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외나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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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외나로도
  • 월간원예
  • 승인 2009.01.0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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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바람처럼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바람의 몸으로 달려
고흥반도에 다 닿았습니다.
석양에 물든 바다는
으르렁 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울면
고기잡이 나간 아비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애타하던 소년의 어미 말이 떠올랐습니다.

“바람 불었습니다
소년은 선창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흩날렸습니다.

소년의 아비는 어부였습니다.
어미는 수다쟁이였죠.
그러나 행복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밤에 바다가 울었으니 바다에 나가지 말라는
어미의 손을 뿌리치고 아비는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죠.
어미는 선창에 나가 아비를 기다렸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석 달 열흘을 기다려도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서야 소년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미는 점점 변해 갔습니다.
이따금 알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입술을 비틀고 웃기도 했습니다.

바람 불어 바다가 우는 날이면
털북숭이 옆집 아저씨가 어미의 방문을 두들이었습니다.
그런 밤이면 어미의 방에선
밤새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들려왔습니다.
소년은 방문 앞을 서성이며 어서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어미는 소년을 선창에 남긴 체 떠나갔습니다.
대천에 나가 큰 돈 벌어 금의환향 하겠노라 말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도 있다는 것을.

바람 불었습니다
소년은 선창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흩날렸습니다.

소년아 울지 말아라,
내 너를 달래 주겠노라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

나는 꼼짝도 못하고
바다를 맞으며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날이 밝았습니다.

용담 꽃 속에서 하룻밤을 지낸 벌 한마리가 있습니다.
모진 삭풍에도 용담 꽃 속은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
기지개를 치고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바다를 향해 길게 목을 뺀 해국은
아침 햇살을 즐기며 너그러워집니다.
미처 겨울 준비 못한 벌 한 마리가
해국을 찾아 왔습니다.
해국은 어미처럼 벌에게
꿀을 줍니다.

소년의 어미는 열매가 익으면 돌아온다고 약속했을까.
철모르는 남도(南島)에선 까마중 꽃이 한창입니다.
범부채 씨앗처럼 까맣게 익어 소년의 손에 쥐어지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교정에서
동백꽃이 말갛게 피었습니다.
엊그제 하얀 눈 속에서도 제대로 견딘
굳건한 정절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 사랑을 독차지했을 기린초도
화단가 돌 틈에서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나는,
소년의 바닷가에 서서
지나온 날들을 기억해 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인 지금,
내내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부대끼며 사는 들꽃을.

다가오는 2009년엔,
희망과 기대를 품은 아름다운 향기로
들꽃처럼 바람처럼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리움으로 남았을까
깊어가는 겨울
떨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파란하늘 스칠 때
벌써
나는 바람이 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너를 향한 내 멍든 가슴
한 움큼 회한의 덩어리
후회와 자책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바람이 분다.
하여,
나는 다시 바람에 휩싸인다.
바람에 닳아 노랗게 뜬

그리움으로 남았을까

 

글·사진 | 들꽃세상 대표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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