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밭에 무슨 비료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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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밭에 무슨 비료를 줄까?
  • 이혁희 국장
  • 승인 2022.06.11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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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는 토끼, 인산은 거북이

친구와 식사를 할 때 친구에게 밥값을 내게 하는 비결은? 구두끈을 천천히 매거나 때 맞춰 화장실에 가면 된다. 어디에 가든돈을 잘 내는 친구의 인기는 단연 톱이지만, 얌치 짓을 반복하는 친구는 왕따를 당한다.

흙의 세계에도 이런 친구들이 있다. 이번엔 ‘친구’ 대신 성분이라는 단어를 써 보자. 마음이 여려 행동을 빨리 하는 성분이 있는가 하면, 구두끈을 만지며 뭉그적거리는 성분도 있다. 행동이 빠른 성분은 빨리 지하수로 흘러 빠지고, 느린 성분은 손실은 적게 일어나지만 작물이 잘 흡수하지 못한다.

내가 잘 아는 토양학자가 비료를 주고 6개월 후에 조사를 해보았다. 가장 멀리까지 달아난 성분은 질소로 무려 76cm인 반면에, 가장 느린 성분은 인산으로 고작 2cm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칼륨은 67cm, 칼슘은 이보다 느려 18cm를 움직였다. 말하자면 질소는 토끼, 인산은 거북이라 할 수 있겠다.

질소비료가 흙 속에서 잘 움직이는 이유는 물에 잘 녹는데다, 음전기를 띤 흙 알갱이에 음이온인 질산태 질소(NO)가 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질산태 질소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흙 속에서 방황하다 지하수를 따라간다.

인산의 경우엔 질소와 정반대로 떨어진 자리에서 1년 동안 고작 4cm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흙에 있는 철과 알루미늄과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료를 수십 년 동안 준 밭에서도 표토 10cm 이내에 인산의 80%가 있다. 장마로 1cm의 흙이 씻겨 내려가면 상당량의 인산을 잃게 된다. 물론 뿌리가 표토의 인산을 빨아먹으려고 뻗는 것이지만 여름에는 덥고 가물고, 겨울에는 로터리로 뿌리를 다 잘라버린다.

인산비료를 밑거름으로 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데 가축 분뇨에 들어 있는 인산은 흙 속에서 매우 잘 움직인다. 유기태 인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른 계분에는 인산이 용과린 20%보다 많은 32%나 들어 있어서 산지를 개간할 때 많이 쓰인다. 산지 개간에는 계분처럼 좋은 인산비료가 없다.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흙 속에 과잉의 질소가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다. 가장 적은 나라 호주는 10아르에 1.7kg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려 24kg으로 14배나 많다. 화학비료와 가축 분뇨를 너무 많이 주기 때문이다. 그럼 토끼(질소)와 거북이 (인산)를 한꺼번에 잡아놓을 수는 없을까? 녹비를 기르면 지하로 흘러 도망가는 질소도, 표토에 있는 인산도 빨아들여 다음 작물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우리 흙, 중증 비만에 걸리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비만’이다. 비만은 칼로리는 많이 섭취하는데 활동량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생긴다. 즉 음식을 섭취한 만큼 움직이지 못해서 오는 현상이다. 비만은 당뇨와 고혈압, 동맥경화와 심장병 등 각종 성인병을 불러온다. 실은 비만 자체보다 이게 더 큰 문제다.

최근에는 흙도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흙의 양이온 교환용량(양분을 지니는 능력)은 세계 곡창지대의 1/5~1/1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비료를 많이 주기 때문에 지하로 새고 농사에서도 큰 문제가 된다. 농촌진흥청은 매년 전국의 논 →시설재배지→밭 과수원을 돌아가면서 흙을 떠다 분석하고 있는데 20년 전부터 비만에 걸린 흙이 많아지고 있다.

3요소가 밭, 하우스, 과수원의 최고 8할까지 과잉으로 축적되어 있다. 논의 3할도 비만이다. 질소는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최고다. 그만큼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0아르에 24kg이나 축적되어 있는데, 이는 가장 적은 호주보다 14배(1.7kg)나 높은 수치다. 이게 바로 우리 흙이 중증 비만에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람에게 비만이 여러 가지 문제를 가져 오는 것처럼 흙의 비만도 다양한 문제의 주범이다. 염류장해는 물론 가스장해, 여러가지 병해충 발생 등에 원인을 제공한다. 더욱 큰 문제는 과잉축적된 질소가 지하로 흘러들어가 지하수를 마시는 사람의 몸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람 몸으로 들어간 질소는 그대로 발암의 원인이 된다. 또 질소는 대부분의 농산물의 질과 저장성을 떨어뜨린다.

흙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량의 화학비료와 가축 분뇨를 해마다 뿌리기 때문이다. 화학비료를 복합비료複合肥料(질소, 인산, 칼륨의 세 요소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을 포함하는 화학비료)로 주면 비만을 더 부추기게 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단비(單肥, 한가지 성분만 있는 비료)가 전체 시비량의 3할은 되었으나 매년 줄어들어 2009년에는 2할 이하로 떨어졌다.

섞기 귀찮다고 복합비료로 주다 보니 더 주어서는 안 되는 인산과 칼리가 계속 더해져 중증 비만을 초래한것이다. 전국의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무료로 토양을 분석하고 시비 처방을 해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처방을 무시한 채 복합비료와 거름기가 높은 가축 분뇨를 준다. 농약이나 비료를 표준량의 2~3배 더 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농업인이 여전히 많은탓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비는 더 들고 예상치도 않은 문제가 여기저기서 튕겨 나와 농사를 그르치게 된다. 흙을 잘 다스리고 비료를 조금만 덜 써도 병이 훨씬 줄어드는데, 우리는 여전히 자살골만 넣고 있는 셈이다.
 

 


글=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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