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토양 개량, ‘식은 죽 먹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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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토양 개량, ‘식은 죽 먹기’ 아니다
  • 이상희 기자
  • 승인 2023.05.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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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흙은 강원도 석회암 지대를 빼놓고는 대부분 산도 5.4 내외 산성토양이다. 흙 원료가 산성암인 화강암인데다, 여름장마 때 한꺼번에 엄청나게 내리는 비가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알칼리 성분을 빼앗아 가고 대신에 수소이온을 그 자리를 박아놓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물이 싸는 똥오줌이 모두 수소이온이기 때문에 산성일 수밖에 없다.

산성인 흙을 개량하는 방법으로 석회를 주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농업기술센터에서 주라는 양의 석회를 주었는데도 산도가 별로 올라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일까? 흙 알갱이 속에는 아주 많은 수소이온이 박혀 있다. 마치 다람쥐 굴에서 도토리를 꺼내는 것처럼, 중화시켜도 또다시 나오곤 한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종기가 났다고 하자. 고약을 붙여서 고름을 뺄 경우 단번에 다 빠지지 않는다. 몇 번 반복해야 다 빠지는 것처럼 여자인 흙 알갱이)에 붙어 있는 남자인 수소(+)를 다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꺼번에 중화시키기가 어렵다.

해서 매년 농업기술센터에서 석회소요량을 측정해서 석회를 주어야 한다. 종전에 석회는 3~4년에 한 번 씩 주면 된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생산되는 석회의 양을 전국에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서 정한 것뿐이다. 실제로 흙을 잘 가꾸려면 매년 석회소요량을 재고 거기에 맞춰서 매년 석회를 주어야 한다. 하우스 농사를 지을 때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산도를 측정해서 pH를 6~7로 맞춰야 한다.

우리 흙 중증 비만 두엄도 한몫한다
지구상에 한국만큼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 70년대만 해도 하루 세 때 끼니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는 소위 ‘부자병’이라는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 등과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드물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소득이 높아지고 먹을 것이 흔해지자 많이 먹게 되고, 바빠서 덜 걷고 덜 움직이면서 부쩍 비만과 함께 이런 병들이 늘어났다.

70년대 비료공장이 많이 건설되어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정부보조로 값이 싸지자 마구 뿌리다 보니 드디어 90년대부터는 흙도 비만이 오기 시작했다.

그전만 해도 비료가 귀하고 비싸서 장날에는 소전에 나가서 소똥과 장거리에 떨어진 개똥을 담아오곤 했다. 심지어는 출타했다가도 용변은 꼭 집에 달려와서 해결하기까지 했다.
소나 돼지도 풀과 구정물로 키워서 얻는 두엄이라는 것이, 사료로 키운 오늘날의 가축 분뇨에 비하면 비료 면에서 하늘과 땅 차를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람같이 흙도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흙은 양분을 지니는 능력, 즉 양이온 교환용량이 세계 곡창지대의 1/5~1/1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비료를 많이 주기 때문에 지하로 새고 농사에도 큰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복숭아는 다른 과수와 달리 흙이 비옥하면 헛가지만 자라고 과실은 잘 안 열리고, 열려도 당도가 떨어진다. 실제로 이런 복숭아 과수원이 적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전국의 시설재배지→밭→과수원을 돌아가면서 매년 주기적으로 흙을 떠다 분석하고 있는데 20년 전부터 비만에 걸린 흙이 늘어나고 있다. 최고 8할의 밭 하우스, 과수원에서 3요소가 과잉으로 축적되어 있다. 논의 3할도 비만이다. 질소는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최고로 축적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0아르에 24kg이나 축적되어 있는데, 이는 가장 적은 호주(1.7kg)보다 14배나 높다. 이게 바로 우리 흙이 중증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 논밭은 아닐 거야”라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토양 분석을 받아 보았는가? 해 보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에게 비만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흙의 비만도 염류장해와 가스장해, 여러 가지 병해충의 발생 등을 불러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과잉의 질소는 지하로 흘러들어가 지하수를 마시는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발암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질소가 많은 농산물은 질과 저장성이 떨어진다.

흙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량으로 화학비료와 가축 분뇨를 매년 반복적으로 주기 때문이다. 우분뇨의 경우 볏짚과 풀만 먹이던 시절에는 총 성분량은 3% 내외, 화학비료같이 시비 당년에 효과를 보이는 성분량은 1% (칼리는 4%에 불과했다. 그러나 곡물을 사료로 쓰기 시작하고 나서는 총 성분량은 7%, 유효 성분량은 2-4-7%로 높아졌다. 계분은 3요소가 무려 12-22-15%나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가축 분뇨도 함부로 시비해서는 안 된다.

복합비료로 주면 비만을 더 부추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단비가 전체 시비량의 3할은 되었으나 매년 줄어들어 2009년에는 2할 이하로 떨어졌다. 섞기 귀찮다고 복합비료로 주다 보니 더 주어서는 안 되는 인산과 칼리가 계속 더해져 중증 비만이 안될 수가 없다.

전국의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무료로 토양을 분석하고 시비 처방을 해 주고 있는데 처방도 무시한 채 복합비료와 거름기가 높은 가축 분뇨를 준다. 농약이나 비료를 표준량의 2~3배 더 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농업인이 여전히 많다. 그러다 보니 생산비는 더 들고 예상치도 않은 문제가 튕겨 나와 농사를 그르치고 만다. 흙을 잘 다스리고 비료를 조금만 덜 써도 병이 훨씬 줄어드는 데 자살골만 넣고 있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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