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흙은 왜 화분에 쓰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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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흙은 왜 화분에 쓰면 안 되나?
  • 월간원예
  • 승인 2023.02.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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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를 화분에서 몇 년 키우다 보면 점점 오그라들고 비실비실 죽어간다. 화분에 있는 양분이 다 소진된 데다 화초가 싼 배설물로 강산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흙은 처음처럼 그대로인데 어째서 양분이 소진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새 흙으로 간답시고 화분을 뒤엎고 밭 흙으로 채운다. 처음에는 살아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도 빈약하다. 왜 그럴까? 그 흙을 가져온 밭에서는 작물은 잘만 자라고 있는데 말이다.

작물이 잘 자라려면 흙에 양분과 함께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에 저장된 공기와 물이 끊임없이 뿌리에 공급된다. 처음 화분에는 양분과 공간이 다 갖춰져 있어서 화초는 흙에 있는 양분을 빨아들여 해마다 새 잎도 나왔고 꽃도 피웠다. 그러는 동안에 잎은 하나 둘 늙어서 떨어졌고, 꽃도 져버렸다. 잎과 꽃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은 그 속에 있던 양분도 함께 화분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말이다. 그런 과정이 되풀이 되다 보니 흙 속에 있던 양분은 점점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관찰력이 깊은 사람이라면 화분을 엎을 때 화분흙이 밭 흙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화분의 흙은 검은 색, 유기물을 상당량 함유하고 있다. 화분의 흙과 밭 흙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그 점, 즉 유기물이 많다는 것이다.
밭 흙으로 분갈이를 하면 양분은 다소 화분에 공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밭 흙은 치밀해서 물과 공기가 몸담을 공간이 없다. 그래서 물을 주어도 단 며칠 사이에 다 말라버리고 만다. 공기가 적어서 뿌리가 숨 쉬기가 어렵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화초가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유기물은 엉성해서 화분에서 공간을 확보해 주고 거기에 물과 공기를 저장해 준다. 유기물은 흙의 20배 이상 양분을 저장할 수 있고 물도 수십 배 더 저장한다. 이런 유기물이 밭 흙에는 고작해야 5% 정도지만 화분에는 40%까지 들어 있다.

그럼 왜 밭에서는 작물이 잘 자랄까? 밭은 화분과 달리 뿌리가 뻗고 싶은 만큼 뻗을 수 있다. 물이 모자라면 지하에서 모세관을 통해 끊임없이 올라와 공급해 준다. 그래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다.
화분흙을 만들려면 반드시 부피의 4할은 부엽토나 퇴비를 흙과 혼합해서 넣어야 한다. 분갈이가 귀찮다면 종합 비료를 희석하거나 퇴비 우린 물을 자주 준다. 그럼 작은 화분 안에서도 화초가 왕성하게 자라고 꽃도 잘 필 수 있다.

지렁이분변토만으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몇 해 전, 아프리카 최북단에 있는 튀니지에 가서 농업기술을 지도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남한 면적의 1.6배나 되지만 인구는 1/5이니 노는 땅이 많다. 방목하는 들에 나가 보면 지렁이 똥이 온통 표토를 다 덮고 있다. 흙이 비옥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서 참 부러웠다.
지렁이 똥, 유식하게 말하자면 ‘분변토인데 유기농이나 친환경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유기농의 메카로 알려진 쿠바는 유기농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 70년 전 미국과 무역이 단절되자 비료 수입이 중단됐다. 그때부터 자구책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유기농업에서핵심인 유기물을 그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일단 지렁이에게 먹여서 분변토를 얻어 그것으로 농사를 지었다.
나는 쿠바의 생태농업 지도자인 프네스 페르난도 박사를 인천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내민 사진에서 분변토로 키운 싱싱한 채소와 검은 흙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학비료 없이 분변토만으로도 농사가 가능할까? 가능하다. 실제로 분변토의 양분 함량은 보잘 것이 없다. 축분을 먹여서 얻은 분변토의 3요소 함량은 2.27-2.73-0.38%에 불과하다. 보통분변토 시비량은 퇴비와 같은 양으로 주기 때문에 10아르에 1~2t을 준다. 따라서 분변토 1t에는 3요소가 22.7-273-3.8kg이 들어있다. 칼리가 좀 부족하지만 다른 성분은 오히려 많은 편에 속한다. 그래도 화학성은 충분하다.

분변토는 매우 안정적이며 유효한 양분이다. 질소의 경우, 퇴비나 화학비료에는 암모늄태나 유기태로 있어서 작물에 이용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분변토에는 작물이 바로 쓸 수 있는 질산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흙에서는 흙의 산도가 잘 변해서 산성에서는 아질산가스로, 알칼리에서는 암모니아가스로 도망가서 질소의 이용률이 떨어진다. 허나 분변토는 산도가 딱 7로 정해져 있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즉 질소의 손실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반 농업에서도 분변토를 주면 화학비료 양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분변토의 화학성은 진하 때문에 그것만으로 상토를 쓰면 묘가 나오다 타죽기 쉽다. 따라서 분변토 2에 흙 8, 척박한 원료의 분변토는 5:5로 섞어서 만들어야 안전하다. 분변토는 흙에 비해 양분을 보존하는 능력이 1~2배, 물은 1배, 공간은 0.6배 정도 늘어난다.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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