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은 흙의 청소부이자 비료 공장이다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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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은 흙의 청소부이자 비료 공장이다Ⅰ
  • 이상희 기자
  • 승인 2023.06.30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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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으로 개간하기 전, 숲이었던 그 자리에는 수많은 종류의 풀과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흙 속의 생물 수는 기후나 식물의 종류, 흙의 성질 등에 따라 지배된다. 그 종류나 수는 초지보다는 삼림에 많고, 무게로 따지면 삼림보다 초지에 많다.

개간을 해서 경지로 쓰면 유기물은 무게와 종류가 현저히 줄어든다. 흙 중의 무게로 따졌을 때 ‘유기물부식(유기물이 분해되어 생긴 것임): 미생물 동물’의 비율은 대략 1000:100:10:1이다. 즉 흙에 유기물이 1000g 있으면 미생물은 10g이 살고, 유기물이 2000g 있으면 미생물은 20g이 산다. 유기물이 미생물의 먹이이기 때문에 유기물의 양에 따라 미생물이 많고 적음이 달려 있다.

식물은 태양의 에너지, 그리고 공기와 물을 이용해 광합성을 해서 탄수화물을 생산한다. 식물들은 수명이 다한 낡은 생산 공장, 잎을 끊임없이 떨어뜨리고 새잎을 만든다. 떨어진 잎은 땅 위에 쌓인다. 낙엽이 떨어지면 노래기와 쥐며느리가 덤벼서 최고 낙엽의 90%까지 먹어치운다.
흙 속에 살고 있는 지렁이도 가세해서 낙엽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배설물과 낙엽 조각은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미생물은 유기물을 먹으면서 유기물 속에 갇혀있던 양분을 다 풀어 준다. 이게 바로 양분이 되어 뿌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남은 것이 ‘부식’이다. 그래서 유기물의 10%만 부식으로 흙에 남게 된다.

부식은 반드시 흙 알갱이와 붙어야만 수백 년 동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일 땅 표면에 내깔려 두어서 흙 알갱이와 접촉하지 못하면 공기 중으로 분해되어 날아가고 만다. 그래서 퇴비를 주면 반드시 갈아엎어 주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생물들은 낙엽이 아니면 살 수 없다. 이들 흙 속 생물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렁이, 흙 개량하는 땅속 신사
고대 이집트에서는 지렁이를 흙을 비옥하게 해주는 ‘신의 사자’로 대접했다. 지렁이는 하루에 제 몸무게의 30배를 먹어치운다. 지렁이는 15~35cm, 겨울철에는 1m, 최고 8m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깊은 곳까지 물리성을 개량해 준다.

지렁이 장을 통과한 흙은 잘게 깨지고 흙 속의 양분은 소화효소에 의해 식물이 잘 흡수할 수 있는 꼴로 변한다. 흙보다 배설물 속에는 이로운 세균이 많고 유기물과 식물이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양분이 높다. 지렁이 배설물은 스펀지같이 수많은 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물과 공기를 다량 지닐 수 있다. 그 결과 흙을 개량해 생산성을 높인다.

낙농 국가인 뉴질랜드의 목초 밭에서 사는 원래의 지렁이는 목초에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그래서 낙농인들은 영국 지렁이를 가져다 풀어놓았다. 그랬더니 목초가 전보다 훨씬 잘 자랐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봄철이 되면 테니스코트의 라인이 저절로 나타난다. 유심히 살펴보면 전해에 라인을 그리기 위해 뿌려놓은 석회가루에 지렁이가 덤벼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금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듯 지렁이는 석회를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렁이의 밥은 유기물이고 석회는 반찬일 뿐이다. 때문에 지렁이는 유기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10배나 차이를 보인다. 평방미터 당 30~300마리, ha당 30만~300만 마리, 무게로 110~1100kg/ha이나 살고 있다.

지렁이는 10a에서 연간 100t까지도 먹어 치운다. 밭에서나 과수원에서 유기물을 쌓아 놓으면 따로 초청하지 않아도 어느 곁에 지렁이가 떼로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찰스 다윈은 그의 마지막 저서인 지렁이와 흙에서 지렁이는 큰 돌도 흙 속에 묻어버리는 생물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지렁이는 정녕 이로운 일은 많이 그러나 해로운 일은 하지 않으니 ‘흙 속의 신사가 아닐 수 없다.

 

뿌리 주변의 미생물
뿌리 주변엔 뿌리가 없는 곳보다 훨씬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뿌리가 분비하는 물질에는 당과 단백질, 그리고 각종 양분이 많다. 뿌리털이 끊임없이 떨어진다. 뿌리는 유기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미생물에게는 더없이 좋은 만찬이 된다.

수확 후에도 지상부의 15~40%가 흙에 남는다. 평균 25%가 남을 때 ha당 귀리는 2500, 옥수수는 4500, 사탕수수는 8500kg이 남는다.

뿌리가 분비하는 물질 중 ① 유기산, 당, 아미노산처럼 분자가 작은 유기물은 다른 뿌리와 미생물 생장에 악영향(allelopathy)을 주어서 다른 식물이나 미생물이 덤비지 못하게 하고 ② 근모세포와 뿌리 끝의 표피세포에서 분비하는 분자가 큰 화합물은 뿌리가 뻗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유독 물질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아 준다. 또한 뿌리 주변 미생물의 생육에 이상적 환경을 제공한다. ③ 자라면서 떨어져 나오는 뿌리세포(특히 수많은 털뿌리)와 흘러나온 세포질은 미생물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그 때문에 뿌리 주변에는 뿌리가 없는 부분에서보다 훨씬 많은 미생물이 우글거리는 것이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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