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은 흙의 청소부이자 비료 공장이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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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은 흙의 청소부이자 비료 공장이다 Ⅱ
  • 이상희 기자
  • 승인 2023.08.01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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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이끼는 흙 속의 비료공장
세균은 수적으로 가장 많이 존재하며 생체의 무게도 ha 당 400~5000kg이나 된다. 흙을 해치는 석유, 살충제, 기존 유기독설 물질을 가장 많이 분해해 준다. 콩과작물 뿌리에 붙어서 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박테리아도 세균의 일종이다.

열대지방에서 가장 흔하고, 또 가장 잘 자라는 나무는 단연 아카시아다. 본래 열대지방의 흙에는 양분이 부족하다. 비가 자주 와 양분을 씻어가 버리는 데다 워낙 고온이라 유기물의 분해도 빠르기 때문이다. 양분 중에서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결핍되는 성분은 질소인데 아카시아가 제일 잘 자라는 이유는 바로 뿌리에 붙어서 질소를 공급해 주는 질소 고정 세균의 덕택이다.

아카시아 뿌리를 캐어 보면 잔뿌리에 작은 혹이 무수히 붙어있다. 이 혹은 라이조비움이라는 질소를 고정하는 세균이 사는 집이다. 이 균은 아카시아가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얻어다 에너지를 만들어 공기 중의 질소를 아미노산으로 만든다. 

아카시아 나무는 아미노산을 단백질과 핵산으로 전환해서 자라는 데 쓰기 때문에 빨리 자랄 수 있다. 뿌리혹박테리아의 활동을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코발트(Co)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미생물은 유기물을 분해시켜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N, P, S 등을 NO3, SO4, H2PO4 등으로 전환해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유효태로 만들어 양분 유효도 증대시킨다. 또한 흙 알갱이를 모아 떼알조직을 형성하며, 농약 등 독성 물질을 분해 또는 먹어치워 무독성으로 만든다.

흙 속에 사는 광합성 세균은 햇빛 에너지를 써서 유기물을 분해해서 공중의 질소를 고정해 준다. 질소비료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이끼는 제 몸의 엽록소로 광합성을 해서 유기물을 생산해 흙에 남긴다. 

그러나 언제나 세균이 이로운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한 모잘록병, 역병 등 상당히 다양한 세균들은 농사의 훼방꾼으로 활동하면서 골칫거리로 작용한다.

 

곰팡이, 유기물 분해는 내게 맡겨라
곰팡이는 흙 속에서 수적으로는 세균이나 방선균보다 적지만 무게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ha의 경작층에 생체로 보통 1t, 많은 경우에는 20t까지도 존재한다.

버섯과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효모도 있다. 세균은 자기가 먹는 무게의 20%만 제 몸을 만들지만 곰팡이는 50%까지 만들어 유기물을 만드는 데 효율이 크다. 무엇보다도 세균이나 방선균이 생육이 어려운 산성에서도 유기물을 계속 분해해 주어서 흙의 비옥도를 크게 높인다. 또 해로운 세균과 선충을 죽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인류를 살린 항생제 페니실린(penicillium)도 알고 보면 흙 속 곰팡이의 일종이다. 이들은 흙에 유기물이 많을수록 더 많이 활동한다.

 

균근, 헛뿌리로 물과 양분을 공급하다
뿌리혹박테리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초등학교 때에 배운 기억을 더듬으면 비료를 주지 않아도 콩은 이 균이 뿌리에 붙어서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비료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잘 자란고 배웠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오직 콩과 식물에만 붙어서 산다.

그런데 뿌리혹박테리아보다도 더 광범위한 식물에 붙어서 그 못지않게 이로운 일을 하는 미생물이 또 있다. 마치 생김새가 뿌리 같고, 하는 일도 뿌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미생물, 즉 ‘균근균’이다. 그리고 이 곰팡이 종류가 만들어 내는 균사가 뿌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균근(‘균 뿌리’라는 의미)이라 한다.

내가 균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40여 년 전, 네덜란드에서 토양학 공부를 할 때였다. 그때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미생물도 있었나? 왜 내가 지금까지 몰랐지?”라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주한란은 균근의 도움을 받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제주한란의 씨는 먼지같이 작고 가볍다. 바람에 날려서 먼 곳까지 가서 뿌리를 박으려고 그렇게 진화한 결과이다. 그렇다 보니 씨가 너무 작아서 난으로 자랄 수 있는 씨젖이 없고 다만 뿌리를 겨우 내밀 수 있는 정도의 양분만이 있다.

일단 뿌리를 내밀면 뿌리에서 분비되는 분비물이 균근을 불러들인다. 균근은 한란의 뿌리에 균사를 박고 물과 질소, 인산과 제주한란이 필요로 하는 각종 미네랄을 흡수해서 공급한다. 워낙 가늘어서 식물의 뿌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흙 알갱이 사이의 작은 틈새까지 파고들어서 양분을 모아서 준다.

대신 자신은 한란이 만든 탄수화물을 얻어먹고 산다. 상부상조를 하는 셈이다. 균근은 일종의 곰팡이다. 뿌리혹박테리아가 콩과 식물에만 있는데 비해 균근은 물속 식물만 빼놓고는 어떤 식물에나 다 붙어산다.

특히 오이, 고추, 상추, 토마토, 가지 등을 재배한 시설 원예지에서는 1g의 흙에 포자가 20개(보통 흙에는 2개 정도)나 있을 정도로 많다. 특히 친환경 재배를 한 흙에서 많은데, 포자의 수가 관행재배지에서는 60개인데 비해 친환경 재배지에는 두 배가 넘는 140개나 됐다.

균근은 식물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공생을 시작한다. 고추 육모 때에 균근을 접종하면 인산이 많이 축적되어 고추 자람이 나쁜 흙에서도 뿌리가 잘 발달해서 이식에서 받는 뿌리 손상이 덜하고, 이식 직후 묘의 활착 회복과 균일성이 좋아서 생육이 촉진된다.

척박한 흙이나 사막, 또는 추운 툰드라 지대에서도 식물이 살 수 있는 것은 균근의 덕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균근은 감염된 뿌리로부터 15cm까지 균사를 뻗어 인산을 비롯해서 각종 양분을 흡수하여 숙주에게 주어 공생하는 식물은 그렇지 못한 식물에 비하여 10배 정도 양분 흡수가 높다.

균사는 떼알을 만들어 흙을 개선하며, 병균의 침입을 막아주며 염류장해와 중금속의 피해를 줄여 준다. 그러나 균근은 매우 까다로워서 식물은 저마다 궁합이 맞는 균근을 가지고 있다. 먼 나라에서 식물을 가져올 때 그 지역의 흙을 함께 접종해서 심는 것은 균근을 모셔오기 위해서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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