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성은 흙과 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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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성은 흙과 친하다.
  • 월간원예
  • 승인 2022.11.2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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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동네 노인께 여쭈어 보세요

“스승님, 오곡 가꾸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늙은 농부보다 모른다.”


제자 번지와 공자가 나눈 대화이다. 농사를 지으려는 제자는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잘 지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스승은 자신은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동네에서 제일 농사를 잘 짓는 노인에게 엎드려 배우라고 충고한다.

2010년 9월 초순,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 허리를 관통하기 이틀 전, 농협대학 강사 대기실에서 우연히 충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윤경환 씨(65)를 만났다. 그 분은 “올해는 물 때문에 흉년 들거유”라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당국에서는 올해도 평년작은 될 거라던데……….”


그 분을 만나고 나서 며칠이 안 되어 태풍 곤파스가 오고, 이어서 추석까지 거의 한 달 가깝게 날이 궂고 비가 왔다. 하도 신기해서 전화를 걸어서 언제 그걸 알았냐니까 “연초가 되면 무얼아는 노인들과 함께 따져서 안다. 2월에 이미 NGO 단체에서 발간하는 한 잡지에 기고를 했다”고 말한다. 나는 당장 그 단체에 전화를 걸어서 기사를 입수했다.

2010년 2월1일자로 발간된 자료에는 ‘유기자연농법의 원조를 찾아서’라는 제목 하에 ‘천기누설 농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내용을 압축하면 60년 전 경인년에도 흉년이었고 올해도 흉년의 해운이다. 평년보다 비가 많고 지난해보다 더 많이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료를 나눠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체로 7년 주기로 오는 흉년에는 아무리 농사를 잘 짓는 사람도 어쩔 수 없다며, “올 같은 경우 팥 농사보다는 콩 농사가 유리할거유”라고 말한다. 어째서 그러냐고 재차 물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콩 전문가인 김석동 박사(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장)에게 물어 보았다.

“팥꽃은 늦장마 때 피는 시기라 흉년이 들고, 콩은 체내의 수분 이동이 다른 작물보다 워낙 느려서 꼬투리에 맺히는 물이 콩알을 살찌워 풍년이 든다.”

노인은 오래 쌓은 농사 경험과 전래해 오는 역학을 통해 현대과학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점친 것이다. 우리 농촌에는 어디나 그런 노인들이 있다. 때문에 젊은 농부는 노인에게 여쭈어 보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흙이 무섭다고?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면 위험하지요?”라고 묻는 엄마들이 많다. 몇 년 전만 해도 “위험하지요?”가 아니라 “더럽지요?”라고 물었다. 놀이터의 오염된 흙이 몇 번 매스컴에서 보도되자 젊은 엄마들은 흙을 만지면 곧장 병에 걸릴 것처럼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다.

왜 흙은 더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자라던 50년대만 해도 흙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흙은 우리의 놀이터였고, 그래서 손톱에는 늘 흙 때가 끼어 있었다. 넘어지거나 다쳐 피가 나면 황토가루를 뿌려 지혈했고, 가축의 속병에도 황토를 먹였고 쇠약해지면 외양간에 황토를 뿌려 주었다.

흙이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인분을 밭에 줬고, 흙을 주무른 농부가 씻지도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기생충에 감염되는 경로를 영화로 보여 줬다. 그때는 국민의 대부분이 회충에 감염돼 있었고, 인분이 아니면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최근 들어 놀이터에서 흙장난한 아이들이 개의 기생충이나 여러 가지 병에 전염되었다는 보도가 자주 올라온다. 그러니 이런 내용을 본 엄마들은 기겁해서 모든 흙이 더럽고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도시화도 한몫을 했다. 흙과 멀어진 생활이 자연스럽게 그런 선입견을 주었다.

그러나 원래의 흙은 깨끗하다. 아무리 더러운 것도 흙의 자정작용이 깨끗하게 회복시켜 준다. 심지어는 약으로까지 쓰였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아프리카는 물론 남미와 유럽에서조차 흙을 약으로 썼다. 20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히포크라테스도 흙 먹는 일을 기록했을 정도다.

전 세계의 흙을 먹는 풍습을 기록한 480편의 글을 미국의 코대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흙을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흙 속의 철분 아연칼슘과 같은 미네랄을 섭취하기 위해서, 체내의 기생충이나 병원균 감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때 배고파서 흙을 먹은 것만은 아니었다. 코넬대 세라 영Young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음식물이 풍부한 시대에도 흙 먹는 풍습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많은 양을 먹은 게 아니라 아주 적은 양이었다. 주로 기생충이나 병원균에 약한 임신 초기 여성이나 어린이가 먹었다. 이렇다 할 영양제도 약도 없었던 시절, 흙은 미네랄을 보충하고 구충과 병원균을 퇴치하는 데 쓸모가 있었다.

공해에 노출된 흙은 해롭다. 그러나 산 속 낙엽이 쌓인 흙은 안전은 물론 건강에도 좋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에게 실컷 흙장난을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아이의 건강과 정서발달에 도움이 된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를 너무 과보호하면서 키우는 것 같다.


글=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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