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텃밭에 무슨 비료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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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에 무슨 비료를 줄까?
  • 김예지
  • 승인 2022.10.05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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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 꽃이 피지 않는 이유

 

내가 잘 아는 이웃집 미정 씨는 몇 년 전 난 전문 농장에 가서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한란을 한 분 사 왔다. 그녀는 꽃과 향기가 풍성한 품종이라는 농장주의 말을 믿고 정성껏 가꿨다. 한란은 그녀의 기대를 아는 듯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풍성한 꽃은커녕 촉 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화가 난 그녀는 난 농장으로 달려가 따졌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물도 잘주고, 비료도 기름지게 주었건만 잎만 무성하다면서 왜 꽃이 피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필시 품종이 나쁘기 때문일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농장주가 이렇게 대답했단다.

“바로 그런 원인들 때문에 꽃이 피지 못한 겁니다. 당신이 심은 그 품종은 깊은 산에서 온 난이라 비료를 함부로 주어서는 안됩니다. 물도 아껴야 합니다. 햇빛도 지나치면 안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미정 씨는 농장주의 말대로 비료와 물을 극도로 아껴 난을 길렀다. 그러자 얼마 후 청초하고 향기 높은 꽃이 피어났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모든 식물이 넉넉한 비료(특히 질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소가 식물의 정상적인 기능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산호수, 영산홍, 양란 등 20여 가지의 화초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 나를 실망시킨 화초가 딱 하나 있다. 시크라멘이 그것이다. 시크라멘은 초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꽃이 피는 화초이다. 해마다 뿌리가 커지면서 더 많은 꽃대가 올라왔다. 지난봄에는 늙은 잎이 누렇게 변했다. 이런 증상은 질소가 부족하다는 사인이다. 복합비료를 엷게 타서 2주에 걸쳐 두 번 주었다. 그러자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아차 싶어 계속 물을 주어 비료기를 씻어 주었지만 한 번 벌어진 사고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뿌리는 모양을 유지한 채였지만 캐어서 만져 보니 아깝게도 속은 이미 물러져 있다. 마치 뜨거운 물에 데쳐 놓은 것 같았다. 결국 화분을 엎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구근 화초는 비료를 아주 싫어한다. 이미 알뿌리에 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을 충분히 지니고 있어서 비료에 아주 약하다. 난도 역시 비료에 아주 약한 식물이다.

보통, 비료기가 많은 쪽보다 약간 적은 듯한 쪽이 오히려 작물에게는 좋다. 허나 우리나라는 하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노지조차 비료를 엄청나게 많이 축적하고 있다. 흙에 양분이 지나치면 뿌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뿌리로 들어온 과잉 성분이 균형을 깨뜨려(특히 칼륨) 자람도 더디고 감칠맛도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눈으로 보아서만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성분이 많고 적은지 직접 분석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 미리미리 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흙도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미리 토양진단을 받는 게 좋다. 아니, 토양진단은 농사의 필요조건이다.

흐릴 때 추울 때, 수용성 인산이 쓸 만하다
엄동은 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업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계절이다. 폭설은 말할 것도 없고, 날씨가 흐리거나 자칫 온도가 조금만 떨어지거나 흙에서 가스가 나오면 몇 달 동안의 정성과 투자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저온과 흐린 날에 좋은 비료는 없을까?

흙의 온도가 떨어지면 양분의 흡수력도 덩달아 떨어진다. 낮은 온도에서는 물 분자 자체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뿌리의 호흡이 떨어져 양분 흡수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수 없고, 뿌리세포의 원형질 유동성이 감소하며, 지상으로의 양분 이동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먼저 흡수가 나빠지는 성분이 인산이다. 질소는 9℃, 마그네슘은 12℃, 칼륨은 13℃, 칼슘은 14℃로 온도가 떨어질 때까지 흡수가 일어나지만, 인산은 16℃가 되면 흡수가 정지된다. 말하자면 질소가 우크라이나 사람 같다면, 인산은 더운 나라인 에티오피아 사람 같다.

지온이 21℃에서 흡수율이 100% 라 치면 16℃로 떨어지면 인의 흡수율은 50% 이하로 떨어진다. 겨울철부터 봄까지 수확하는 딸기 재배에서 저온은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 온다. 지온이 12℃ 이하로 떨어지면 인의 흡수가 매우 제한되어 잎의 색은 자줏빛을 띄고 수확량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렇게 장해를 받으면 회복하는 데 많은 시일이 걸린다. 그래서 예방책이 필요하다.

식물은 대체로 물에 녹아 있는 상태로 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물 분자의 활동이 떨어지면 자연 양분 흡수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산이 가장 크게 떨어지는 이유는 다른 성분보다 저온에서 용해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탓이다.

한편 흐리거나 온도가 떨어지면 광합성도 덩달아 떨어진다. 이때 인산이 체내에 충분하지 않으면 이런 환경의 피해를 더 크게 받아 수량도 더 많이 떨어진다. 반대로 인산이 충분한 경우에는 피해를 상당량 줄일 수 있다.

왜 인산의 효과는 저온이나 흐린 날에 더 클까? 양분은 식물 체내로 들어갈 때 반드시 세포막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세포막에는 양분이 드나드는 문이 있다. 문은 인지질이 주성분이다. 인지질 성분은 이름처럼 인과 지질로 된 것이다. 지질은 저온에서는 쉽게 굳어지기 때문에 온도가 떨어지면 문이 뻑뻑해진다. 다시 말하자면 여닫이가 뻣뻣하게 되어 양분의 통과성이 떨어진다. 이 문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산이다. 저온에서도 문이 잘 여닫히려면 인산이 충분해야 한다. 온도가 떨어지면 “인산의 용해도 저하 - 인산흡수량 저하 - 세포막 인지질 부족 - 양분 통과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글=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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