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에서 오이 농사꾼으로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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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에서 오이 농사꾼으로의 변신
  • 이지우 기자
  • 승인 2022.07.04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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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시 논이골 라송희 대표

30대 초반 워킹맘이었던 라송희 대표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육아를 허투루 하기 싫었던 그는 부모님이 계신 충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농산물을 판매하는 소매점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그는 새로운 삶을 설계해나갔다. 목표는 직장을 다닐 때보다 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미래를 걸어볼만한 비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라송희 대표는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농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았고, 오이가 가능성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후 직접 농사를 하기로 결심했는데, 처음부터 판을 크게 키우진 않았다. 일단 부모님의 땅 300평에서 노지 오이를 시험 삼아 재배했다.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었다. 재배한 오이를 부모님의 소매점에 판매하며 가능성을 엿봤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라 대표는 귀농귀촌 자금 대출을 통해 250평 규모의 온실 5동을 마련했다. 3동에서 오이를 재배하고, 2동은 고추를 심었다. 

30대 초반 워킹맘이었던 라송희 대표는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 충주로 돌아와 오이 재배를 시작했다.
30대 초반 워킹맘이었던 라송희 대표는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 충주로 돌아와 오이 재배를 시작했다.


“오이는 부모님이 하던 작목은 아니었어요. 소매를 하시던 부모님의 일손을 돕다보니 오이가 가능성이 보였죠. 사실 결정은 쉬었지만, 이후에 재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재배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여기 저기 묻고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죠. 또 오이는 손이 정말 많이 가는 품목이에요. 저도 일단 3동에서 오이를 시작했는데, 저 혼자로는 감당이 안 돼 남편이 계속 일을 도왔고, 이제 5년차가 되니까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습니다.”
라송희 대표는 따로 인력을 쓰지 않는다. 3동의 오이 재배에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내고 있다. 부모님과 남편의 조력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주말마다 일손을 거들고 있다. 한창 수확량이 많은 시기라 쉴 틈이 없다.

 

 

청년 농업인에 필요한 것
확실한 비전을 가지는 것

라송희 대표는 오이 5년차 재배를 맞이하면서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3동의 온실에서 연 8천만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이제는 결실을 맺을 때라고 여기고 있다. 향후 피클용 미니오이를 재배해 체험농장으로의 변신도 꾀하고 있는 라대표, 그는 농업을 꿈꾸는 청년에 확실한 비전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업을 시작했지만, 사실 처음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어려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청년농업인이 대출을 받고 그 자금으로 시설을 마련하는데 확실한 방향성이 없으면 그 돈을 엉뚱한 방향으로 쓸 수가 있어요. 저 역시 돌이켜보면 필요한 시설과 아닌 시설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력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의 경험이 필요하고, 이러한 경험 축적은 현장에서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센터 등을 통해서 실무를 익히고, 선도 농가에서 재배와 관련한 경험을 쌓은 후에 본인만의 농장을 설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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