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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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있는 풍경
  • 월간원예
  • 승인 2009.05.0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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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일어나 새 봄 맞으소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남자는 늘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성격이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중병에 걸렸으니 입원하라는 통보를 받고 치료를 위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남자의 병은 쉬 낫지 않고 투병 생활이 길어져 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성격이 변해 가더니 심지어 병 수발 하는 가족에게 화를 내며 욕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남자의 고향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혹시, 제가 알아채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친구들이 챙겨주길 바란다는 남자의 아내로부터 연락을 받은 친구들이 문병을 왔습니다.
남자는 버럭 화를 내며 난폭하게 친구들을 쫓아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친구들은 돌아갔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남자의 성격은 더욱 나빠질 뿐,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아내는 남자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께 간청했습니다. 신부님의 허락을 받은 아내는 내심 위안을 얻은 듯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신부님은 아내의 걱정스런 모습을 위로하며 남자의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남자의 병실을 주목했습니다.
신부님이 병실로 들어가신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커다란 목소리의 욕지거리가 들렸습니다.
결국 신부님도 쫓겨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는 더욱 난폭하게 변해갔고 주위 사람들은 힘들어 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오후, 남자의 병실에 어린 꼬마가 찾아왔습니다. 꼬마는 남자가 살던 동네에 살고 있었으며 골목을 지나치다가 가끔 마주치는 아이였습니다.
남자의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어 찾아왔다면서 조용히 남자를 만나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남자의 아내는 의아해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가끔 마주치는 아이가 남편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왕 찾아왔으니 만나 보라고 일렀습니다.
꼬마가 남자의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5분,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남자의 병실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35분이 지나서야 꼬마가 병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내와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남자의 아내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너 무슨 얘길 나누고 나왔니?”
꼬마가 대답했습니다.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는데요...”
다시 주위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네가 병실에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35분이 지났는데,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단 말이니?”
“네”
“그럼 뭘 하고 있었니?”
남자의 아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저씨가 울어서 저도 따라 울어줬습니다.”

그날 이후, 남자는 변해 갔습니다.
조용히 명상을 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몇 해 전 4월. 어느 봄날 아침, 자가 운전하는 출근길에 켜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한 남자의 얘기를 듣고 울컥 치미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친구의 투병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항암 치료로 인한 많은 시련과 고통을 참고 보내온 메일에는 희미한 웃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봄이 오는 소식을 보냈습니다.
무등산의 바람소리와
칠산 앞 바다의 파도치는 모습과고흥반도의 봄을 전했습니다.

어쩌다 친구의 힘들어 하는 모습이 떠오를 때면 힘차게 솟아나는 새싹들의 생기를 찾아 들과 산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들꽃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담은 뒤 기도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민들레의 변함없는 사랑과, 앵초의 청초함과,
자란의 가녀림은 그녀에게 많은 위안을 주리라 믿으며.

오늘,
오운천(川)의 버들강아지를 촬영하며
버들강아지 꽃을 보았습니다.

개울가에 피어난 할미꽃과 쇠별꽃으로
완연한 봄이 왔음을 느꼈습니다.

친구여,
이 봄날
당신 그리워하는 마음
알으소서.
기억하소서.

소년의 마음처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당신 바라보고 있음을
기도하고 있음을,
기억하소서.

이제,
당신 일어나
새 봄 맞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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