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하고 산성인 우리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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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하고 산성인 우리 흙
  • 이상희 기자
  • 승인 2023.11.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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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주범이다
원래의 흙 자체가 산성인 데다 빗물이 산성을 부추긴다. 수소이온의 가장 큰 공급원은 빗물이다. 원래의 순수한 물은 중성인 pH 7인데, 빗물의 pH는 5쯤 된다. 공기에 있는 이산화탄소(CO2)가 빗물에 녹아들어 가서 탄산(H20+CO2→H2CO3)이 된다. 이 탄산이 수소이온을 만들어 낸다(H2CO3→H++HCO3-). 따라서 빗물은 흙에 수소이온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주공급원인 셈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연간 강우량이 1200mm로 상당히 많다. 쏟아져 내리는 빗물이 흙 속에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과 같이 산성을 막아 주는 성분을 사정없이 씻기 때문에 (‘용달’이라고 함) 더욱 산성화를 부추긴다. 
강우량이 600mm 이하이면 절대로 흙이 산성이 될 수 없다. 빗물에서 공급되는 수소이온도 적을 뿐만 아니라, 빗물이 칼슘과 마그네슘을 씻어 내려갔다 해도 증발되는 물의 양이 많아 물을 따라 다시 표토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오히려 흙은 pH 7보다 높아져 알칼리성 흙이 된다. 
이런 현상은 열대의 건조지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하우스에서도 일어난다. ‘염류집적’이 일어나 염류장해로 나타나는 것은 이런 현상 때문이다.

공범은 작물이다
작물 자체도 흙을 산성으로 만든다. 식물은 동물과는 다른 꼴로 양분을 흡수한다. 동물은 주로 분자 상태로 흡수하지만 식물은 이온 상태로 흡수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본다.
우리가 쇠고기를 먹었다고 하자. 고기는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그대로 체내에 흡수되지 못한다. 단백질은 소화 효소의 도움을 받아 아미노산으로 쪼개진다. 장은 분자 상태인 아미노산을 흡수한다.
쇠고기를 흙에 파묻었다고 하자. 뿌리는 고기 그 자체, 즉 단백질을 그대로 흡수할 수 없다. 흙 속에 있는 미생물이 일단 단백질을 모두 분해한다. 완전히 분해해서 단백질에 붙어 있던 질소가 암모늄 또는 질산태와 같이 이온 상태로 쪼개진 다음에야 흡수할 수 있다. 분해 과정에서 단백질에 붙어 있던 철이며 각종 미네랄이 떨어져 나와 이온 상태가 된다. 이렇게 식물은 모든 양분을 이온 상태로 99.999…%를 빨아먹는다(아주 극히 적은 양은 호르몬이나 유기산 등을 분자 상태로 흡수할 뿐이다).
양이온이든 음이온이든 이렇게 흡수한 양분은 그만큼 수소이온으로 배설한다. 그러니까 식물의 똥오줌은 수소이온이다. 때문에 작물을 가꾸면 수확한 만큼의 수소이온이 흙에 남게 된다.

산성에서나 알칼리성에서 질소가 가장 손실이 커
필자는 농촌진흥청의 토양 검정 후배 전문가를 평택의 오이 농가로 초청했다. 그는 pH와 전기전도도 측정기, 그리고 여러 가지 검정 장비를 가지고 왔다.
바람이 잘 통하는 하우스의 비닐에 증류수를 뿌리고 질소의 함량을 바로 측정하는 측정종이를 갖다 대었다. 측정지는 곧 붉게 변했다. 그가 종이를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흙의 산도가 5.5 이하로 떨어지거나 7.5 이상으로 올라가면 질소는 가스가 됩니다. 오이 잎에 이슬이 맺히면 질소 가스는 이슬에 녹아서 잎을 타게 만들어요. 그리고 그 가스는 이슬이 맺힌 비닐에도 역시 녹아들지요. 그 물방울이 오이 잎에 떨어지면 마치 병이 든 것처럼 잎이 타버리고 말아요.”
흙 속의 질소 함량도 측정했는데 정상치의 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인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유기질 비료와 영양제만을 주고 석회비료는 전혀 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오이가 칼슘과 마그네슘을 거의 다 빨아먹어서 산성이 됐다. 실제로 유기물, 특히 가축분뇨에는 질소-인산칼륨은 많지만 칼슘과 마그네슘은 적다. 또한 작물이 양분을 먹고 강산의 똥오줌을 싼다. 강산성에서는 질소가 아질산가스(NO2)로, 알칼리성에서는 암모니아가스(NH3)로 변하면서 공기 중으로 나온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끝이 빠진 오이가 생기는데 질소가 부족해서 생기는 증상이다.
대부분의 작물은 흙의 산도가 6.5~70일 때 잘 자란다. 하지만, 5.5~7.5 안에만 들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하지만 내 땅의 흙이 강산성(pH 5.5 이하)이거나 강알칼리성(pH7.5 이상이면 주인의 골을 때리게 마련이다. 첫째는 생산성이 떨어져서 그렇고, 둘째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질소 가스가 계속 나와서 두통을 일으키는 탓이다.
산성이거나 알칼리성에서는 계속 질소가 공기 중으로 나오기 때문에 거기서 일하는 주인의 골을 때린다. ‘비닐하우스 증후군’은 고온이나 농약 때문만이 아니고 이렇게 생긴 질소 가스도 큰 몫을 한다.
평택 오이 농가는 오이덩굴을 거둘 시기가 가까웠기 때문에 수확을 끝내고 석회를 주고 나서 시금치를 파종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생육이 아직 많이 남은 경우에는 토양 개량을 해서 수확을 계속할 수도 있다.

 


 

글= 이완주
토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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