오릴 수 있느냐를 좌우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력은 흙의 화학적인 면과 물리적인 면, 그리고 생물적인 특성, 즉 3박자를 모두 개량해 주는 것으로 특히, 흙 알갱이를 홑 알에서 떼 알로 구조를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유기물이 미생물의 밥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이런 일은 유기물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유기물은 과부의 수(양이온 교환 능력)가 우리나라의 흙보다 25배 크기 때문에 양분을 25(250cmolc/kg)배나 많이 지닐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유기물이 많은 흙은 양이온 교환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꺼번에 많은 비료를 넣어줘도 다 수용할 수 있으므로 좀처럼 염류장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유기물이 흙에서 10g/kg 씩 많아질 때마다 처음 2에서 5, 8에서 11로 3ds/m 씩 한계 전기전도도도 함께 올라간다.

유기물은 작물에 물을 공급해 준다. 작물은 살아생전 광합성(이산화탄소+물 → 포도당+ 산소)을 해서 만든 포도당이 원료가 되어 몸을 만든다. 그 때문에 유기물을 흙에 넣어주면 분해되면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각각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 물이야말로 작물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유기물을 충분히 준 흙에서 작물이 훨씬 더 잘 자랄 수 있다.

이 밖에도 유기물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유기농 작물이. 감칠맛이 더 있는 이유가 있다. 유기물에는 각종 원소가 60여 종이나 들어 있다. 작물이 필요로 한 14종의 필수성분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꼭 필요한 23개 성분도 모두 있다. 그러니 유기물이 풍부한 흙에서 자란 작물이 어찌 맛이 나쁠 것이며, 어찌 건강에 해로울 것인가?

 

피복한 비닐의 안쪽에서부터 질소가스가 검출된 것을 검정지로 확인해볼 수 있다. 

◯ 잘 알고 사용해야 하는 유기물
그런데 우리 인간들에게는 훌륭한 천사로 만들어야 할 유기물을 돌연 ‘망나니’로 만드는 재주도 있나 보다. 망나니란 옛날 죄인 중에서 다른 죄수의 목을 쳐서 사형을 시켰던 사람이다. 만일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다 겪고 죽어야 한다는 속설 때문에, 오늘날 못된 짓을 골라 하는 사람을 망나니라고 부른다.
필자는 2015년부터 토양병원을 열고 여러 농가를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귀농하는 농가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 농가들이 가졌던 잦았던 문제는, 심어놓은 작물이 하나같이 누렇게 타서 죽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바로 망나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귀촌하기 전, 우리나라 흙의 성분과 문제점을 숙지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기물을 넉넉히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다 유기질비료를 사서 넣게 된다. 그런데 그 유기질비료가 작물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시판 중인 유기질비료의 가스 발생 여부실험을 위해 2일 동안 비닐로 통기 차단, 가스 발생유무를 검정했다.
​시판 중인 유기질비료의 가스 발생 여부실험을 위해 2일 동안 비닐로 통기 차단, 가스 발생유무를 검정했다.

필자는 2017년부터 시중에 팔고 있는 유기질비료를 가져다가 가스발생 여부를 알기 위해 꾸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작물이 죽은 농가의 유기물 분석을 해보니 pH가 8.3~9.4로 강알칼리성으로 나타났다. 본래 가축분뇨, 특히 소 분뇨의 pH가 대개 이 수준을 보인다. 싹을 잘 틔웠던 평택에 위치한 어느 농가의 돈분 비료의 경우에는 pH6.1을 보였으며, 2018년에 시험한 유기질비료는 pH6.5, 그리고 최근 시험한 굼벵이 분변토는 pH6.7을 보였다. 보시다시피 싹을 잘 틔운 비료는 pH가 6.0~7.0인 범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기질비료가 작물을 죽이는 경우는 대체로 발효를 중단시킨 미숙 유기질비료를 흙에 넣을 때 발생한다. 덜 끝난 발효가 계속되면서 발생하는 가스가 ‘망나니’ 역할을 한 것이 작물을 죽이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봄 부추 농가가 많은 경남 한 지역에서 20여 농가의 부추가 집단으로 죽어가는 현상이 일어나, 우리 토양병원으로 원인분석을 의뢰하는 요청이 들어왔다.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는 데는 머크(Merck)사에서 판매하는 질산태질소 검정지를 쓰는 것이 편리하다. 우선 피복한 비닐의 안쪽에서부터 측정해 보았더니 질소가스가 벌겋게 나와 있었다. 이 농가들은 지난가을에 화성시의 비료판매업자에게서 가축분뇨 비료를 단체로 구매해서 넣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망나니’였던 것이다.

유기물은 살포 후 적어도 보름~한 달 동안은 망나니가 나오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특히 겨울 동안 하우스 문을 꼭 닫아놓고 하는 농사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 비료를 써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주인은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짐까지 떠안을 수도 있다. 

 

[농업 현장과 함께하는 월간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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