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야생화 육종·재배하는 최용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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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야생화 육종·재배하는 최용호 씨
  • 월간원예
  • 승인 2009.06.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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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같은 야생화 육종의 길”

“예술과 같은 야생화 육종의 길”

 

강원도 원주에서 200여종의 야생화를 육종하고 있는 최고자연 최용호 대표. 그는 “생태 육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그림을 그리는 예술과 같다”고 표현하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원하던 식물을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야생화에 대한 큰 열정
약 30년 전, 최용호 씨는 그저 야생화가 좋아 야생화 육종을 시작하게 됐다. 야생화 육종이 농업으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일단 인정을 받고 나니 이제는 후손을 위해 시장성을 더 키우고 싶다고 최용호 씨는 말했다.
“남들은 그 배고픈 육종을 왜 하냐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에요. 지금은 우리 원예 산업이 일본보다 200년 뒤졌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연구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300년 더 뒤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거든요. 지금이라도 우리 자생화를 연구하고 육종하면 언젠가는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용호 씨는 지난 30년 간 야생화 육종·재배에 혼신을 다했다. 그 결과 지난 1993년에는 ‘제2회 한국란 명품 전국대회 야생란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작년 10월에는 ‘Korea Food Expo 2008’ 우리품종 전시회 최우수상,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용호 씨는 기본 품종을 팔아 남긴 수익을 모두 신품종 개발 연구에 재투자하고 있다. 예전에는 개인 육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국가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종자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고 있는 것은 물론 점차 사람들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어 다행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자력으로 투자하고 연구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원예 산업은 종자전쟁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각국들이 종자관리를 위해 많은 신경전을 벌일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품종 육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농업으로
최용호 씨는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고 했다. 일본의 농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는 것.
“일본의 농장을 방문해 보고 놀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1652㎡ 규모의 농장만 갖고 있어도 부자라고 말하더라고요. 그게 참 희한하다 싶었는데 가서 보고 이해가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재배하는 화분 하나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30만원~500만원까지 다양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고부가가치 품목 위주로 재배하다보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지요.”
그때 일본의 선진 농가를 돌아보고 최용호 씨는 무조건 농장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 4만 9586㎡까지 관리하던 농장을 조금씩 1만 1570㎡로 줄여나갔다. 최용호 씨가 농장 규모를 줄인 것은 단순히 크기를 줄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부가가치를 높인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최용호 씨의 농장으로 견학을 온 사람들에게도 늘 “3.3㎡(1평)으로 33㎡(10평)과 같은 농사를 지어라”라고 조언한다.

알고 보면 쉬운 선발육종
“육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 사업이라 생각하지 않고, 3~4대 이상 꾸준히 대물림하면서 이어나가야 할 인류의 과제이지요.”
최용호 씨는 선진국이 그러하듯 우리도 하루아침에 성과를 올리겠다는 생각보다는 꾸준히 하나씩 단계를 밟아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쉬운 ‘선발육종’은 변이종을 가려내는 방법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대한민국 전 국민이 개인 육종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그 중 특이하게 생긴 변이종이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길 것이 아니라 종자를 받아 심고, 지속적으로 키워 나가고 관찰하다보면 새로운 식물이 탄생합니다. 그게 바로 선발육종인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관심만 가진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든든한 버팀목 아들과 함께
최용호 씨의 큰아들 락철 씨는 대학에서 ‘자원식물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조경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아버지의 후계자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고심 끝에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았으니 이제는 좀 더 전문화된 방법으로 야생화 육종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아버지를 보좌하고 있지요.”
최용호 씨는 아들 락철 씨에게 “회사원처럼 일해서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 시간만 때우는 일은 안 된다. 앞으로 2년간은 수습사원이라는 생각으로  밤낮없이 야생화에 매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들과 함께 하는 앞날이기에 더욱 밝은 길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년의 기록 종묘록
최용호 씨가 야생화 육종에 뜻을 두고 실행한 것은 1982년 큰 아들이 태어날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도움이 되는 것을 남겨줄 것이 없을까 고심하던 중 그동안의 성과들을 ‘종묘록’으로 기록하고자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매발톱 한 가지 식물로만 3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매발톱을 만들 수 있어요. 이렇게 다양하게 육종을 하다보니 그것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종묘록을 쓰기 시작했지요. 1번부터 번호를 매긴 것이 지금 148번까지 기록되었습니다. 나중에 더 많은 자료가 쌓이면 카드처럼 만들어 활용도를 높일 생각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책으로 발행도 하고 싶어요.”
수십 년 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종묘록’은 지금도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 1호이다.
취재/이정연 기자wonye@hortitimes.com
농장 문의 : 010-5361-8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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