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속에는 무엇이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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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는 무엇이 살까?
  • 이상희 기자
  • 승인 2023.05.3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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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파 보면 개미, 지렁이, 땅강아지, 또 이름 모를 딱정벌레들이 황급히 도망친다. 볼 수는 없지만 돌아다닌 흔적으로 보아 두더지도 살고 있다.

이들이 도망치고 나면 남아 있는 것은 흙뿐이다.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흙밖에 안 보인다. 흙덩이를 물이 담긴 유리컵에 풀어 본다. 흙탕물이 일고 모래 알갱이가 가라앉고, 낙엽이 둥둥 뜬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흙 속에 더 이상 살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다.

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엄청난 생명들을 볼 수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작아서 우리는 그것들을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흙 알갱이에 기대서 사는 생명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마치 흙 자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또 이들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고 중요해서 만일 이것들이 없다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흙 속 생물 없으면 식물은 굶어 죽는다
1g의 흙(찻숟갈로 두 술쯤 되는 분량)에는 모래알갱이가 6백만 개, 또는 점토(모래보다 작은 0.002mm 이하 알갱이)가 9천억 개나 있다. 이들 알갱이 사이와 속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수적으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세균(박테리아)인데 흙 1g에 1700만 마리, 비옥한 흙에서는 10억 마리까지도 산다. 무게로 따지면 1ha에 2t에 육박한다. 또 1ha에 사는 곰팡이 균사의 길이를 다 합치면 지구에서 달까지 850번 왕복하는 거리에 맞먹을 정도다. 총 생물의 무게는 7t이 넘는데 그중에 곰팡이가 70~75%, 세균이 20~25%, 그리고 진드기와 같은 동물이 5%를 차지한다.

왜 농사를 짓는 우리가 흙 속의 미생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나? 만일 미생물이 전혀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낙엽이 썩지 않고 쌓이기 때문에 식물들은 제 낙엽에 묻혀 죽고 만다. 낙엽이 썩지 못하면 양분의 순환이 끊긴다. 양분이란 양분은 낙엽 속에 갇혀 있어서 식물은 굶어 죽고 만다. 미생물은 낙엽을 분해해서 식물이 먹을 수 있는 꼴로 만들어 준다. 동시에 양분의 형태도 변형시켜 흡수가 가능한 꼴로 바꿔 준다.

예를 들면 질소비료로 요소를 줄 경우, 요소 속의 아민태(NHz)는 식물이 바로 먹지 못한다. 세균은 아민을 질산태(NO)와 암모늄태(NH4)로 변화시켜 준다. 따라서 미생물이 없다면 질소를 먹을 수가 없어서 크지 못한다. 인산비료를 주면 인산이 철과 결합해서 식물이 먹을 수 없는 꼴이 되는데, 이것을 녹여서 먹을 수 있는 꼴로 바꿔 주는 것도 미생물이 해 준다.

어떤 미생물은 질소 공장을 돌려서 식물에게 주고, 어떤 미생물은 뿌리를 대신해서 물과 각종 양분을 흡수해서 식물에게 준다. 이렇게 미생물이 우리에게 큰일을 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잘만 하면 농사에 보탬이 크다.

물론 생물이 다 예쁜 짓만 하는 건 아니다. 묘를 하루아침에 전멸시키는 모잘록병, 고추농사를 망치는 역병, 질소를 공기 중으로 내뱉는 탈질세균, 뿌리를 공격해서 폐농시키는 선충 등도 있다.

흙 속 미생물, 식물에게 양분 공급해
코스타리카에 간 미국의 나무 전문가가 아름다운 소나무에 반했다. 그는 당장 새끼 소나무 몇 십 그루를 가져다 심었다. 기대와는 달리 잘 안 크거나 죽어버렸다. 부랴부랴 그 소나무가 자라던 곳의 흙을 파다 뿌리에 뿌려 주었다. 그러자 싱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고향의 흙이 소나무의 향수를 달래 준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의 답변은 “아니올시다”였다.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미국 세관 통관을 위해 뿌리를 깨끗이 씻고 살균제까지 뿌리는 과정에서 병균은 물론 결정적으로 소나무를 살리는 균근균(mycorrhiza) 조차 다 죽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만큼 무수한 미생물이 흙 속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더러는 병을 일으켜 우리를 괴롭히지만 해를 끼치는 것은 일부이고 유익한 일을 더 많이 한다.

곰팡이는 사는 동안 진득진득한 진을 내서 흙 알갱이를 뭉쳐준다. 홑알로 있는 흙 알갱이를 떼알로 만들어 주는 본드 역할을 하는데, 이렇게 떼알이 되면 뿌리에게 여간 유익한 게 아니다. 공기도 잘 통하고, 물도 많이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박테리아 중에는 흙 속에 홀로 살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주는 것도 있다. 아조터박터Azotobacter라고 하는 이 세균은 ha당 연간 최고 60kg의 질소를 만들어 흙 속에 남겨놓는다. 콩과의 뿌리에 붙어사는 뿌리혹박테리아는 이보다 배나 많은 질소를 고정한다. 헤어리베치를 녹비로 가꾸면 120kg의 질소를 흙 속에 고정시킨다.

나무나 숲을 베고 밭을 만들면 몇 가지의 작물만 들어선다. 작물이 들어서면 유기물의 종류나 양이 줄면서 미생물들도 단순해지고 수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흙이 크게 바뀐다. 옥수수만 심으면 옥수수를 좋아하는 미생물만 판을 친다. 갑자기 어떤 병이 돌면 그 병균을 대적할 수 있는 미생물이 없기 때문에 전멸한다. 고추의 역병은 이런 환경 파괴에서 오는 결과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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