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사과 3세대를 준비하는 2세대 청년농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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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사과 3세대를 준비하는 2세대 청년농부들
  • 정기석
  • 승인 2023.04.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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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 장수신농영농조합법인 전대호 대표

 

장수신농영농조합법인은 2009년 10월에 설립됐다. 올해로 사업을 시작한 지 14년 차에 접어든다. 하지만 그 14년의 시간 만으로 이 조합의 역사를 충분히 설명하는 건 적절치 않다. 사업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조합의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30년 전인 1992년까지는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의 장수사과를 탄생시킨 장본인, 고(故) 송재득 선생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다.

 

송선생은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이사 출신으로 1987년 사과농사 제자 5명과 사과농사를 짓기 위해 장수군에 터를 잡았다.  1992년에 장수군 광역사과작목반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5년에 장수사과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장수사과영농조합은 장수사과원예농업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바로 이 장수사과영농조합법인의 구성원들이 이른바 장수사과 1세대로서 오늘날 장수사과의 토대를 닦은 선구자들인 셈이다. 장수신농영농조합법인의 전대호 대표(47세)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바로 그 1세대들의 자녀인 청년농부들로서 장수사과 2세대로 불린다. 그러니까, 송 선생이나 장수사과영농조합의 장수사과 1세대를 이야기하지 않고, 장수신농영농조합법인을 바로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쓰레기가 아닌 사과를 파는 청년농부들 
일단 조합의 상호부터 심상치 않다. ‘신농(神農)’은 중국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농업, 의약, 약초의 신이 아니던가. 
“조합의 이름인 신농에서 ‘신’은 세 가지 의미로 풀이할 수 있어요. 전통과 새 시대의 농법을 접목하여 농사를 짓자는 의미의 새롭다 신(新), 귀신처럼 농사를 잘 짓자는 의미의 귀신 신(神),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자는 뜻의 믿을 신(信). 우리가 소비자들에게, 우리는 사과를 팔지 쓰레기를 팔지 않는다고 늘 강조합니다. 바로 신농이라는 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사과 한 알로 바뀌는 세상을 꿈꾸는 청년농부들이 조합에 모여 있으니까요.” 

장수신농영농조합법인 전대호 대표
장수신농영농조합법인 전대호 대표

 

전 대표의 부모님은 경기 이천시에서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사과나무 전정을 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다 장수를 사과나무 적지로 판단, 아예 이주를 단행했다. 자연스레 장수사과영농조합법인에 장수사과 1세대로 참여하고.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전 대표도 어쩌면 당연히 사과농사라는 가업을 이어야겠다고 결심, 충북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사과농사에 뛰어들었다. 
조합은 지난해 참여농가 11 가구, 총 계약재배 면적 20ha(6만 500평)의 규모로 매출액 32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성장한 주요 비결은 장수사과 농업의 적정한 입지, 농법의 진정성과 차별성,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마케팅 전략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장수 사과는 국내 전체시장의 3%도 넘지 않아요. 다만 장수사과의의 주력품종인 홍로만큼은 한때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특화되어 있어요. 홍로는 단맛이 강하고 신맛은 적은 편인데 사과의 대목철인 추석 시기에 좋은 사과를 생산하려면 8월~9월에 높은 일교차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에요. 낮에 만들어진 전분이 밤에 과당으로 변해야 하니까요. 우리 조합의 농장들은 거의 해발 500m 이상 고랭지에 자리 잡고 있어 일교차가 10℃ 이상 날 정도죠. 그러나 장수사과가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거죠.” 
신농의 조합원들은 농사를 쉽게 지으려 하지 않는다. 농사를 쉽게 지으면 좋은 사과를 생산할 수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일단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고 제초제나 착색제 적과제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화학비료는 쓰지 않고 유박과 친환경 퇴비만을 고집한다. 조합의 이름에서 이미 느낄 수 있듯이 농사를 짓는 자세와 철학부터 철저한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는 목초액과 설탕 등을 자가 제조해서 살포하고 있어요. 수고스럽더라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영양제는 성분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GAP인증과 저탄소인증, 전라북도 도지사 인증도 받았어요. 어떤 농가에서는 홍로의 수확시기를 앞당기려고 호르몬제를 투입하기도 한다고 해요. 그건 현실적으로 사과 값은 오르지 않는데 인건비, 자재비 등 경비는 늘어나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쉽게 농사를 지으려는 자구책이겠죠. 하지만 사과는 사람이 먹는 먹거리예요. 농부의 정직함과 땀이 묻어있지 않은 사과는 먹거리가 아니라 상품이 아니라 쓰레기 아닌가요.”

장수사과 농장 전경
장수사과 농장 전경

 

사과가 아닌 예술을 파는 청년농부들 
농사를 정직하게 잘 지을 수 있다고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농부의 진심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 농장마다 결국 판매, 유통, 홍보 등 마케팅의 난관과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허다한 게 우리 농업 현장의 안타까운 실정이다. 조합은 2017년 농촌진흥청의 기술보급 평가회에서 전국 최고품질 농산물 생산단지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연간 600t 규모의 사과를 시장에 유통하는 수준이다. 그런 조합의 유통전략, 마케팅전략을 다른 농가들이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5년에 크레아팜(creafarm)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creative’와 ‘farm’을 결합한 조어죠. 대를 이어 농사짓는 장수군 젊은 농부들을 상징하는 의미로. 크레아팜이라는 브랜드에 ‘사과가 예술이다’는 슬로건을 붙여 프리미엄 사과를 판매하고 있어요. 주로 명절 선물세트용으로 금융권을 주력 시장으로 삼고 직거래 판매하고 있는데 매출의 40% 정도를 점유하고 있어요. 우리 농부들은 농사짓는 데 전념하고 유통은 유통전문가인 지인에게 외주를 맡겨서 하고 있어요. 농업인으로서는 그게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고랭지 장수사과 브랜드 패키지 
크레아팜 브랜드 패키지  

 

조합의 매출은 크레아팜 직거래 40%, 남원원예농업협동조합을 통한 서울시 학교급식, 영양플러스사업 연계, 퓌레 가공용 조각사과 등 공공급식 납품 30%, 홍콩·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수출 10%, 우체국 등 온라인 쇼핑몰 20% 정도로 구성된다. 또 법적 조합원이 아니라도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지역의 사과농가들과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공동 직거래 판매 등 협력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직거래, 해외로는 수출 물량이 더 늘어났으면 해요. 그러자면 6차 산업, 향토자원산업화 등 정부의 지원사업에도 적극 참여해서 사과가공품도 새로 개발하고 캠핑장 등 체험프로그램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2017년부터 시작한 수출은 지난해 3억 원 수준이었는데 장수식품클러스터사업단과 협약해서 몽골 방글라데시 등으로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노력도 하고 있어요.” 
조합은 장수농촌융복합사업지원사업단과 사과피자, 사과즙 등 가공체험 프로그램도 협업할 예정이다. 온라인 농사게임업회사 ‘레알팜’과는 적립포인트를 사과현물로 주는 이벤트도, 온라인직거래장터 등도 제휴한다. 올해 전라북도 고향기부제 장수사과 납품업체로 선정된 것도 의미가 있다. 
어느덧 중년에 이른 조합의 장수사과 2세대 청년농부들은 지금 장수사과 3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마침 최근 한 조합원의 자녀가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제3세대로 청년농부로서 조합에 참여했다. 장수사과 2세대 전 대표의 장수사과 3세대 미래를 위한 구상과 고민이 많고 깊다. 

 

월간원예 202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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