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pH) 무시하고 농사를 지으면 손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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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pH) 무시하고 농사를 지으면 손해가 크다
  • 이상희 기자
  • 승인 2023.10.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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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진위면의 한 오이 농가를 방문했다. 그 농가와는 90년대 초 필자가 창안한 ‘그린음악농법’을 활용해 퍽 재미를 본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껏 20여 년 교분을 나누고 있다.
오이 하우스를 둘러보며 깜짝 놀랐다. 초짜 농사꾼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오이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잎은 축 늘어지고 마치 농약이라도 뿌려놓은 듯 타고 누렇게 변해 있었다. 노균병이 온 것도 아니다. 매달린 오이의 끝이 마치 엄지손가락처럼 가늘어진 채 매달려 있다.

“아니, 오이가 왜 이 모양이지요?”

“모르겠어요. 오이 농사 30년 넘었어도 올처럼 이런 적이 없는데 속상해 죽겠어요. 처음에는 노균병이 왔나 해서 약을 쳤지만 효과가 없어요.”
“농약이나 비료를 잘못 준 것 아닌가요?”

“약도 별로 안 주었어요. 매년 하던 대로 비료도 주고 했는데 도무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오이금은 좋은데 한 달 일찍 거둬야 될 것 같아요.”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무슨 잘못이 주인을 이토록 근심으로 몰아넣었을까?

흙을 채취하여 산도를 측정해 보았다. 산도는 놀랍게도 4.3. 심한 곳은 3.7까지 떨어져 있었다. 주인의 최근 기억 속에는 석회를 준 적이 없었다.

산성의 주범, 수소이온(H)은 어디서 오나?
산도를 영어로 ‘pH’라고 쓰는데, 수소이온전위(potential of Hydrogen ion)의 약자에서 왔다. pH는 용액에 수소이온(H+), 또는 수산이온(OH)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수소이온이 많아지면 pH는 점점 0에 가까워지고, 적어지면 점점 14에 가깝다. 수소이온과 짝을 이루는 수산이온은 적어지면 pH가 점점 0에 가까워져 산성으로 되고, 많아지면 14에 가깝게 가면서 강알칼리성이 된다. 중성일 때 즉 pH 7일 때는 수소이온과 수산이온의 수가 각각 10개(용액 1L에 1천만 개)로 꼭 같다.
우리의 흙은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암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소이온을 공급하는 비가 1년에 1200mm나 내리고 비는 산성을 억제하는 성분을 씻어 내린다. 그리고 작물의 뿌리가 분비물로 배설하는 주성분이 수소이온이다.

척박하고 산성인 우리 흙
우리의 흙은 pH 5.2~5.4의 강산성이다. 흙의 할아버지인 바위가 산성암인 화강암이기 때문이다. 그런 흙에는 양분이 매우 적기 때문에 척박하고 산성인 흙에서나 잘 자라는 소나무와 진달래가 우리나라의 산을 점령하고 자랐다. 이렇게 말하면 젊은 사람들은 반문한다.

“아닌데요. 요즘 산에 가면 소나무는 보기 어렵고 참나무만 무성하던데요? 진달래도 보기 힘들어요.”

맞는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은 현재가 아니라 50여 년 전의 풍경이다. 그때는 땔 나무가 없어서 어린 나도 산에 가서 낙엽을 긁어 왔다. 산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1960년대부터 산림녹화사업을 한 덕분에 지금은 온 산이 울창해졌지만, 이전에는 산이 모두 대머리였다.

조림을 하면서 연탄이 보급되고, 가스를 쓰자 산은 낙엽이 쌓이고 비옥하게 변해갔다. 그러자 참나무나 서어나무와 같은 활엽수가 은근슬쩍 자리를 잡고 소나무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척박한 흙에서나 사는 소나무나 진달래를 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세계적으로 최단기간에 산림을 울창하게 만든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더구나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점점 소나무는 북으로 밀려가고 있지만, 불과 한 세기만 지나도 한반도에서는 북한, 그것도 북쪽에나 가야 소나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활엽수가 좋아할 정도로 pH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원래의 흙이 강산성이기 때문에 “흰 개꼬리 굴뚝에 3년 두어도 흰 개꼬리다”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자연조건에서는 산성이나 중성으로 변할 수가 없다. 다만 낙엽이 쌓여 흙이 비옥하게 되었기 때문에 활엽수가 활개를 치고 자라게 된 것뿐이다. 밭에서도 비록 산성이 강하다 해도 유기물이 많으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음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흙의 pH는 작물뿐만 아니라 흙 속의 미생물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중성을 지나 한 쪽으로 치우치면 이로운 미생물이 활동을 멈추기 때문에 식물도 그것들의 도움을 훨씬 덜 받게 된다.

특히 지금까지는 pH에 둔감하다고 알려진 질소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질소는 작물의 생육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성분이면서 pH에 따라 쉽게 가스로 나오기 때문에 하우스 안의 작물에 결정적인 피해와 함께 그 안에서 작업을 하는 농업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pH가 중요한데도 정작 현실에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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